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오른쪽)과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왼쪽)이 지난 7월8일(현지시각) 튀르키예 앙카라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우크라이나 정상회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뉴시스


정부의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인력 철수는 표면적으로 '북한군 포로 송환' 공개를 둘러싼 외교 마찰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동시에 러시아와의 관계를 복원하고, 이를 지렛대로 북한과의 대화까지 성사시키려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반도 평화공존을 거듭 강조해온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북극항로를 고리로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까지 공식 의제로 올렸다는 점에서다.

20일 동행미디어 시대 취재를 종합하면 주우크라이나 대사관은 지난 16일 교민 안전대책회의를 화상으로 열고 안전상의 이유로 공관원 일부를 철수한다고 알렸다. 대사관은 이어 교민들에게 폴란드 등 제3국으로 대피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철수는 우크라이나에 사과를 압박하는 카드인 동시에 러시아에 보내는 러브콜 성격도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국무회의에서 북극항로 시범운항 경과를 보고받고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도 중요하다"며 "전쟁 중에도 외교를 하지 않나"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게 러시아와의 협력 아니겠나"라며 북극항로 개척의 최대 과제로 러시아와의 협력을 짚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러시아가 우려와 달리 협조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답했다.

북극항로는 러시아와의 협력 없이는 쉽지 않고 북한과의 협력이 필연적으로 뒤따르는 사업이다. 부산을 떠난 선박이 북한 동해안을 끼고 북상해 러시아 북극 연안을 따라 운항해야 한다는 점에서다. 정부는 올해 해양수산부 예산에 550억원을 추가 배정해 상용화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 러시아대사는 지난달 협력을 본격화하려면 대러 제재와 경색된 한러 관계를 풀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북 구상도 현재로선 북한의 혈맹인 러시아를 거치지 않고는 풀기 어려운 구조다. 이 대통령이 지난해 9월 유엔총회에서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교류·관계 정상화·비핵화)는 북한의 무반응 속에 1년 넘게 답보 상태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월 "우리 한러관계의 독자성이 있다"며 동방경제포럼 참석을 추진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포로 송환을 비공개로 처리하려 한 것 역시 남북 대화 재개를 모색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보인다.



외교가에서는 이번 조치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한미동맹을 근간으로 삼는 '동맹파'이면서도 주러시아대사를 지낸 손꼽히는 러시아통이라는 점에 주목한다. 위 실장은 지난해 9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 간담회에서 북·중·러와의 관계가 최악 수준으로 악화했다며 이를 풀어가는 것을 과제로 꼽았다. 미국이 최근 대러 제재 일부를 해제·유예하고 있는 것도 이런 구상의 운신 폭을 넓혀 주는 요인이다.

유성옥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장은 이날 시대와의 통화에서 "북러가 밀착해 있으니 러시아를 통해 우리 뜻을 전달하고 북한을 대화에 나오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며 "러시아에서 직접 얻을 외교·안보·경제적 이익도 있지만 핵심은 남북 관계의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는 메시지"라고 말했다. 다만 유 전 이사장은 "북한은 적대적 두 국가론을 채택해 우리와 엮이려 하지 않기 때문에 러시아 말을 듣지 않을 것"이라며 "과거에도 남북이 합의해 놓고 이행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박두순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대사 소환 이후에도 우크라이나 측의 전향적 조치가 없고 우크라이나 전역에 공습 위협이 상존해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철수 배경으로 들었다. 외교부는 다만 대사대리를 중심으로 외교 소통을 이어가고 영사 인력은 전원 잔류시킨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11개 주의 에너지 시설을 공격해 최소 55만 가구에 정전을 일으켰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최근 일주일 사이 민간인 100명 넘게 숨졌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대사 소환에 이어 공관원 철수까지 단행되면서 자칫 외교관계 단절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외교부 차관은 이날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불편한 심기를 여러 차례 드러낸 뒤 조치가 단계마다 올라가고 있다"며 "항의는 하되 감정이 외교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결국 우크라이나가 내놓을 사과의 수준이 이번 사태의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유 전 이사장은 이번 조치를 "전략적으로 중요한 우크라이나를 잃는 실책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