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신히 급한 불은 껐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상 위기는 장기화 될 것이 분명하다.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에 대해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내놓는 공통된 의견이다.

6월 중순 세계 각국의 시선이 그리스로 집중됐다. 그리스의 2차 총선이 치러졌고 유럽을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총선 결과를 예의주시한 것이다. 어느 당이 집권하느냐에 따라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 여부가 판가름 나게 돼 있었고, 이는 그리스와 유럽 국가들 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 큰 충격을 안길 수 있기 때문에 총선 결과는 초미의 관심사였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그리스가 유로존을 탈퇴할 경우 유로존 GDP증가율은 -2~-5%까지 하락할 것으로 분석됐다. 또 미국과 일본 경제가 동반 위축되는 것은 물론이고 신흥국의 수출 동력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점쳐졌다.

그래도 그리스 총선에서 구제금융 조건 이행을 공약으로 내세운 신민주당이 유로존 탈퇴를 주장하는 좌파연합을 물리치고 제1당이 되면서 큰 고비는 넘긴 셈이다.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급한 불끄기'에 불과하다.

유럽 재정위기를 촉발한 근본 원인을 뜯어 고치지 않고선 위기 상황이 장기화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는 상황. 또 국내 경제에도 상시 위기관리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그리스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고 있는 안토니스 사마라스 그리스 신민당 대표(사진 뉴시스)

◆유로화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

유럽 위기의 중심에는 그리스와 스페인이 있지만, 단순히 두 국가에 대해서만 논할 문제가 아니다. 문제의 본질은 바로 유로화 도입이란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박중제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유럽 위기의 요인을 크게 세 가지로 요약했다. ▲독일과 남유럽 국가들 사이에서 발생한 불균형 문제 ▲정부의 부채가 지나치게 높아서 발생했던 재정위기 ▲유럽 은행들의 자산 부실로 인해 발생하는 은행위기 등이다.

박 연구원은 "세 가지 위기가 발생한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보면 결국 유로화 도입이란 하나의 뿌리에 도달하게 된다"며 "유로화 도입이 유로존 내의 불균형, 재정위기, 은행위기를 가져온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또 박 연구원은 현 상황을 유럽 위기의 두 번째 국면으로 진단했다. 첫 번째 국면은 정부의 높은 부채가 문제의 핵심 원인으로 부각됐던 시기이고, 당시에는 유로화 시스템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보다 개별 국가의 독립된 이슈로 여겨졌다는 것이 박 연구원의 설명.

그는 "첫 국면에서는 국가들에게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민간투자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끄는 해결전략이 구사됐다"며 "그러나 지금 두 번째 국면에서는 문제의 본질적인 부분, 즉 태생부터 불완전했던 유로화 시스템을 보완할 수 있는 해결책이 요구된다"고 설명했다.

◆발등에 떨어진 급한 불만 껐을 뿐

어쨌든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 아직 세부사항은 논의 중이지만, 유럽연합(EU)은 스페인 은행권에 1000억유로를 지원하기로 확정했다. 얼마 전 스페인은 구제금융 이후 처음으로 국채를 발행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로존의 구조적인 문제는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겠다. 조호정 현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현 위기가 수습된다 하더라도 유로존에는 두 가지 불안 요인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는 "그리스 새 정부의 긴축안 재협상 요구, 스페인 실물재정 지표 악화 지속 등이 또 다른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며 위기국 지원을 위한 회원국의 납입 자본금 집행이 지연될 경우 정책의 효율성도 낮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유로존 위기의 근본 원인인 강력한 리더십 부재와 양극화 해소 지연 등 구조적인 문제들도 여전히 해결과제로 남아있다"며 "독일의 강력한 긴축 이행 요구에 대한 회원국의 반발, 유로본드 발행에 관한 회원국 간 마찰 등이 유로존 위기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재용 하나대투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스페인 경제가 복합불황에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1000억유로는 스페인 정부가 추산하는 은행의 추가 충당금 설정 및 자본 확충 등을 충족하는 금액"이라며 "그러나 향후 노출될 주택시장 조정 및 고용 위축에 대한 추가 위험은 감안하지 않은 규모"라고 지적했다.

이어 "스페인은 은행부실 처리, 경기부양, 재정안정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어려운 트라이 렘마(trilemma)에 빠져 있다"며 "유로존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복합불황 타계에 어울리는 보다 강도 높고 신뢰성 있는 정책 대안이 제시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로존 위기관리 체계 마련돼야

유럽 위기는 결국 한국 경제에도 직접적인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유로존 경기둔화가 유로존 수입 감소로 연결됐기 때문이다.

BS투자증권 리서치센터에 따르면 그리스 재정위기가 촉발된 2010년 이후 유럽의 수입은 15.6%포인트 감소했고, 한국의 대EU 수출은 26.6%포인트 감소했다. 특히 올해 대EU 수출품목 중 60.1%를 차지하고 있는 IT(-21.8%), 조선(-47.9%), 기계(-2.4%), 철강(-19.1%) 산업의 수출증가율 감소가 두드러진 것으로 조사됐다.

따라서 우리 경제도 유로존 위기 장기화와 세계 경기 하강에 대비해 상시 유로존 위기관리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조호정 연구원은 "현 위기 요인이 외부에 있으므로 정부 단독의 재정 조기집행 및 추경 편성은 한계가 있다"며 "G20 차원의 글로벌 공조를 통한 경기 부양 노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어 "경기변동성이 낮은 고기술 상품의 경쟁력 제고로 수출 경기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며 "해외투자자의 디레버리징(부채 축소)과 자금회수 등에 따른 금융시장의 불안정성을 낮출 수 있는 안전망 확보에도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3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