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는 가격표보다 영수증을 먼저 기억한다. 라면값이 몇십 원 내렸다는 뉴스보다 장을 본 뒤 손에 쥔 영수증 속 총액이 더 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는 밀가루와 전분당 가격 인하를 계기로 라면 등 일부 가공식품 가격을 낮추며 물가 안정에 나섰다. 소비자 부담을 덜기 위한 조치이나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은 다르다. 분명 일부 품목 가격은 내렸지만 장바구니 총액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생활비가 줄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이유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이렇게 반문했다. "라면 가격을 50원 내린다고 소비자가 얼마나 체감하겠느냐." 처음에는 기업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처럼 들렸다. 원가 구조를 들여다보니 질문의 무게가 달라졌다. 물가는 과연 가격표만으로 움직이는 것인지 되묻게 됐다.
라면 원가에서 밀가루가 차지하는 비중은 10~20% 수준이다. 나머지는 팜유와 스프 원료, 포장재, 물류비, 인건비, 에너지 비용 등으로 구성된다. 밀가루 가격이 하락하더라도 제품 가격을 같은 폭으로 낮추기 어려운 배경이다. 여기에 국제 유가와 환율까지 변동 폭을 키우면서 원가는 여러 갈래에서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단순한 가격 인하만으로 흡수하기에는 구조가 복잡하다.
가격 인하 요구가 이어질수록 기업의 선택지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수익성이 줄어들면 연구개발(R&D)이나 설비 투자, 신제품 개발 여력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일부 품목만 가격을 조정했다는 비판이 있었지만 원가 구조를 고려하면 그 역시 현실적인 한계 속에서 나온 판단으로 보인다.
더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원재료다. 계란이 대표적인 사례다. 계란값이 오르면 단순히 계란 한 판 가격에서 끝나지 않는다. 빵과 과자, 김밥과 샌드위치, 도시락, 외식 메뉴까지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하나의 원재료가 식품 산업 전반으로 파급되는 구조다.
소비자의 장바구니는 이처럼 다양한 품목이 얽혀 구성된다. 이 구조에서는 완제품 하나의 가격을 낮춘다고 해서 생활비 전체가 곧바로 내려가기는 어렵다. 소비자는 라면 한 봉지가 아니라 장바구니 전체를 기준으로 물가를 체감하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정책과 체감의 간극이 드러난다. 정책은 개별 품목의 가격표를 중심으로 움직인다. 반면 소비자는 영수증의 총액을 기준으로 물가를 판단한다. 같은 물가를 두고도 출발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가격 인하 정책 자체는 필요하다. 다만 물가를 움직이는 중심이 원재료와 공급망, 산업 간 연결 구조로 확장된 지금, 개별 품목 중심의 접근만으로는 체감 물가를 설명하기 어려워 보인다.
결국 중요한 것은 영수증이다. 총액이 줄어들지 않는 한 소비자는 물가가 내렸다고 느끼지 않는다. 가격표를 낮추는 정책만으로 장바구니 전체 비용을 낮추기 어렵다. 물가를 바라보는 기준이 바뀌지 않는다면 체감 물가와 정책 사이의 간극은 계속 남을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