현대차 노조가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주·야간 근무조가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사진은 지난 20일 오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명촌정문에서 오전조 근로자들이 퇴근하는 모습. /사진=뉴스1

국내 완성차 업계의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 교섭이 동시다발적 교착에 빠졌다. 현대자동차는 3주 연속 부분파업을 벌이고 있고 기아는 5년 연속 이어온 무분규 타결 기록이 깨질 위기에 놓였다. 5개사 가운데 유일하게 잠정합의안을 도출한 한국GM마저 조합원 찬반투표 부결 가능성이 거론된다. 하계휴가를 앞두고 생산 차질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부품 협력사와 물류업계로 여파가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 노조는 오는 29일부터 31일까지 사흘간 주·야간 근무조가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에 들어간다. 상시주간조와 일반직도 같은 시간 쟁의행위에 참여한다. 파업 첫날인 29일에는 조합원 총파업 결의대회가 예정돼 있다.


이달 들어 세 번째 파업이다. 노조는 13~15일 조별 2시간으로 시작해 20~22일 4시간으로 수위를 높였다. 이번 일정까지 마치면 올해 부분파업은 총 9일, 주·야간조를 합산한 생산라인 중단 시간은 60시간에 이른다. 업계는 앞선 두 차례 파업으로 이미 1만5800대·6730억원 규모의 생산 차질이 발생한 것으로 추산한다. 3차 파업이 예정대로 진행되면 손실은 1조1200억원까지 불어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사 입장차는 여전히 크다.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인상(호봉승급분 제외)과 전년도 순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상여금 800%로 인상, 정년 연장,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고 있다. 인공지능(AI)·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안정 대책과 완전월급제 도입도 요구안에 담겼다. 사측은 지난 8일 15차 교섭에서 기본급 8만9000원 인상과 성과금 350%, 일시금 1000만원, 자사주 15주 지급을 담은 3차 제시안을 내놨고 노조는 이를 거부했다.

회사는 임금 외 요구안을 교착의 원인으로 지목한다. 최영일 현대차 대표이사는 지난 23일 임직원에게 보낸 글에서 해고자 복직, 정년 연장 법제화 이전 사전 합의, 상여금 50% 인상을 교섭을 가로막는 세 가지 쟁점으로 꼽았다. 회사는 노조가 이들 요구를 재검토하면 임금·성과금 추가 제시안을 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교섭은 15차 이후 사실상 멈춰 섰다. 현대차 국내 공장이 오는 8월 3일부터 7일까지 하계휴가에 들어가고 노조가 8월 11일에야 차기 중앙쟁의대책위원회(쟁대위)를 여는 만큼 올해 임단협은 휴가 이후로 넘어갈 공산이 커졌다. 현대차는 3월 협력사 화재로 울산 2·4·5공장이 4~5월 한 달 반가량 정상 가동에 어려움을 겪은 데 이어 하반기에도 파업과 하계휴가가 겹치며 생산 정상화 시점이 늦어지고 있다.

기아 노조는 지난 2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찬성률 92.5%(투표 참여 2만1909명)로 가결했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가 조정중지 결정을 내리면 합법적인 쟁의권을 확보한다. 실제 파업에 나설 경우 2021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 연속 이어온 무분규 타결 기록이 깨진다.

기아 노조는 기본급 14만9600원 정액 인상과 전년도 영업이익의 30% 성과급 지급, 정년 65세 연장을 내세웠다. 여기에 노동시간 단축과 타임오프제 개선, 공장 내 신사업 전개, 신규 인원 채용이 포함됐다. 광주공장의 미래 생산물량 확보와 국내 공장 투자 확대도 요구했다. 노사는 지난 15일까지 본교섭을 6차례 진행했고 노조는 같은 날 교섭 결렬을 선언했다.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잠정합의에 이른 곳은 한국GM이다. 노사는 지난 22일 17차 교섭에서 월 기본급 9만2000원 인상과 타결 일시금·성과급을 합쳐 1500만원을 지급하는 내용의 합의안을 마련했다. 최대 쟁점이던 신규 차종 배정과 관련해서는 사측이 2027년 3분기 안에 계획을 확정하도록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부평·창원공장에서 생산 중인 트레일블레이저와 트랙스 크로스오버의 후속 모델인 차세대 9B 프로그램 물량 유치를 추진한다는 내용으로, 배정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

이날부터 이틀간 진행되는 조합원 찬반투표를 앞두고 부결 가능성이 거론된다. 현장에서는 사측 제시안이 신차 투입과 미래 발전 계획에 대한 확답을 담지 못했다는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안규백 한국GM지부장도 잠정합의 직후 조합원이 부결할 경우 기존과 다른 수위의 투쟁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주장의 배경에는 2027년 말 종료되는 GM의 국내 사업장 유지 의무가 있다. 산업은행은 2018년 8100억원(7억5000만달러)을 투입해 지분 17.02%와 함께 총자산의 20%를 넘는 자산 양도·처분 등 주요 의사결정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부권을 확보했다. 조합원들은 이 안전장치가 유효한 동안 신차 배정을 확약받지 못하면 이후 협상력이 약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임금 인상 폭보다 미래 물량 확약 수준이 표심을 가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르노코리아 노조도 쟁의 국면에 들어섰다. 지난 4월 상견례 이후 12차례 교섭을 진행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했고 지난 20일 중앙노동위원회 조정이 불성립되면서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했다. 노조는 수년간 사실상 동결 수준에 머문 임금 인상과 함께 회사의 미래 전략 제시, 고용 안정 대책 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23일 막판 교섭마저 결렬돼 노조는 대의원대회를 열어 파업 여부와 투쟁 일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 관세 부담과 글로벌 수요 둔화로 상반기 수익성이 악화한 상황에서 노사 갈등까지 겹치며 하반기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며 "장기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생산 차질은 물론 부품 협력사와 물류업계까지 연쇄적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