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면이 마흔 살이 된다. 1986년 9월29일, '매운맛'을 전면에 내세우고 등장한 이 라면은 1991년 국내 시장점유율 1위에 오른 뒤 35년 넘게 정상을 지켜왔다. 유행이 수없이 바뀌고 입맛이 변해도 한 제품이 이렇게 오래 기준 자리를 지킨 경우는 드물다.
신라면은 음식이 아니라 기준이었다. 출시 당시를 들여다보면 그 답이 보인다. 1986년 9월29일자 신문 광고에는 '사나이 대장부가 울긴 왜 울어!'라는 문구와 함께 '우리나라 전통의 매운 입맛을 돋워주는 새로운 라면'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단순히 맵기만 한 제품이 아니라 한국적인 매운맛을 표방한 것이다. 같은 해 신문 기사에서는 표고버섯을 동결건조해 독특한 향을 냈다는 설명이 등장한다. 매운 맛과 향, 그리고 한국적 정체성이 처음부터 설계돼 있었던 셈이다.
이후 벌어진 일은 누구나 안다. 신라면은 1등이 됐고 더 중요한 것은 '기준'이 됐다. 사람들은 '얼마나 맵냐'를 설명할 때 자연스럽게 신라면을 떠올렸다. 어떤 라면은 신라면보다 덜 맵고 어떤 라면은 더 맵다는 식으로 평가됐다. 특정 브랜드가 하나의 척도가 되는 순간, 그것은 상품을 넘어 문화가 된다.
도전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초반, 닭고기 육수를 앞세운 '하얀 국물 라면'이 시장을 휩쓸었다. 매대가 뒤집히고 유통 현장에서는 "대세가 바뀌었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당시 한 선배 기자는 단언했다. "신라면은 끝났다." 그때 이렇게 되물었다. "하얀 국물 라면만 일주일 먹을 수 있습니까? 신라면은 가능한데요."
그 질문은 결국 시간을 향한 것이었다. 유행은 강하지만 짧고 기준은 조용하지만 오래 간다. 시간이 지나자 답은 명확해졌다. 하얀 국물은 '한 시기의 기억'으로 남은 반면 신라면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신라면의 위상은 이제 음식의 영역을 넘는다. 빅맥지수, 라테지수처럼 물가를 체감하는 기준으로 '신라면지수'가 거론된다. 100개국 이상에서 팔리는 제품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한 나라의 즉석식품이 글로벌 생활 기준이 되는 현상은 흔치 않다. 신라면은 그만큼 한국인의 입맛을 넘어 세계인의 감각 속으로 들어갔다.
그럼에도 이 라면을 설명하는 가장 정확한 방식은 결국 하나다. '기억.' 마르셀 프루스트는 마들렌 한 조각으로 잊고 있던 시간을 되살려낸다. 신라면도 크게 다르지 않다. 김이 서린 뚜껑을 열 때 올라오는 후추 향, 뜨거운 국물을 한 모금 들이켰을 때 목을 타고 내려가는 감각. 그 순간에 묶여 있던 감정과 장면이 함께 돌아온다.
누군가에겐 혹한 속 철책 근무를 마친 뒤 먹던 컵라면일 것이다. 누군가에겐 밤새 회식 후 뒤집힌 속을 간신히 붙잡아주던 해장라면일 수도 있다. 어쩌면 알프스 융프라우 정상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호호 불어먹던 그 한 그릇일지도 모른다.
필자의 '인생라면'은 조금 더 적막한 장면에 있다. 해외 출장 중 히터도 시원치 않던 낯선 호텔 방이었다. 먼저 귀국한 선배가 남겨두고 간 신라면 컵라면 세 개. 늦은 밤, 물을 붓고 뚜껑을 덮은 채 3분을 기다리는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
뚜껑을 여는 순간 올라오던 익숙한 향. 한 젓가락을 입에 넣었을 때 그제야 몸이 풀리듯 긴장이 내려앉았다. 그건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버틸 수 있다'는 신호였다. 그날 이후 출장길이나 여행길 가방 한켠에는 늘 컵라면 세 개가 들어간다. 배를 채우기 위함이라기보다 언제든 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려놓을 수 있는 작은 장치다.
40년이라는 시간은 길다. 한 제품이 살아남기에도 한 나라의 입맛을 바꾸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는 수없이 많은 개인의 기억이 쌓여 있다. 그래서 묻게 된다. 당신의 그 한 그릇은 언제였는가. 당신에게 '돌아갈 수 있는 맛'은 무엇인가. 당신의 '인생라면'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