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한국에선 시골에 창고를 지어 놓고 몰래 미술품을 감상한다. 정치인들도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자랑하진 않는다. 떳떳하게 내놓기보다 조금 숨기는 듯하다.
이런 분위기가 반영된 탓일까. 19대 국회의원 중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힌 의원수가 18대 국회에 비해 크게 줄었다. 총량은 줄었지만 중산층(?) 국회의원들이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밝힌 점은 고무적이다. 이들은 비교적 중저가 미술품을 재산목록으로 신고했다.
로비의 대상이 아닌 보고 즐기는 문화생활로 미술품이 자리매김하면 한국 미술산업은 한단계 더 발전할 수 있다.
이종상 '독도' (1982, 98X89cm)
◆미술애호 국회의원 절반으로 줄어
최근 19대 국회에 새로 입성한 초선의원 및 재선의원 184명의 재산이 공개됐다. 184명의 신입 국회의원 중 미술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한 의원은 단 2명이다. 18대에 이어 19대 국회에도 살아남은 의원까지 포함하면 7명의 국회의원이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19대 초선 국회의원 중 미술품을 신고한 의원은 강동원 통합진보당 의원과 김기준 민주통합당 의원이다. 강동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 2점을 비롯해 일랑 이종상 화백의 작품 2점, 동양화와 서양화 각 1점을 소장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김기준 의원은 이동식 화백의 작품을 소장 중이다.
지난 3월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18대 국회의원의 재산공개 리스트엔 미술작품을 신고한 의원수가 14명이었다. 이중 19대 국회까지 살아남은 의원은 5명에 불과했다. 노영민 유일호 장윤석 정몽준 최재천 의원 등은 지난 3월 18대 국회의원 재산공개에서 미술품을 소장하고 있다고 신고했던 현역의원들이다.
18대 국회에 비하면 19대 국회의 미술품 애호 국회의원수가 절반으로 준 것이다. 국회의원의 미술사랑은 낙제점이다.
◆미술사랑은 부자의 전유물? NO!
하지만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거액 자산가가 아닌 국회의원들도 미술품을 신고했다는 점이다. 미술사랑은 부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란 점을 보여준다. 50만원짜리, 100만원짜리 작품을 사서 소장하는 것이 문화산업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첫걸음이고 진정한 미술사랑이다.
강동원 의원은 재산총액을 마이너스 3억원이라고 신고했다. 부동산을 4억5000만원가량 보유하고 있으나 빚이 8억원이 넘는다. 선거비용과 모기지론 등으로 진 빚이다. 강 의원이 신고한 미술품은 총 6점, 5500만원어치다. 빚을 지고 있을지언정 미술품을 소장하고 감상한다는 얘기가 된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 2점을 1500만원, 500만원이라고 각각 신고했다. 이들 작품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살아 생전 하사한 작품이다. 이외에 이종상 화백의 작품 2점을 각각 1000만원, 500만원이라고 신고했고 장리석 화백의 서양화, 장우성 화백의 동양화를 각각 10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미술 시장에서 전직 대통령의 서예 작품은 비교적 높은 값에 거래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 중 생전에 거래된 작품은 500만원선에 거래됐다. 지난 2010년 6월 서울옥션에서 거래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예작품 '경천애인'이 490만원에 낙찰된 것.
이종상 화백의 작품은 400만원 안팎에 거래되는 작품이다. 지난 2009년 이종상 화백의 '독도'란 수묵화 작품이 경매시장에서 430만원에 낙찰된 바 있다. 단순히 비교할 순 없지만 강 의원이 소장하고 있는 이종상 화백 작품도 500만~1000만원선으로 추정된다. 강 의원은 지난 1998년 이들 작품을 구입했다고 신고했다.
김기준 의원은 전 재산이 10억원이라고 신고했다. 거액 자산가를 제외한 국회의원 평균 재산이 18억원인 점에 비추면 중산층 국회의원에 속한다. 김 의원이 소장한 미술작품도 고액 미술품은 아니다. 김 의원은 이동식 화백의 2009년작 서양화 '비마'를 소장하고 있다. 김 의원은 이 그림을 500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구입 시기는 고지하지 않았다.
이동식 화백의 작품은 100만원대에 거래된다. 지난해 아이옥션에서 거래된 이동식 화백의 '십장생도'는 80만원에 거래됐다. 종이에 그린 수묵화 '설불'(2011년 4월 낙찰)과 '목동'(2011년 7월 낙찰)은 이보다 낮은 값에 거래되기도 했다.
미술계 관계자는 "고가의 미술작품이 아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작품을 구입해 소장하는 게 진정한 미술사랑이다"며 "정치권을 비롯해 일반인들이 작은 미술작품을 소장하고 이를 서로 공유하는 문화가 자리매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고 미술사랑은 정몽준 의원
국회의원 가운에 가장 미술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의원은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이다. 정 의원은 지난 3월 재산공개 당시 8점의 미술작품을 보유하고 있다고 신고했다. 천정 이상범의 산수화 5000만원짜리를 비롯해 병풍(2000만원)과 유병엽의 서양화(2100만원) 등 비교적 고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러시아 사진작가그룹인 AES+F의 파노라마 사진 2점도 소장품으로 신고했다.
장윤석 새누리당 의원도 이대원의 '농원'을 2500만원, 권옥연의 '풍경'을 3000만원이라고 신고했고 유일호 의원(새누리당)은 운보 김기창의 '미인도'를 1000만원으로 신고했다. 이대원, 김기창 화백의 작품은 비교적 고가에 팔리는 블루칩 작품들이다.
◆미술계, 양도세 유예 성사되길
올 하반기 미술계의 가장 큰 화두는 양도세 유예연장 여부다. 현행 법규상 미술품을 사고 팔 때 양도소득세가 면제된다. 일몰조치로 매 2년마다 양도세 부과를 유예하는 법안이 마련돼 왔다.
내년 초로 예정된 양도소득세 부과를 두고 미술계는 양도세 유예조치가 도입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미술시장의 저변이 넓지 않은 가운데 양도세가 부과될 경우 미술시장이 고사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회의원부터 미술품을 로비의 대상이 아닌 '소장하고 즐기는 문화'로 받아들이길 바라는 이유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