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도 하면 제일 먼저 단물 잔뜩 머금은 잘 익은 복숭아가 떠오른다. 그다음엔 천구상의 지구 공전궤도가 생각난다. 바지락칼국수 집 이름이 황도라니? 과일이나 지구궤도는 아닐 테고. 바지락이 많이 나는 무슨 섬 이름인가? 그랬다! 황도는 충남 안면도의 부속 섬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품질 좋은 바지락이 나오는 섬. 그 섬 이름을 옥호로 정했을 만큼 황도는 <황도칼국수>의 정체성이자 성지다. 안면도 바지락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 가치를 사업에 적용해 성공한 정견진 대표를 만나봤다. 안면도가 제2의 고향이라는 정 대표에게 <황도칼국수>의 구수한 성공스토리를 들어보자.
◇ 좋은 바지락에 대한 광신적(?) 집념
▲ 제공=월간 외식경영 좋은 식재료 선정에 신경 쓰지 않는 식당은 없다. 하지만 웬만해선 <황도칼국수>와 정 대표를 따라오긴 힘들다. 그의 바지락에 대한 정성과 노력은 각별하다.
아니, 거의 신앙에 가깝다. 어찌 보면 그 무서운 집념과 집착이 오늘날 성공의 첫 싹일지도 모른다. 창업 준비기부터 지금까지 정 대표가 좋은 바지락을 찾아 더듬는 모습은 마치 예민한 촉수를 가진 촉수동물을 연상케 한다.
1995년 창업을 앞둔 정 대표는 이것저것 준비하고 챙기느라 분주했다. 그런 와중에도 최고의 바지락을 찾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했다. 바지락 칼국수의 성패는 바지락 품질이 좌우한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조선 팔도를 뒤진 끝에 대한민국에서 최우량 바지락은 안면도의 황도에서 나온다는 것을 알아냈다. 황도로 달려갔다. 그런데 미인이 인물 치레하듯 황도 바지락은 그에게까지 차례가 오지 않았다. 채취량의 90%는 일본으로 수출했고 내수용은 달랑 10%뿐이었다.
그나마도 당진 서산에서 모두 흡수되어버렸다. 서울 등 외부까지 공급할 바지락이 없었다. 그럴수록 ‘내가 저 바지락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투지가 발동했다. 그때부터 시원한 박카스를 차에 싣고 다니며 안면도 구석구석을 누볐다.
노인정과 어촌계마다 찾아다니며 박카스를 돌렸다. 그러면서 안면도의 동네별 바지락 맛을 보고 성적을 매겼다. 같은 안면도지만 동네마다 바지락 맛이 천차만별인 것도 처음 알았다. 40여 마을의 안면도 바지락 가운데 B급 이하는 탈락시키고 A급만 공을 들여 거래를 텄다. 그리고 그 거래를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 철저한 품질 관리 향기로운 꿀에 벌 나비가 몰리듯, A급 바지락은 정 대표뿐 아니라 다른 이들도 탐을 냈다. 비싼 가격 지불은 물론이고 마음을 사고 믿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어렵게 찾아냈고 어렵게 확보한 바지락이기에 품질관리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서울 둔촌동 본사에 바지락 작업장을 마련했다. 작업장에 가보니 안면도에서 직송된 바지락을 여러 사람이 깨끗이 씻고 깨지거나 빈껍데기를 걸러냈다. 정 대표는 자연산 안면도 바지락은 씨알 굵기가 들쭉날쭉하다며 직접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여주기도 했다.
새색시가 수틀에 앉아 수를 놓듯 직원들이 선별도구를 사용해 꼼꼼하게 씻어내고 걸러냈다. 안면도 바지락 맛과 풍미가 고객의 칼국수 그릇에서 온전하게 전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었다.
작업장 한 쪽에는 식재료 저장고가 있다. 저장고에는 찬류나 칼국수에 들어가는 식재료를 보관한다. 각종 김치 담그는 데 쓰는 멸치젓갈은 부산의 기장에서 구입해 충분히 발효될 때까지 3년 정도 둔다. 한 편으로는 사용한 분량만큼 새로 구입해 늘 일정하게 삭힌 젓갈을 사용한다.
채소류 저장고에는 가장 먼저 사용할 채소 무더기에 ‘1’자 표식을 놓아뒀다. 누구든 처음 저장고에 식재료를 가지러 가도 어떤 것부터 써야할지 쉽게 금방 식별할 수 있다. 동시에 먼저 들어온 것을 먼저 사용하는 선입선출이 가능해 늘 신선한 상태의 재료로 음식을 만들게 된다.
간단한 아이디어 같지만 실제로 수많은 식당을 다니면서 봐도 이런 시스템을 만들고 실천하는 곳은 극히 적다.
작업장과 식재료 저장고 밖으로 나오니 신안에서 올라온 천일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각각 시간적 차이들 두고 구입한 소금에서 간수를 빼는 중이다. 간수를 뺀 지 3년이 지난 소금부터 조리실로 불려간다. 소금 역시 소요된 분량만큼 충원한다. 3년 묵은 신안 천일염을 매일 써도 화수분처럼 소금의 총량은 줄지 않는다.
◇ 이겨놓고 싸운다 ‘손자병법’에 ‘이기는 군대는 미리 이겨놓고 싸운다’는 선승구전先勝求戰이란 말이 있다. 역사상 이 구절을 제일 완벽하게 실천한 인물이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다. 충무공은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23전 23승 무패를 기록했다.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던 것은 미리 이길 방도를 마련해 두고 전투를 통해 그것을 구체화했기 때문이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정 대표의 업무 스타일도 선승구전 방식이다. 철저하게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넌다. 모든 경우의 수를 상정해보고 일일이 시뮬레이션을 해본다. 그렇게 해서 가장 확실한 방향을 선택한다.
이 방식으로 들어가는 시간과 비용이 어설픈 선택으로 인해 돌아오는 손실과 손해를 상쇄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처음 외식업에 뛰어들었을 때, 바지락칼국수를 아이템으로 선정한 것도 오랜 탐색과 분석 끝에 얻은 결론이었다.
중식, 일식, 고깃집 등 모든 외식 업종을 대상으로 검토했다. 검토 끝에 최종적으로 바지락칼국수를 선택했다. 여러 가지 준거가 있었지만 몇가지만 들면 이렇다. 우선 칼국수는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체에서 프랜차이즈 업종으로 진출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칼국수 가운데서도 바지락칼국수를 택한 것은 칼국수의 핵심인 국물을 인스턴트화 할 수 없다는 점 때문이었다. 1990년대 당시 잘 나가는 칼국수 전문점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그의 눈에는 ‘국물의 공산품화’가 이미 진행되어 더는 좋은 맛을 내기 어려워 보였다.
대기업의 진입장벽과 선두주자들의 한계를 모두 만족시킬 아이템은 바지락칼국수였던 것이다. 꼼꼼한 분석 끝에 내린 그의 결론은 적중했다.
정 대표는 이런 방식을 식재료 고르기, 조리법, 서비스 시스템, 마케팅, 직원 채용하기에 이르기까지 두루 적용했다. 정 대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실패한 적이 없는 것에 대해 불안감이 전혀 없지 않다. 그러나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그의 비즈니스 스타일은 분명 뛰어난 관리법이다
◇ 구성원들의 탄탄한 결속력과 팀워크 인터뷰 도중 정 대표는 지나가던 중간 간부들을 붙잡고 소개했다. 그들의 활약상과 장점에 대해서도 덧붙였다. 지금의 바지락칼국수 맛을 개발한 김진교 실장, 대고객 서비스의 모범 장양남 실장, 깔끔하게 점포 관리를 한다는 나지태 실장 등이다.
이들은 15~20년 동안 정 대표와 함께 손발을 맞춰온 사람들이다. 이들 외에도 많은 직원들이 자신의 포지션을 충분히 소화해내면서 동료들과 유기적으로 움직인다. 특별한 스타플레이어는 없지만 각 선수가 자신의 역할을 120% 해내면서 동료 선수와 완벽한 호흡을 맞춘다.
이렇게 되려면 이직자가 적어야 하고 긴 시간 함께 생활해야 한다. 그러면서 의미 있는 경험들을 공유해야 한다. 이직자가 적으려면 업소 내에서 수평 수직 관계가 원만해야 한다. 불평불만을 조절할 수 있는 시스템과 의사소통 통로도 열려 있어야 한다. 여기에 업주의 원만한 리더십은 필수다. <황도칼국수>의 맨파워는 이런 시스템 인프라 아래 형성됐다.
<황도칼국수>는 모두 8개의 직영점으로 구성됐다. 점포 규모도 100평 내외의 대형급이다. 물리적인 거리마저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정 대표 혼자 관리하기에는 벅찬 환경이다. 그럼에도 물 흐르듯 운영한다.
▲ 제공=월간 외식경영 바로 조직의 힘에 기반을 둔 시너지 효과 덕분이다. 그는 무전기와 카카오톡으로 간부들과 의사를 주고받는다. 길고 자세한 이야기는 나눌 수 없는 의사소통 도구다. 그럼에도 정 대표가 운만 띄워도 직원들은 그의 의도를 정확하게 포착하고 시행한다.
정 대표는 의사소통 과정에서 직원들의 건의나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존중해준다. 그 분야에 관해서는 그가 최고의 전문가이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정 대표 자신이 직원들이 상신한 사항에 대해 의사결정을 신속히 한다. 리더의 빠른 피드백은 조직력에 더욱 탄력을 받게 해준다. 또한 그는 지침을 분명하고 명확하게 제시한다. 두루뭉술한 말투나 불분명한 단어로 부하들에게 지시하지 않는다. 중언부언하거나 장황하게 말하지 않는다. 리더로서 좋은 자질이다.
◇ 홍보 감각 타고난 마케팅 전문가 옥호는 업소의 얼굴이고 상징이다. 정 대표는 업소에서 쓰는 바지락의 산지, 황도를 옥호로 썼다. 이는 바지락 품질에 대한 자신감을 외부에 발현하는 최선의 방법이고 장치다.
얼마나 맛있기에, 얼마나 자신 있기에 업소 이름에 붙였을까? 고객은 이렇게 생각하게 마련이다. 뒤집어보자면 업주가 식재료에 대한 믿음이 굳건하고 향후 지속적으로 품질관리를 해나갈 자신이 없으면 그렇게 함부로 이름을 올릴 수 없다.
하여 고객과의 기싸움(?)에서 먹고 들어간다. 대단한 홍보 전략이다. 정 대표의 뛰어난 홍보 감각은 점포에서 사용하는 주문표나 수저받침 종이에도 묻어난다. 주문표 윗부분에 이렇게 썼다. ‘1000만 명의 고객이 드시고 시원하다고 평가할 그 맛! 5000만 명의 고객이 시식하시는 그날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습니다’라고. 그리고 그 아래는 수익을 남기려고 양심을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의 글을 박아두었다.
그런가 하면 수저받침 종이에는 맛있게 먹는 방법과 주문 시 옵션 사항에 대해서 조언을 해두었다. 이런 걸 보는 고객 입장에서는 든든하고 믿음이 간다.
정 대표의 홍보감각은 월드컵 이벤트에서 최고조에 달한다. 지난 2002년 월드컵 당시 한국 팀이 16강에 진출하면 2002명에게 칼국수를 대접하겠다고 공언했다. 처음엔 고객이나 언론사에서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한국은 16강을 넘어 4강에 진출했고 <황도칼국수>는 약속을 이행했다. 이 행사는 당시 많은 언론매체에 소개되어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다.
정 대표는 그때의 신바람과 흥을 이번 2014 월드컵에도 재현한다. 이번 브라질 월드컵대회에서 우리나라가 16강에 들어가면 7월 1일, 선착순 고객 6042(2014년 × 3개 매장)명에게 칼국수나 냉국수를 무료로 제공한다. 무려 50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아마 이 기사가 인쇄되어 독자의 손에 들어갈 무렵이면 한국팀의 16강 진출 여부가 판가름날 것이다.
만약 정 대표의 간절한 바람대로 꿈이 이뤄졌다면, 길동점, 화성점, 평택점에서 6042명의 손님에게 신나게 음식을 대접하고 있을 것이다. 흥 오른 손님들이 잔칫집 같이 북적이며 6042그릇의 칼국수와 냉국수를 먹는 모습은 축구경기와는 또 다른 장관일 것이다.
언론매체들이 이를 그냥 두고 보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로서는 더 없는 먹잇감이고 이슈거리다. 정견진 대표는 홍보 전문가보다 더 홍보 감각이 뛰어난 홍보의 귀재다.
◇ 양심과 신뢰, 그리고 원칙 고수 정 대표는 명함이 없다. 분식점 주인임을 자처한다. 분식점 주인이 무슨 명함이냐는 것이다. 이는 교만에 빠지지 않으려고 자신에게 거는 일종의 주문 같다. 그만큼 정 대표는 초심을 유지하려 애쓴다. 조금 잘 되었다고 건방 떨거나 오만에 빠졌다가 망신당한 사람을 숱하게 봤기에 자신은 그런 허방에 빠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부하 직원들에게도 손님을 속일 생각하지 말라고 늘 당부한다. 안면도 바지락이 떨어졌으면 문을 닫는 한이 있어도 가까운 시장의 바지락을 사다가 쓰지 말라고 이른다. 안면도 자연산 바지락임을 믿고 기대하고 찾아온 손님에게 그 믿음을 저버리는 순간 <황도칼국수>의 존재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외식업은 기본적으로 나 자신을 파는 일입니다. 믿음과 정성이 없으면 못 하지요. 당장의 이익보다는 멀리 보고 정직하게 장사해야 합니다. 손님이 모를 거 같죠? 아닙니다. 손님은 귀신이에요. 다 알아요. 이게 안면도 바지락인지 아닌지, 식재료를 싼 걸로 바꿨는지 아닌지 금방 알아봅니다.”
<황도칼국수>는 규모가 큰 축에 들어가지만 식재료 가공을 외주 주지 않는다. 반가공 식재료도 쓰지 않는다. 식재료들을 구입해 다듬고 조리해서 완성된 음식으로 나오는 전 과정을 100% <황도칼국수>가 모두 개입해야 한다는 것이 정 대표의 지론이다.
정견진 대표는 안다. 쉬운 길로 갈수도 있지만 어려운 길을 힘들게 지나고 나면 끝에 가서 아주 편안한 탄탄대로가 나온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