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아아앙~~” “애애앵~~~~”
첫째아이가 울자 둘째도 덩달아 운다. 아내가 잠시 집안일을 하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태어난 지 50일된 녀석을 먼저 달래려니 30개월 먼저 태어난 첫째가 자기부터 안으란다. 뭐가 그리도 불만이었을까. 갖고 놀던 장난감도 이미 다 엎어버렸고 그야말로 상황은 ‘멘붕’ 그 자체다.
몸이 몇개라도 모자랄 판이다. 매번 이 같은 일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또 그러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어쨌든 아이들도 인격을 가진 ‘사람’이 아니던가. 날씨나 하루 일과에 따라 기분이 좌우된다. 불편을 느끼는 건 똑같은데 기분을 표현하는 방법이 아직 좀 서툴 뿐이다. 게다가 본능에 더 충실한 점도 떼를 쓰는 배경이 아닐까.
◆둘째의 탄생, 첫째의 견제
큰아이가 27개월 되던 때 둘째아이가 태어났다. 당시 가장 우려했던 건 금전적인 것도 육체적인 것도 아니다. 첫째의 견제가 가장 큰 걱정거리였다. 지인들로부터 “동생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첫째가 안하던 짓을 하니 잘 살펴야 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기 때문. 동생이 자기 것을 빼앗는다고 여기는 첫째가 이를 견제하려는 게 일반적인 모습이라는 조언이다. 혼자 모든 것을 독차지하다가 갑자기 누군가와 그걸 나눠야 하니 그보다 싫은 게 어디 있을까.
첫째와 둘째가 처음 만난 건 병원에서였다. 신생아실의 두꺼운 유리를 사이에 두고 남매가 조우했는데 반응이 의외로 덤덤했다. “어? 아가네?” 친동생이라는 개념도 없을뿐더러 그저 갓난아기로 생각했나보다.
아내는 5일간 입원한 뒤 산후조리원에서 2주를 더 지내다가 둘째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어머니께서 첫째를 돌봐주셨다. 어린이집을 오가고 끼니도 챙겨야 해 도움을 요청했는데 흔쾌히 수락하신 것이다. 유치원 원장으로 오랜 시간 아이들과 함께해온 노하우 덕분인지 첫째의 눈높이에 잘 맞춰주셔서 첫째는 할머니를 잘 따랐다.
둘째가 집에 온 날 퇴근 무렵 아들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아빠! 아빠! 집에 아가가 왔어요. 아가가 우유 먹었어요.”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쏟아진다. 견제대상이 아니라 신기한 손님이 왔다고 느낀 듯하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들어오는 모습에서부터 엄청난 충격을 받고 배신감을 느낀다는데 다행히도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물론 첫째의 질투가 없었던 건 아니다. 어머니께서 아이를 안자마자 내려놓으라며 매달리고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울고불고 난리다. 엄마가 아이를 안고 있을 땐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았는데 할머니가 안으니 눈치가 이상했나보다. 일정시간 떨어져 지낸 탓일까. 할머니나 아빠가 안으면 안되고 엄마는 된단다.
결국 어머니, 아내와 함께 원칙을 정했다. 모든 것을 첫째에게 허락받은 다음 행동하기로 했다. 마침 둘째가 울기 시작한다. “동생 우는데 어떻게 할까?” 무조건 첫째의 허락을 기다렸다. 가족 모두 꼼짝 않고 첫째를 바라봤는데 귓가를 울린 반가운 한마디. “아빠가 아가 안아주세요.”
◆또 하나의 직장으로 출근
어린아이를 키우는 또래 직장인들은 아빠든 엄마든 “직장이 2개”라고 말한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투잡’을 떠올리겠지만 가정에서의 육아가 그만큼 쉽지 않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무엇보다 힘든 건 집에서 회사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직장이 2개라도 근무지가 바뀌면 한쪽 업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한 직장에서 다른 직장의 일을 처리하는 건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고 만약 하더라도 여러모로 난관이 많다.
그런 의미에서 육아 역시 ‘또 하나의 직장’이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결혼 전엔 퇴근 후 집에서 일하는 게 일상이었고 결혼 후에도 아이가 기어 다니기 전까지는 일정부분 아내의 용인 아래 업무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아이가 옆에서 말을 건다. 의사표현도 명확하다. 누르면 반응하는 컴퓨터가 얼마나 신기한가. 매번 아빠 옆에 앉아서 자기도 컴퓨터를 해야 한단다.
이제는 큰 녀석이 뭐든지 다 자기가 해보겠다고 조른다. 주관이 형성되면서 매사가 ‘호기심 천국’이다. 가위나 칼처럼 위험한 것도 자꾸 만지고 싶어한다. 어른의 행동을 보고 여러가지를 터득하는 시기여서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모두 조심스럽다. 행동반경이 넓어져 잠깐 한눈팔면 큰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에 항상 주의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언제 어떤 사고를 칠지 몰라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또 하나의 직장에서 퇴근시간은 사장님이 주무실 때다. 아이가 잠든 뒤에야 비로소 미뤄둔 업무를 시작할 수 있다. 밤에는 회사 일 외에 방송원고 준비도 해야 해서 단 30분이라도 무척 아쉽다. 초등학생 아이를 키우는 친구가 “퇴근한 다음 최선을 다해 놀아주면 빨리 잠든다”고 조언했는데 매우 효과적이지만 문제는 둘 다 지쳐서 같이 곯아떨어진다는 점이다.
50일을 함께 지낸 어머니께서 귀가하신 후 처음으로 네 식구가 함께 잤다. 그동안 할머니와 함께 거실에서 따로 자던 큰 녀석의 ‘할미앓이’가 가장 걱정이었다. 동생이 새벽에 울기라도 하면 그 소리에 깰까 조마조마했다. 간신히 달래서 재웠는데 도로 깨면 졸릴 때까지 또 놀아줘야 한다. 혹여 모기가 아이들을 물지나 않을지도 걱정스럽다.
자는 분위기를 만들어 스스로 누울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도 시간이 들고 노력이 필요하다. 날마다 체력이 방전되고 날마다 기분이 좋을 순 없다. 온도와 습도도 쾌적하게 맞춰줘야 그나마 기분변화가 적다. 어느 것 하나 공짜가 없다. 전기와 가스고지서의 늘어난 동그라미는 편안함을 얻은 대가다.
◆아이 키울 돈보다 ‘시간’ 보장해야
육아는 하나부터 열까지 시간싸움이다. 무엇보다 남편의 출산휴가기간이 턱없이 부족한 점은 개선돼야 한다. 유급 3일 무급 2일을 합해 최대 5일까지 주어지지만 이를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첫째 때는 3일이어도 큰 불편함이 없지만 둘째 때는 5일도 부족하다. “남자가 애 낳는 것도 아닌데 휴가가 왜 필요하냐”는 말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아 몇달간의 육아휴직은 남편들의 꿈일 뿐이다.
그나마 주어지는 휴가도 대부분 이벤트 발생일로부터 3일을 적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아내가 금요일에 아이를 낳으면 남편은 금·토·일요일을 쉬고 월요일에 출근하는 사태가 생긴다. 주말이나 휴일에 아이를 낳더라도 해당 기간만큼 대체휴가를 인정해줬으면 좋겠다. 또 3일을 연속으로 쉬는 것도 무의미하다. 병원에 입원하거나 퇴원할 때처럼 산모가 혼자 움직이기 어려울 때 도울 수 있도록 융통성이 필요해 보인다.
예전보다 산모의 평균연령이 높아진 데다 사회참여도가 늘면서 가정에서의 남편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젊을 때 아이를 키우던 시절과 비교하면 요즘 산모들은 출산 후 회복속도가 느리고 체력에도 분명 차이가 있다. 나아가 아내가 회사에 복귀하면 남편의 가사와 육아 참여는 더욱 필요하다.
어린이집·유치원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물리적으로 한계가 있다. 오랜 시간 아이를 맡길 수 있는 학원형 유치원, 여러 사교육이 인기를 누리는 배경이다. 따라서 출산·육아수당을 늘리기보다 가정을 돌볼 시간을 보장하는 편이 효과적이라고 판단된다.
퇴근했을 때 아이가 “아빠~”를 외치며 달려와 안기는 이 한순간이 너무나 행복하고 즐겁다. 부모세대가 그랬듯 우리도 다음세대에 물려줄 환경을 조금이나마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건 본능이자 의무일 것이다. 바쁜 회사생활에 아이 돌보는 일을 소홀히 하다 보면 아이는 어느새 훌쩍 커버린다.
아이를 키우는 건 시간과의 싸움이다. 스스로 깨우치고 행동하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같은 얘기를 끝도 없이 반복하면서 타이를 때도 있고 쏟아지는 아이의 요구사항도 최대한 수용해야 한다. 만약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아이를 재촉하거나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면 아이 스스로 생각할 시간이 부족해 독립성과 창의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과 가정이 양립하려면 시간이 먼저고 돈은 그 다음이다.
오늘도 수많은 부모가 2개의 전쟁터에서 황금보다 귀한 ‘시간’과 싸운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온갖 어려움을 견뎌내는 가장들,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는 존경받아 마땅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6호(2017년 9월20~26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