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가고 나 남아서 / 이 푸르름 그대로인데
내 가슴에 노을 지면 / 박꽃처럼 눈도 뜰까
고와라 연초록 잎아 / 여름가면 단풍들라"
경기 남양주 천마산(810m) 등산로 곳곳에는 한 글자 한 글자 주옥같은 시(詩)들이 도시의 메마름에 지쳐 숲의 품에 안기고자 찾아오는 등산객들을 어루만져 주고 있습니다. 위의 <오월산아>는 가슴팍과 등짝에 조금씩 땀이 배어 나올 무렵 천마산 중턱에서 반겨주는 김의식 시인의 노랫말입니다. 과연, 이 노랫말과 연초록 잎을 번갈아 바라보니 '여름 가고 단풍들까' 두려워지는 시인의 정이 느껴집니다.
이 땅 어느 고장이든 각기 내세우는 명산 하나쯤은 있기 마련입니다. 이곳 남양주의 천마산도 경기도의 뭇 산들을 그늘 아래 품고 있는 큰 산입니다. 울창한 원시 수림의 모습을 간직한 이곳은 거대도시에 접해 있으면서도 의외로 찾는 사람이 많지 않습니다. 도시인들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일 수록 멀리, 외진 곳에 있다고 여기기 마련이어서 먼 곳으로 이름난 명산만을 쫓아 가기 때문인가요. 유월의 첫 주말 연휴인 이날, 강원도로 향하는 끝없는 자동차 행렬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습니다.
건장한 사내가 뛰듯이 앞질러 올라갑니다. 바람처럼 앞서가는 이의 굳건한 체력이 느껴집니다. 아마 더욱 더 강철 같은 체력을 갖고자 트레이닝 삼아 산행을 하는 것이겠지요. 단지 체력단련이 목적이 아니라면 여름의 산행은 '느리게, 더 느리게' 해야 합니다. '빠르게 빠르게' 걷다 보면 콧잔등을 간질이는 산들바람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바람 한 점 없는 무덥고 숨찬 숲 속일 뿐이지요. 빨리 가야할 필요가 있을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그러나 천천히 가는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길옆의 잡초나 잡목들도 생김새나 자리한 위치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걷다 보면 매사 건너 뛰려는 성급함이 줄어드는 걸 느낍니다. 달리는 말 위에서 온갖 꽃을 다 본들 그 순간이 지나면 남는 게 있을까요.
☞ 글·사진=이동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