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라는 말이 무척 흔한 시대다. 너도 나도 창조를 말하지만 자신의 삶을 통해 이를 증명한 사람은 흔치 않다. 자연히 궁금해진다. 극소수에 불과한 창조적인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무엇이, 어떻게 다르기에 그렇게 될 수 있었을까. 그들은 과연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고 살까. 이러한 궁금증을 해소할 만한 책이 하나 나왔다.

신간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은 KBS에서 제작한 ‘이어령의 80초 생각나누기’의 내용을 다시 글로 정리한 것이다. 80초라는 짧은 시간에 담겼던 내용인 만큼 한편의 글을 읽는 데 불과 60초도 걸리지 않는다. 하지만 <짧은 이야기, 긴 생각>이라는 제목만큼이나 짧지만 묵직한 글들을 다시 되새기는 데 걸리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중국 본토에서 패주하고 대만으로 온 장제스의 군대는 수도 장치를 처음 보았을 때, 꼭지만 틀면 물이 콸콸 쏟아지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철물점으로 몰려가 수도꼭지를 사서 벽에다 박고 틀었다. 하지만 물이 한 방울도 나오지 않자 장사꾼에 속았다고 생각하고, 가게로 쳐들어 가 총질을 해댔다.

이들의 행동은 우습기 짝이 없지만 사실 우리 모습 또한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만 바라볼 뿐 그 안의 수도관이나 수원지의 물은 생각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인문학은 수도꼭지와 같이 당장 쓸모 있는 학문은 아니지만 문화와 문명의 수원지이자 수도관이다. 그것 없이 정치나 경제의 성과를 바라는 것은 수도꼭지를 벽에 박고 물이 나오길 바라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인문학의 가치를 이보다 쉽고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문학을 공부한다고 해서 무조건 창조적인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리 쉽진 않을 것이다. 인문학을 통해 얻은 좋은 재료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눈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저자는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콜럼버스가 처음 세인트 도밍고 섬에 도착했을 때, 맨 먼저 본 것은 하늘을 나는 종달새였다. 어찌나 예쁘게 울던지 스페인의 어떤 종달새도 저렇게 울지는 못 할 것이라고 감탄을 했다. 하지만 훗날 사람들이 그 섬에 와서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그 섬에는 종달새가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콜럼버스가 본 그 새는 스페인에는 없는, 신대륙에서만 살고 있는 새였다.

콜럼버스가 새로운 새를 종달새로 봤다면 콜럼버스에게 그 새는 여전히 종달새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것을 봐도 우리가 그것을 알지 못한다면 새로운 것이 아니다.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눈으로 주변의 종달새들을 바라보자. 어쩌면 그 누구도 보지 못한 새로운 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령 지음 | 시공미디어 펴냄 | 1만3800원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35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