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태 하나금융지주 회장의 시련이 장기화될 전망이다. 채용비리 의혹을 집중적으로 조사하면서 전방위 압박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은 최근까지 특혜채용 문제로 금융감독원의 특별검사를 받은 데 이어 현재 경영실태와 지배구조 검사를 받고 있다.
하나금융에선 최악의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김 회장과 소원해진 김승유 전 하나금융 회장과의 관계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다. 금융당국과의 팽팽한 갈등 국면에서 김 전 회장의 공헌을 재평가해 내부 결속을 다져야 외압을 이겨낼 수 있다는 것이다. 또 노조와도 적극적으로 대화하는 등 김정태 회장이 소통의 리더십으로 당면한 위기를 정면 돌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금융당국과 갈등 끝내는 묘안은
하나금융에 대한 금융당국의 검사는 크게 두 갈래다. 채용비리 의혹과 지배구조 문제다. 검찰은 인사 의혹과 관련해 KEB하나은행 전∙현직 인사부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등 사정 드라이브를 건 상태다. KEB하나은행은 사외이사, 계열사 사장과 관련된 지원자에게 사전에 공고하지 않은 전형을 적용하거나 임원면접 점수를 높게 주는 등 입사 관련 특혜를 줬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수사와 별개로 금감원은 4월 한달간 하나금융의 최고경영자(CEO) 승계 절차, 사외이사 독립성과 전문성 등 적정성을 점검하는 경영실태 및 지배구조 검사를 벌인다. 이는 서면조사로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의 연임 과정과 채용비리 관련 검사에서 당국과 대립하며 피로가 누적된 하나금융에선 여러가지 문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실제 하나금융 인사팀 업무는 사실상 정지 상태다. 지난 3월초부터 예정된 인사 발령은 아직도 진행되지 않았다. 또 금융당국과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하나UBS자산운용 인수 등 금감원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일들도 후순위로 밀린 상태다. 이에 따라 하나금융 내부에선 금융당국과의 갈등 블랙홀에서 빠져나올 출구전략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집안 단속을 위해 김 전 회장과 화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업계에서는 김 회장과 김 전 회장이 통합 KEB하나은행의 초대 행장을 선임할 때 갈등을 빚은 뒤 사실상 관계가 끊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김 전 회장측은 한국투자금융 출신인 김병호 당시 하나은행장(현 하나금융 부회장)을 지원했지만 김 회장은 자신과 같은 서울은행 출신 함영주 행장을 낙점했다.
이를 계기로 김종준 전 하나은행장 등 한국투자금융 출신들이 하나 둘 물러나면서 김 전 회장 라인이 힘을 잃었다. 이들의 갈등은 최흥식 전 금감원장이 재임 내내 하나금융의 지배구조를 문제삼으면서 수면위로 떠올랐다. 최 전 원장은 하나금융 사장 출신으로 김 전 회장이 삼고초려 해 영입한 인사다. 금감원과 김 회장의 껄끄러운 관계에 김 전 회장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으로 금융권은 보고 있다.
하나금융 일각에선 김 전 회장의 재임 성과를 재평가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 전 회장이 SK글로벌(현 SK네트웍스) 사태 당시 채권단협의회 좌장을 맡아 SK그룹의 구조조정을 무난히 이끌면서 단자회사로 시작한 하나은행을 제도권에 올려 놓았다는 것이다.
여기에 김 회장이 외환은행과의 통합을 무난히 이끌면서 3대 금융지주사로 도약시켰다는 평가를 더하면 현재 하나금융 고도성장의 발판이 김 전 회장의 공헌으로 가능했다는 논리가 완성된다. 틀어진 양측의 관계 복원이 가능한 대목이다. 중국 개방화를 이끈 덩샤오핑이 자신을 탄핵한 마오쩌둥에 대해 ‘중국 건국의 아버지’라며 과오보다 공로를 재평가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앞서 검찰은 2003년 SK글로벌이 2001년 회계장부를 작성하면서 1조5587억원 규모의 분식회계를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금융당국은 부실위험을 안게 된 채권단이 협의해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도모하는 방침을 정했다. 이에 김 전 회장은 당시 SK그룹의 주채권은행인 하나은행의 행장으로 채권단을 이끌었다. 김 전 회장은 이해관계가 상충되는 채권단을 조정하면서 SK글로벌의 해외법인축소, 자산매각 등 경영정상화 계획을 주도했다. 하나은행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을 성공적으로 주도하면서 이때부터 시중은행으로 인정받게 됐다.
하나금융 고위관계자는 “김승유-김정태 회장을 빼고는 하나금융지주의 역사를 설명하기 힘들다”며 “리딩 금융그룹으로 나가는 데 김 회장이 성과를 냈고 그 바탕은 김 전 회장의 헌신이 있었다. 이는 인정받아야 할 부분”이라고 말했다.
◆소통의 달인 김정태, 노조와 대화 창구 여나
팽팽하게 대립중인 노조와의 관계 정상화도 김 회장이 풀어야 할 또다른 숙제다.
지난해 11월2일 구성된 하나금융 적폐청산 공동투쟁본부는 KEB하나은행·하나금융투자·하나외환카드 노조 등이 참여하고 있다. 하나금융 공투본은 ▲이상화 전 KEB하나은행 본부장 특혜 승진 의혹 ▲노사합의사항 미이행 등 노조 탄압 ▲아이카이스트 특혜성 대출 의혹 등을 이유로 김 회장의 퇴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
전국금융산업노조 KEB하나은행 지부 고위관계자는 “공투본은 김 회장이 퇴진할 때까지 지속적으로 활동을 전개할 것”이라며 “적폐가 청산되는 그날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공투본은 사측이 대화를 요구하면 조직의 발전을 위해 응하겠지만 김 회장 퇴진운동 중단을 전제로 한 대화에는 응하지 않을 방침이다.
이에 김 회장이 적극적으로 노조를 끌어안는 전향적인 소통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평소 김 회장은 ‘금융업은 서비스산업’이라는 철학을 바탕으로 실물의 그림자라는 낮은 자세와 소통으로 영업력을 쌓아왔다. 하나금융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 출신도 아니고 40세 넘어 하나은행에 입행했지만 지주회장까지 오른 것도 이런 ‘섬김의 리더십’ 때문이었다는 평이다.
김 회장에겐 ‘소통의 달인’이란 별명도 따라 다닌다. 그는 하나대투증권 사장 시절 사내 장기자랑에 나가 트레이닝복을 입고 당시 유행하던 ‘마빡이 춤’을 췄다. 하나은행장 시절엔 새해 첫 출근 날 회사 로비에서 반짝이 옷을 입고 개그콘서트의 ‘갑사합니다’ 동작을 따라하면서 직원들에게 웃음을 안겼다. 회장 부임 초기 월례간담회 때는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열창하며 말춤까지 추는 등 임직원들과 격의 없이 어울렸다.
하나금융은 언제나 노조와의 대화 창구를 열어놓겠다는 입장이다.
하나금융 관계자는 “경영진과 노조와의 대화의 문은 언제나 열려있다”며 “어떤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반대를 위한 반대’만 아니라면 노조와 진정성을 갖고 대화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4호(2018년 4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