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2020년까지 30조원을 투입하는 건강보험 보장확대 방안을 내놨다. 급여화 항목을 늘려 장기적으로 성형과 미용을 제외한 모든 치료에 건강보험을 적용하겠다는 게 골자다. 

시선은 3500만명이 가입한 ‘국민보험’ 실손의료보험에 쏠린다. 비급여 의료비를 보장받기 위해 가입한 실손보험 수요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돼서다. 일각에서는 상품의 존립 이유가 사라져 폐지될 것이란 주장도 나온다.

어린이의 열 체크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뉴시스 전진환 기자

◆실손보험 ‘효용성’ 있을까

실손보험은 건강보험의 보장영역이 늘어나면 실효성이 떨어져 신규가입이 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효용성이 단번에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수요가 줄겠지만 건강보험이 보장하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있다는 것. 

한 보험사의 관계자는 “건강보험 보장이 확대되지만 모든 비급여가 급여화되는 것이 아닌 만큼 보장범위가 한정적일 수 있다”며 “실손보험만이 보장할 수 있는 사각지대가 있다. 상품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당장 모든 비급여치료가 급여화되는 것은 아니다. 복지부는 급격한 비용 증가 등을 고려해 ‘예비급여’란 제도를 신설했다. 병원에서 의료비 지출비중이 높은 MRI·초음파 등 치료에 필수적인 비급여는 2022년까지 모두 급여화한다. 

다만 높은 가격에 비해 얻는 효과가 불분명한 비급여치료는 바로 급여화로 전환하지 않고 환자 본인부담률을 30~90% 사이에서 탄력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예컨대 암 치료를 위한 고가 항암제나 고도의 척추 및 관절수술에 사용되는 로봇수술 등은 예비급여에 포함돼 급여화 전환평가를 받는다. 평가기간 동안 환자는 30~90%로 차등화된 본인부담금을 내야 한다. 물론 예비급여는 평가를 통해 급여로 완전히 편입할지, 비급여로 다시 돌려보낼지 결정된다. 따라서 앞으로도 실손보험 보장이 필요한 항목은 존재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실손보험의 필요성이 크게 떨어질 것은 분명해 보인다. 김종명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의료팀장은 “앞으로는 실손보험 없이 건강보험만으로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모두 받을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실손보험은 선택적으로 가입하는 고급의료 수요로 제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손보험, 해지할까 유지할까 

이번 정부 발표로 현재 실손보험 가입자들은 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좋을지 헷갈린다. 실손보험 갱신형 상품은 보장받을 나이까지 보험료가 계속 인상돼 고령자일수록 납입부담이 크다. 따라서 상당수의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가 이탈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의료계 관계자는 “앞으로 보완책이 추가로 발표될 수 있는 만큼 성급하게 실손보험을 해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5년간 점진적으로 시행되는 대책이므로 보험사의 실손보험료 할인 여부 등을 살펴보고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건강보험 보장확대만 믿고 실손보험에 가입하지 않아도 손해를 볼 수 있다. 이번 정책은 2020년까지 5년간 단계적으로 실시된다. 이 기간 동안 은퇴하거나 큰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중·장년층은 기존 실손보험을 유지하고 미가입자라면 가입하는 편이 낫다.


◆보험사 표정 ‘미묘’… 의료계는 ‘반발’ 

보험사들은 이번 정책을 두고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지금까지 보험사들은 실손보험에서 높은 손해율을 떠안았다. 실손보험 손해율은 2014년 108.5%에서 지난해 120.7%로 상승했다. 손해율이 100%를 넘으면 수익에 비해 지출이 많다는 뜻이다. 이에 보험사들은 실손보험료를 꾸준히 인상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확대정책으로 보험사의 실손보험 손해율이 큰 폭으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총의료비 69조4000억원 가운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은 의료비 규모는 13조5000억원이다. 국민건강보험의 확대 적용정책에 따라 비급여 의료비는 4조8000억원으로 8조7000억원(64%)이나 줄어들 전망이다. 

이번 조치는 일단 보험사에 유리하다. 지난해 말 기준 실손보험 가입률은 65%, 실손보험의 비급여보장률은 80%다. 전체 비급여 의료비 13조5000억원 중 10조8000억원(비급여보장률 80% 감안 시)이 해당된다. 이 금액에서 실손보험 가입률 65%를 적용하면 보험사가 가입자에게 지급할 금액은 6조3000억원이 된다. 결국 보험사는 전체 10조8000억원에서 6조3000억원을 뺀 4조5000억원만큼 보험금 지급부담을 덜 수 있다. 

자연스레 보험료 인하 요구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보험사 관계자는 “이번 정책은 국민복지 향상이라는 대전제 아래 보험사의 실손보험료를 내리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며 “비급여의 급여화가 상당부분 이뤄지면 실손보험의 손해율이 떨어지고 보험료가 할인되는 선순환이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상품 수요가 줄면 시장에서는 대체상품의 요구가 커지기 마련”이라며 “앞으로 건강보험 확대정책을 지켜보며 현장 반응을 살펴 고객의 요구에 맞는 상품을 대체 공급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뉴스1 DB



의료계 일각에선 이번 정책을 두고 반발이 크다. 생색은 정부가 내고 책임은 고스란히 의료현장이 떠안는다는 주장이다. 의사들의 모임인 대한평의사회를 주축으로 의료계 주요 인사들이 모인 비상연석회의는 이번 정책을 반대하는 긴급 성명서를 내고 “의료수가의 원가보전이 선행되지 않는 비급여의 전면 급여화는 대한민국 의료 공급체계를 붕괴시킬 것”이라며 “또 신의료기술의 빠른 도입을 막아 의료기술의 발전과 환자의 치료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점에서 환자 생명권에도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는 중립을 지키고 있다. 의사협회 관계자는 “정부의 의료제도 개선과 국민의 의료비 부담을 없애려는 노력에 공감한다”면서도 “급격한 변화에는 부작용과 혼란이 야기될 수 있으므로 단계적이고 신중한 검토를 거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건강보험 확대… 현장 목소리 들어보니

복지부가 내놓은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대책’은 크게 두가지로 나뉜다. 치료에 필요한 모든 비급여(3800여 개)를 급여화하는 한편 국민 부담이 큰 3대 비급여(특진비, 특실료, 간병비)를 실질적으로 없애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건보 보장률은 2015년 63.4%에서 2022년 70%로 높이고 국민 1인당 평균 의료비 부담은 50만4000원에서 41만6000원으로 낮추겠다는 계획이다. 이번 대책과 관련, 직접적인 의료수혜자인 의료소비자들과 의료계 현장 관계자들은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을까.

의료소비자들은 건강보험 보장 확대를 환영하면서도 현재의 의료서비스가 오히려 불편해질 수 있다는 우려섞인 반응을 보였다.


시민 김모씨(40)는 “건강보험공단의 재정 부족으로 세금이나 건보료 인상 가능이 있지만 어찌됐든 국가가 의료서비스 보장을 확대해주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직장인 남모씨(34)는 “유럽의 경우 건강보장률이 매우 높아 의료비가 거의 공짜 수준이지만 그만큼 내원객이 많아 한번 진료를 받으려면 한 두시간을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도 그렇게 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지 않나. 현재의 건강보험과 민간 실손보험으로도 진료비 보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의료현장인 병원에서는 중증환자와 경증환자의 보장률을 달리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경기도 내 한 정형외과 관계자는 “정말 아파서 내원하는 분들도 많지만 노인의 경우 몸이 조금만 불편해도 재활센터를 찾는다. 회당 진료비가 몇천원대 수준으로 저렴하기 때문”이라며 “이 경우 재활이 시급한 중증환자들이 노인환자에 밀려 대기하는 사례가 많다. 환자 불평은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경증환자의 본인부담율을 높여야 무분별한 의료쇼핑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병실대란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복지부는 내년부터 2~3인실에 우선 건보를 적용한 뒤 2019년엔 중증호흡기 질환자, 산모 등에 한해 1인실에도 건보를 적용할 계획이다. 다만 환자 본인 부담률은 일반병실(20%)에 비해 높은 최대 50%를 적용한다.

서울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내년 하반기부터 2~3인실의 건강보험 보장이 가능해져 병실 부족 사태가 생길 수 있다”며 “본인부담률이 높긴 하지만 보험적용이 된다면 불편한 5~6인실이 아닌 상급병실로 환자들이 몰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이번 비급여 대책으로 인해 대형병원 쏠림현상이 더 심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본인부담금이 줄어들면 시골보단 당연히 의료환경이 좋은 대형병원을 선호하게 될 것”이라며 “결국 피해는 병원을 찾는 의료소비자들의 몫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1호(2017년 8월16~2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