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이재명 정권을 바라보는 공기가 달라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는다. 집권 1년 차 때는 대선에서 그를 찍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도 "생각보다 일은 잘한다"는 얘기가 적지 않았다. '실용적'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첫 양자 정상외교 방문국으로 일본을 택하고 한미동맹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보수층 일각의 우려도 누그러뜨렸다. 때마침 반도체 훈풍에 코스피 활황까지 겹치며 "운도 좋다"는 말이 나왔다.
자신의 '공소 취소' 문제에만 집착하지 않으면 별 탈 없이 집권 2년 차도 순항할 수 있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지만 역시 정치는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국정 지지율이 40%대 초반까지 내려왔다는 수치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지방선거 이후 중도층을 중심으로 부정 평가가 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징벌적 난수표' 비판을 받는 부동산 세제 개편, 매일 천만 개미들의 가슴을 졸이게 하는 롤러코스터 장세 등 여러 이유가 거론된다. 하지만 요즘 필자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그보다 좀 더 본질적인 문제다. 이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말하자면 '권력의 착각'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2항이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국민주권 정부'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주권재민을 내세웠다. 반헌법적 비상계엄의 망동을 딛고 출범한 정권인 만큼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적 명제를 강조한 것은 타당했다고 본다.
그러나 국민주권을 어떻게 현실에서 구현할 것인지는 또 다른 문제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것과 국민이 선출된 권력에 주권을 통째로 넘겼다는 것은 전혀 다른 얘기다. 요컨대 대통령은 헌법이 정한 '제한적 권한'을 선거를 통해 일정 기간 맡았을 뿐이다. 12·3 비상계엄은 이 원리를 망각한 극단적 사례였다. 그런데 이재명 정권 2년 차 들어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일이 부쩍 늘고 있다. 물론 국체(國體)를 뒤흔든 계엄 사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정권 역시 권력의 위임(mandate)을 지나치게 넓게 해석하는 것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선거 승리를 자신의 정치적 선택 전반에 대한 국민의 '사전 동의'처럼 받아들이는 것만큼 위험한 게 없다. 그러면 국정 논리는 간단해진다. '국민이 이것을 원한다→우리가 국민의 뜻을 대표한다→우리를 반대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 뜻'을 누가 정할 것인가. 검찰개혁에는 찬성하지만 보완수사권 폐지에는 반대할 수 있고, 군 개혁에는 동의하면서 사관학교 통합에는 반대할 수 있다. 선거 결과 하나로 그 수많은 생각을 하나의 '국민의 뜻'으로 묶을 수는 없다.
나아가 5년 임기의 정권이 수십 년간 형성되고 수십 년 이상 영향을 미치게 될 국가 시스템의 근간(根幹)을 어디까지 바꿀 '위임 권한'을 갖는지는 깊이 따져볼 문제다. 대선에서 승리했다고 해서 통치의 백지위임장을 얻은 것은 아니다. 국가 근간을 바꾸는 정책 목표는 대선 당일 투표함 숫자의 많고 적음을 통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국회와 사회의 공론장에서 충분히 토론하고 논쟁하고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며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승자가 모든 걸 갖는다'고 하지만 민주공화국의 국정 원리는 아니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필요하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손에 쥔 일부 정치 검찰이 권한을 남용한 것도 사실이다. 누린 만큼 대가를 치르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검찰 권력을 통제하라'는 요구와 수십 년간 작동해온 형사사법체계를 단기간에 뜯어고칠 권한까지 위임했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이건 단순히 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느냐 마느냐의 효율성 문제가 아니다. 그런데도 대통령은 70여년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법안을 놓고 "저는 안 읽어봐서…"라며 짐짓 딴청을 부렸다. 내 책임은 아니라는 건가.
육·해·공군 사관학교 통합도 같은 맥락으로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은 "쿠데타는 다 육사 출신이…"라고 했다. 육사에 원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과거 몇 차례의 군사쿠데타 주역들이 육사 출신이었다는 역사적 사실과 3군 사관학교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정책적 결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어느 게 더 효율적이고 미래 전장에 맞는 시스템인지 따져볼 수는 있다. 그러나 특정 정권의 역사적 인식에 따라 결단의 문제로 밀어붙인다면 그건 차원이 다른 얘기가 된다.
'전임 정부가 잘못했다'와 '그러므로 우리는 원하는 만큼 바꿀 수 있다' 사이에는 위험한 비약이 있다. 권력의 착각은 바로 이 지점과 닿아 있다. 물론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임 정부는 그게 비상계엄이라는 3류 소설에나 나올 법한 '권력의 폭주'로 이어졌다면, 현 정권은 암세포를 도려내는 식의 해법이 아니라 아예 개별 시스템의 본질을 건드리는 '권력의 과신'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가 '국정의 진폭'이 너무 크다는 데 있다고 생각해 왔다. 한 정권이 자신의 철학과 역사 인식에 따라 국가 시스템을 크게 바꾸면 다음 정권은 그것을 다시 반대 방향으로 되돌리려 한다. 전임 정권이 한 일을 뒤집는 것이 개혁이 되고, 그 개혁을 다시 뒤집는 것이 또 다른 개혁이 되는 악순환이다. 정권에 따라 국정의 시계추가 너무 크게 흔들리니 안정성과 지속성이 떨어지고 아예 어지러울 정도다. 국력이 세계 6, 7위권이라는 나라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렇게 국정 기조나 정책이 확확 바뀌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그러니 중간 지대는 갈수록 설 자리가 좁아지고 두 개의 정치 행성이 따로 돌고 있는 듯한 형국 아닌가.
이 대통령은 '중도보수'까지 품는 구조적 다수 구상을 내비쳐왔다. (국민의힘도 '중도진보'까지 품는 구조적 다수 전략으로 전환하면 어떨까 싶다.) 그러나 요즘 모습을 보면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것 같다. 딜레마인가. 어느 학계 원로의 말로 글을 맺고 싶다. "정치나 국정 영역에서 절대적 길은 없다. 상대적 가치가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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