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현지시각) 우크라이나 키이우에서 시민들이 소지품을 챙겨 들고 러시아의 공습으로 파손된 사무실을 나서고 있다./AP=뉴시스


정부가 주우크라이나 한국대사관 공관원 절반가량을 철수하기로 하면서 한·우크라이나 갈등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정부가 양국 간 갈등을 더욱 키우는 대신 외교 채널을 가동해 출구전략을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21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외교부는 주우크라이나 대사관 공관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철수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교민 85명이 대부분 출국을 거부하고 있어 윤지완 대사대리와 영사 업무 인력은 전원 현지에 남는다.



이번 조치는 북한군 포로 송환 문제를 둘러싼 갈등의 연장선에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지난달 23일(현지시각)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했다. 정부는 비공개 합의 위반이라며 같은 달 28일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대리를 초치했다. 그럼에도 우크라이나가 사과를 거부하자 정부는 지난 8일에는 박기창 주우크라이나 대사 소환을 결정했다. 우크라이나 측은 비밀 유지 방식에 대한 해석 차이일 뿐 종결된 사안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우크라이나 측의 전향적 조치가 없는 데다 공습 위협이 상존해 안전 확보가 어렵다는 점을 철수 배경으로 설명했다. 그러나 외교 갈등 와중에 공관 인력을 대폭 줄인 것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압박하는 조치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가 2015년 리비아와 2021년 아프가니스탄에서 공관원을 일부 철수한 것은 현지 정세 악화가 직접 원인이었다. 우크라이나에서는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공습 위험이 줄곧 이어져 온 만큼 안전 문제만으로는 이번 조치를 설명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번 조치가 대러시아 관계 개선을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장은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통화에서 "정부가 러시아와의 관계 개선을 외교정책의 중요한 우선순위로 두고 있고, 이를 통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까지 모색한다는 관점에서 보면 최근의 대우크라이나 조치를 이해할 여지는 있다"며 "우크라이나와의 갈등이 러시아에는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말했다.



조현 외교부 장관이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의 외교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뉴스1


전문가들은 항의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대사 소환에 이어 공관원 철수까지 결정한 것은 과도하다고 평가했다. 김 원장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송환과 관련해 양국 간 비공개 원칙을 깨고 이를 공개한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면서도 "공관원 철수는 우리 국민의 안전과 영사 업무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바람직한 조치라고 보기 어렵다. 우크라이나와의 장기적인 전략적 이해까지 훼손하면서 대응할 사안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전체 인력이 줄어들면 결국 영사 업무에도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이번 조치는 오히려 우리 스스로 외교적·영사적 비용을 키우는 '자해의 수순'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정재환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양국 간 외교적 갈등이 있는 상태에서 공관원 철수가 이뤄졌기 때문에 외교적 압박 수단으로 해석될 여지가 매우 크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국가들은 대부분 우리의 우방국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갈등을 계속 끌고 가면 개별적인 자존심 문제처럼 비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관계 악화가 한국의 외교적 부담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교민 보호와 북한군 포로 문제, 전후 재건사업 등 우크라이나와 협력해야 할 사안이 적지 않아서다. 김 원장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재건이 시작될 텐데 어떤 국가와 기업에 사업을 맡길지는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가 결정한다"며 "지금처럼 관계가 악화되면 한국 기업의 참여 기회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갈등을 더 키우지 말고 외교적으로 관리해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 김 원장은 "외교 채널을 가동해 우크라이나 정부가 외교적으로라도 유감의 뜻을 밝힐 수 있도록 하고, 그런 입장이 나오면 이를 명분으로 대사를 복귀시키면서 관계 복원의 수순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정훈 국립외교원 교수도 시대에 "양국 모두 관계를 더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내면서 소통을 이어가야 한다. 우크라이나에서 대응이 나와야 한국 정부도 움직일 명분이 생긴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이미 취한 조치를 철회하기도 어려운 만큼 더 이상 이 문제를 이슈화하지 않고 '페이드아웃'시키는 것이 좋다"며 "양자 차원에서 새로운 조치를 내놓기보다 유엔 등 다자 협력의 틀에서 국제사회와 보조를 맞추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