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중국과 미국)는 우리나라가 고속 성장하는 과정에서 버팀목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최근 중국의 사드보복과 미국의 보호무역주의를 겪으면서 우리 경제의 취약성이 확인됐다. G2에만 의존해서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이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러한 대외적인 경제환경 변화 때문이다. 한국 경제의 새로운 파트너로 주목받는 아세안의 현재와 미래상을 집중 조명했다.<편집자주>
동남아시아국가연합(아세안)시장이 달아오르고 있다. 2018년 아세안 증시가 2017년의 활황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소매시장도 2020년까지 5883억달러(약 636조8347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구 6억명의 거대 시장인 아세안 경제를 이끄는 해외 기업들의 성장세는 국내 기업들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내외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많은 기업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반면교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 최대 LCC '에어아시아'
에어아시아는 1993년 말레이시아 국영기업으로 설립된 항공사다. 국영항공사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에어아시아는 한해도 흑자를 기록하지 못했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경영악화 상태에 빠졌다. 이때 에어아시아를 인수한 이가 토니 페르난데스 현 에어아시아그룹 회장이다. 페르난데스 회장은 당시 전세계 항공업계에 불어닥친 저가항공사(LCC) 시류에 편승, 2002년 에어아시아를 이끌고 LCC시장에 뛰어들었다.
15년이 지난 현재 에어아시아는 세계 최고의 LCC로 거듭났다. 스카이트랙스는 2017년 6월 세계 최고 LCC로 에어아시아를 선정했다. 이로써 에어아시아는 9년 연속 이 부문 선두에 이름을 올리는 기염을 토했다. 뿐만 아니라 지난 12월10일 ‘월드 트래블 어워즈 그랜드 파이널’이 선정한 세계 최고 LCC 상도 5년 연속 수상하는 등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에어아시아그룹의 장거리 저비용 항공사인 에어아시아 엑스는 2017년 상반기 5835억원(1분기 3097억원, 2분기 2738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항을 이어갔다.
당분간 에어아시아의 질주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페르난데스 회장은 “에어아시아는 베트남과 중국에서 조인트벤처 설립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아시아지역에서 강력한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하고 디지털화를 적극 추진하겠다”고 청사진을 제시했다.
◆동남아의 아마존 '라자다'
라자다는 ‘동남아의 아마존’이라 불리는 아세안 최대의 전자상거래 업체다.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 ▲베트남 등 6개국에서 사업 중이다. 가전제품을 비롯해 생활용품과 의류, 스포츠용품, 식료품 등 약 2억1000만개의 상품을 취급하는 유통 공룡이다. 지난해에는 알리바바가 라자다의 성장가능성에 10억달러(약 1조1100억원)를 투자, 라자다의 최대주주가 됐다.
2016년 아세안 전자상거래시장 규모는 74억달러(약 8조112억원)에 달한다. 업계에 따르면 아세안 온라인 소매시장은 2025년 878억달러(95조522억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폭발적인 성장의 원동력은 지리적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대부분의 아세안 국가는 여러개의 섬으로 이뤄진 ‘군도국가’다. 여기에 불교, 이슬람교, 가톨릭 등 종교도 다양해 다양한 상품을 취급하는 전자상거래는 필수다.
라자다가 2017년 11월11일부터 12월12일까지 한달간 실시한 온라인페스티벌에서 기록한 일 최고 거래액은 2억5000만달러(약 2705억원). 동남아 전역의 소비자들이 라자다를 이용한 탓에 배송을 위해 인도네시아와 태국에 직항 전세기도 투입했다.
국내에서는 제주도가 라자다에 직접 상품을 론칭하는 등 적극적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지난 12월18일부터 오는 1월7일까지 연말연시 집중판촉행사기간을 맞아 7개 중소기업의 제품을 라자다에 선보였다. 주요품목은 화장품, 공산품, 가공식품 등이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동남아시장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이번 행사를 기획했다”고 밝혔다.
◆아세안 움켜쥔 ‘그랩’
우버가 주춤하는 사이 아세안의 차량공유 서비스시장은 ‘그랩’이 움켜쥐는 모양새다.
그랩은 싱가포르에 거점을 둔 차량공유 서비스 기업으로 2012년 설립됐다.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베트남, 미얀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7개국 142개 도시에서 하루 평균 350만건의 호출을 받는다. 시장점유율은 95%, 누적승차 건수는 2017년 11월 10억건을 돌파했으며 등록된 드라이버수는 200만명 이상이다.
2017년 7월에 일본의 소프트뱅크와 중국의 디디추싱으로부터 20억달러(약 2조1630억원)를 투자받은 데 이어 다른 투자자들로부터는 5억달러(약 5406억원)를 받아 총 25억달러(약 2조7015억원)를 확보했다. 이는 동남아 벤처기업 사상 최대 규모의 조달 액수다.
그랩은 이를 바탕으로 현지화에 돌입, 아세안시장을 장악한다는 계획이다. 현재 그랩은 주행거리가 짧은 아세안지역의 시장 특성을 반영해 단거리 요금을 낮추는 한편 그랩바이크, 그랩페이 등 연관 분야를 지속적으로 연구 중이다.
◆나무 심는 '더블에이'
‘노 잼, 노 스트레스’ 라는 광고 문구로 유명한 글로벌 복사용지기업 ‘더블에이’도 아세안기업이다. 태국에 본사를 둔 더블에이는 국내 복사용지 점유율 30%를 차지하며 한국제지의 ‘밀크’와 양강구도를 구축했다. 더블에이는 전세계 130여개국에 복사용지를 수출하며 연간 매출은 8억달러(약 8660억원)에 달한다.
더블에이는 100% 제재한 나무로 종이를 만드는 경영방식을 고집한다. 태국 150만여개 농가에 묘목을 5바트(약 165원)에 팔고 3~5년 후 그루당 14배 더 비싼 70바트(약 2300원)에 사들인다. 농민들은 휴경지에서 수익을 창출하고 기업은 저렴한 값에 원자재를 얻는 셈이다. 더블에이는 이 방식으로 한해 6000만그루의 나무를 베고 그 3배가 넘는 2억그루를 매년 심는다.
IT기술이 발달하면서 제지시장 사양화가 전망되는 가운데 띠라윗 리타본 더블에이 제지사업 총괄 부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제지시장의 규모를 현재와 비슷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이 목표”라며 “카피센터를 비롯한 다양한 방안을 통해 시장점유율 1위를 넘어 지속가능한 제지회사로 발돋움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20호(2017년 12월27일~2018년 1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