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부행장은 사석에서 늘 안 계장에 대한 칭찬을 빼놓지 않는다. 매사에 긍정적이며 업무를 꼼꼼히 처리해 박 부행장의 비서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박 부행장은 안 계장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높이 평가한다.
안 계장은 아픈 기억이 있다. 세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한쪽 다리를 절단했다. 아기들이 한창 뛰어놀고 소꿉놀이에 빠지기 전부터 이미 힘든 고통을 견뎌냈다. 장애급수는 지체하지장애 3급이다. 현재 그의 한쪽 다리는 의족을 달고 있다.
하지만 그의 낙심하지 않고 늘 긍정적이며 밝은 모습을 보여준다. 박 부행장이 그를 비서로 직접 뽑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박 부행장은 지난해 10월 면접을 통해 안 계장을 비서로 채용했다. 비서 경험이 전무해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이제는 어느덧 전화 받는 일과 메모, 일정 체크 등에 익숙해졌다.
"비서는 육하원칙으로 전화를 잘 받고 스케줄 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이 밝은 미소와 친절함인데 안 계장처럼 잘 웃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업무 적응력도 빠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만족스럽습니다."
박 부행장의 말이다. 물론 예전에는 혼도 많이 냈다. 또 실수가 반복되거나 잘못된 행동을 할 때는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실수라서 박 부행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박 부행장은 오히려 "중요한 것은 그들에게 이미 많은 편견과 선입견이 있다는 것"이라며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면 오히려 일을 더 잘하고 회사에 필요한 인재로 발 돋움 할 수 있다. 안 계장 역시 이제는 나의 기대만큼 열심히 따라와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 계장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도 고민중이다. 언제까지나 비서업무만 하길 바라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개인 능력을 더 키우고 은행 전반에 대한 공부를 계속하도록 해 기회가 되면 다른 부서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생각이다.
"잘하는 업무가 어떤 일인지 찾아주는 것도 저의 몫이죠. 안 계장이 더 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날개의 깃털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앞으로 장기적인 시각으로 기업은행에 큰 도움이 되는 인물로 키워보고 싶습니다."
◆고졸신화에 이은 장애인고용 실천
이처럼 기업은행이 장애인 채용에 나서는 일은 이제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장애가 있는 기업은행 행원은 총 253명이다. 이미 금융권 최초로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훌쩍 넘겼다. 현행법상 민간기업(상시근로자 50인 이상)은 2.5%의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켜야 한다. 기업은행은 이미 2.55%로 의무고용률보다 2~3명이 더 많다. 물론 지금도 상시채용을 하고 있어 앞으로 장애인 채용 수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조준희 행장의 철학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조 행장은 취임한 지 얼마 안돼 기업은행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못해 7억원대의 벌금을 냈다는 보고를 받았다. 물론 다른 시중은행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기업은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은행들은 지금도 매년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벌금을 내고 있다. 여전히 많은 금융회사들이 장애인을 채용하느니 벌금을 내겠다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조 행장은 당시 "왜 쓸데없는 곳에 벌금을 내느냐. (기업이) 장애인 의무고용률을 충족하지 못해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것은 죄악"이라고 호통을 쳤다.
인사부 직원들은 고민에 빠졌다. 자칫 장애인들을 대거 고용하면 기업은행 이미지가 추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다. 또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도 고민이 컸다. 무엇보다 시행 초기에 부서마다 장애인을 받지 않으려고 하는 등 반발이 심했다.
하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 기업은행 직원들은 그동안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컸는지 느끼고 있다고 한다. 우선 장애인들을 고용하면서 가장 큰 변화는 내부 분위기다. 그들은 일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무엇보다 기업은행 행원이라는 자부심이 컸다. 아직 입사한 지 1년밖에 되지 않아 구체적인 성과를 나타내기는 이르지만 회사 내 긍정효과는 다른 직원들에게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갔다.
김현정 인사부 차장은 "초기에는 다른 부서의 반발이 심해 새로 채용한 장애인 직원을 어느 부서에 배치해야 할지 힘들었다"면서 "하지만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은 그들의 실력이 우수하고 누구보다 열심히 하는 것으로 인식돼 어느 부서든 환영한다"고 말했다.
기업은행 행원들의 인식 변화가 가능한 것은 조 행장의 의도를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박진욱 부행장의 리더십 영향 때문이다. 수십년간 인사부를 총괄한 그는 장애인 채용이 단순이 이벤트에 그쳐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그리고 채용 전부터 장애인들이 잘할 수 있는 업무를 찾아주기 위한 맞춤형 시스템을 도입했다.
또 입사 과정에서 학벌이나 스펙을 그다지 중요하게 보지 않았다. 박 부행장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긍정적인 마음과 할 수 있다는 의지를 보이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박 부행장은 장애인 채용 과정이 힘들지 않느냐는 말에 그저 비상식적인 편견이 만든 무의미한 실체라고 일축했다.
"고객에게 전화응대를 할 때는 친절한 목소리와 함께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해 알려주면 되는 거예요. 신체 일부가 없거나 조금 불편한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죠. 이미 채용할 때 신체조건을 면밀히 파악해 할 수 있는 일과 더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둡니다. 장애는 그저 세상이 만든 실체 없는 편견일 뿐입니다."
그래서일까. 이제는 일부 은행들이 기업은행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인사부를 직접 답사하기도 한다. 그들을 어떻게 활용하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지를 배우기 위해서다. 고졸신화로 이슈가 된 기업은행. 또 그 중심에 있는 박 부행장이 이제는 장애인 채용문화 확산이라는 신화를 새로 만들어 가고 있다.
미니 인터뷰/ 안유림 경영지원본부 계장
"일한 만큼 인정받고 싶어요"
안유림 계장은 광주광역시에서 임상병리사로 근무하다가 한 장애인협회의 추천으로 지금의 기업은행에 입사했다. 지난해 10월 입사해 다음달이면 입사 1주년을 맞는다. 처음에는 큰 기대를 안했는데 면접 때 박진욱 부행장에게 눈에 띄어 당당히 기업은행 행원이 됐다.
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안 계장은 미소를 지으며 "부행장님이 너무 잘 배려해줘서 힘들지 않다"며 "많이 이동하지 않도록 해주니까 전화응대나 일정 소화 같은 것에 집중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평생 광주에서만 살다가 기업은행 입사 이후 첫 서울생활을 시작했다. 기분이 어땠느냐는 질문에 "처음에는 많이 무서웠다. 서울은 사람들이 많아서 무서운 사람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잘 적응하고 있다.(웃음)"며 또 한번 밝게 웃었다.
그의 꿈은 앞으로 기업은행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는 것이다.
"지금은 기업은행에서 열심히 일하고 그만큼 인정도 받고 싶어요. 앞으로 기회가 되면 공부를 더 많이 해서 다양한 업무경험을 쌓고 싶어요."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247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