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교육의 '정답'은 없다. 오히려 인구에 회자되는 자녀교육의 정답에 매달리다 자녀교육을 망칠 수도 있다. 그런데 자녀교육의 해법 가운데 한번쯤 반드시 시도해보아도 결코 손해나지 않는 해법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편지를 이용한 '서신교육'이다. 직접 손으로 쓴 편지를 이용할 경우 가족 간의 대화의 장벽을 허무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편지는 얼굴을 보고 이야기할 때보다 감정을 순화시켜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교육적인 효과가 훨씬 크다고 한다. 아무래도 화가 날 때 얼굴을 보고 말하면 감정이 그대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자녀 간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한다면 결코 좋은 장면이 아닐 것이다.
 
우리 선인들은 누구보다 자녀교육에 편지를 잘 활용했다. 대학자인 퇴계 이황은 자녀교육에 편지를 가장 잘 활용했다. 퇴계는 아들과 손자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보내 공부에 힘쓸 것을 당부했다. 퇴계는 열일곱 살 된 맏아들에게 뜻이 돈독한 친구와 함께 절에 가서 굳은 결심으로 맹렬히 공부하라고 권하기도 했다. 성인으로 추앙받는 퇴계도 자녀교육에 있어서는 요즘 부모들처럼 극성스러울 정도였다.
 
"네 댁이 지어 보낸 단령(관복)은 잘 받았다. 궁한 처지에도 이렇게 해야 하나, 도리어 미안하다… 흰 부채 두자루, 검은 부채 두자루, 참빗 다섯개, 먹 한개, 붓 한자루를 보낸다. 참빗은 네 댁에게 줘라."(1540년 아들 준에게 답함)
 
퇴계는 추석 등 명절을 맞아 아들과 손자, 며느리와 손부 등 일가 후손들이 선물을 보내오면 반드시 답례와 함께 편지를 보냈다. 특히 며느리에게 참빗을 선물하는 퇴계를 떠올리면 절로 미소 짓게 한다. 퇴계는 며느리에게 귀걸이를 선물하기도 했다. 윗사람이라고 해서 받으려고만 해선 존경받을 수 없다. 가족이나 일가친척끼리도 좋은 인간관계는 베푸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퇴계의 자녀교육의 열정은 그가 쓴 편지에서도 알 수 있다. 퇴계는 생전 아들 준에게 613통, 손자 안도에게 125통의 편지를 썼다. 아들과 손자, 후손에게 무려 1300여통의 편지를 썼다. '퇴계 이황, 아들에게 편지를 쓰다'와 '안도에게 보낸다'라는 책으로 지금도 그 편지를 생생하게 만나볼 수 있다.
 
"오늘 안동에서 보내온 과거시험 합격자 명단을 보고 너희들이 합격했음을 알게 되었다. 요행임을 알면서도 너무나 기뻐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1561년 8월 소과에 합격한 손자 안도에게 보낸 축하편지다. 요즘 극성 아빠를 능가할 정도로 자녀교육에 대한 열의를 읽을 수 있다. 대학자의 근엄한 모습만 이미지로 남아있는 퇴계를 상상하면 쉽게 연결이 되지 않을 정도다.
 
퇴계 이황은 300여명이 넘는 수제자를 길러내고 140번이나 넘게 공직의 부름을 받았던 대학자이지만 그 바쁜 와중에도 자녀뿐만 아니라 친인척의 자제들까지 꼼꼼하게 챙겼다. 어떻게 보면 공(公)을 위해 사(私)를 희생했을 것으로 생각하기 쉬운데, 퇴계는 우리의 상상과 선입관을 여지없이 날려버리는 것이다. 좋은 친구와 함께 지내며 학문을 닦는 것을 중시했던 퇴계는 아들과 손자, 조카뿐만 아니라 형의 외손, 질녀, 형의 사위, 형의 손자, 조카 등 무려 100명에 가까운 후손들의 글공부와 어려움을 힘 닿는 대로 보살피며 멘토링을 아끼지 않았다.
 
"김성일과 우성전이 지금 '계몽'을 읽으려 한다더구나. 너는 벌써 '주역'을 읽고 있지만 '계몽'도 읽지 않을 수 없으니, 이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곧장 (절에서) 내려와서 이들과 함께 '계몽'을 읽는 것이 아주 좋겠다.” 퇴계는 60세 때 도산서원을 완공하자 제자들이 전국에서 모여들었다. 퇴계는 당시 절에서 공부하고 있던 손자 안도에게 편지를 보내 도산서원으로 와서 제자들과 함께 공부하라고 다그쳤다. 그 이유는 손자에게 김성일과 우성전 등 공부에 뜻을 둔 제자를 소개해주기 위해서였다. 다름 아닌 ‘공부 친구’를 맺어주기 위해서다. 그가 후손들에게 쓴 편지에는 요즘 가장 강조되는 ‘인적 네트워크’의 중요성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퇴계는 이미 450년 전에 인간관계 기술을 훤히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편지를 자녀교육에 잘 활용한 또 다른 이는 다산 정약용이다. 다산은 자녀교육에 가장 힘써야 할 시기(39~57세)를 고스란히 유배지에서 보내 아버지로서 직접 자녀 교육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컸다. 유배지에서 다산이 자녀교육을 위해 활용한 것이 바로 편지다. 다산은 두아들(학연, 학유)과 100여통이 넘는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18년이 넘는 유배지에서도 자녀교육에 결코 소홀하지 않았던 것이다.
 
다산은 두아들 학연과 학유에게 ‘오직 독서만이 살 길이다’라며 책 읽기를 독려했다. 다산은 책을 읽을 때 ‘초서(抄書)’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초서란 책에서 주요한 내용을 뽑아 옮기는 것이다. 또 다산은 둘째아들 학유에게 ‘정리하는 기술’을 익힐 수 있도록 편지로 숙제를 내주기도 했다. 자신이 보낸 편지를 꺼내 자질구레한 내용은 제외하고 훈계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을 베껴 써서 한권의 책으로 만들라고 한 것이다. 편지들을 정리해 하나로 책자로 묶으면 유용한 정보가 될 수 있고 불필요한 내용을 걷어내고 알맹이만 추려내는 훈련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바빠서 도저히 아들을 돌볼 수 없다고 말하는 부유한 아버지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그는 사람을 사서 자기 의무를 그에게 전가시키고 있다. 돈에 눈이 어두운 인간들이여! 돈으로 아이에게 아버지를 사줄 수 있는가?”
 
루소의 명저 <에밀>을 읽다보면 자녀교육의 모습은 예나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돈으로는 결코 자녀교육을 해결할 수 없다. 자녀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따뜻한 관심과 사랑, 신뢰다. 물질적인 지원은 그 다음 순이다. 부모의 마음을 자녀가 가슴으로 느낀다면 자녀교육은 이미 절반의 성공을 거둔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것은 한통의 편지가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0년 전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수십 통의 편지를 쓴 다산 정약용처럼 때때로 사랑이 깃든 편지를 자녀에게 보내면 이보다 더 좋은 자녀교육법은 없을 것이다. 더욱이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는 196통의 편지로 딸을 총리로 만들지 않았던가. 오늘부터 자녀에게 편지쓰기로 자녀교육을 시작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