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이 각종 규제에 갇혀 몸살을 앓고 있다. 금융당국이 최고금리 인하 등 직접 가격통제에 나선데 이어 중금리대출 총량규제, 권역별 의무대출 규제 등으로 저축은행의 손발을 묶고 있는 실정이다.
저축은행은 그간 당국이 요구한 서민금융 활성화라는 본연의 임무 수행에 힘써왔고 안정성과 건전성 측면에서 꾸준히 개선된 모습을 보였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저축은행은 당국이 주도한 서민금융 사잇돌대출의 공급액을 1년새 3배 이상 늘리며 서민금융 활성화의 단초를 제공했다. 그러나 정작 저축은행이 출시한 중금리 대출상품은 총량규제로 수익성이 악화될 것이란 우려가 제기된다. 또 핀테크(금융과 기술의 결합) 활성화를 위해 일제히 비대면 채널 확장에 나섰지만 권역별 의무대출 규제에 걸려 고객 편의성도 높일 수 없는 처지다.
규제 종류도 다양하지만 방식도 문제다. 저축은행에는 ‘A만 되고 나머지는 안된다’는 포지티브식 규제가 적용된다. 이에 따라 저축은행에서 골드바는 판매할 수 있지만 실버바를 취급할 수 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허가된 업무만 진행할 수 있는 탓에 새로운 사업을 발굴하기엔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저축은행이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통해 서민금융 활성화에 나서려면 도 넘은 당국의 현행 규제부터 철폐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서민금융 활성화에도 대출총량규제 ‘부메랑’
금융당국은 지난해 3월부터 저축은행에 상반기 5.1%, 하반기 5.4%로 가계대출 증가율을 제한했다. 1400조원을 넘은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시중은행의 가계대출을 조이면서 이 수요가 저축은행으로 이동하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당국은 총량규제와 함께 사잇돌 대출 등 정책형 중금리 상품 확대를 저축은행에 요구했다. 사잇돌대출이란 중·저신용자(4~10등급)에게 중금리(5∼19%대) 신용대출을 해주는 서민정책성 상품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시중은행·여전사·저축은행 등 금융권의 사잇돌대출 취급규모는 9568억원이었다. 이는 전년(3729억원)보다 2.5배에 이르는 수치다. 이 중 저축은행이 50%이상 규모를 공급했다. 저축은행의 지난해 사잇돌대출 취급액이 4697억원을 기록하며 전년보다 3배가량 급증한 것이다.
중금리 대출의 본래 취지가 서민을 위한 상품인 만큼 저축은행은 중·저신용자 비중을 90.7%로 끌어올렸다. 고신용자(1~3등급) 비율은 3%대로 대폭 낮췄다. 반면 시중은행은 저축은행과 정반대의 모습을 보였다. 지난해 고신용자에게 돌아간 사잇돌대출 비중은 35%를 웃돌았다. 중·저신용자 대출액 비중은 64.8%에 그쳤다.
그럼에도 정부는 저축은행의 중금리 대출상품만을 총량규제 대상으로 묶어 저축은행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금융위는 올 하반기 최고금리를 20% 미만으로 더 인하하겠다고 나선 상황이다. 금융당국이 금리 인하와 중금리대출 확대 등을 요구하면서도 대출총량 규제를 유지해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는 게 저축은행업계의 하소연이다.
실제 저축은행은 햇살론과 같은 정책 서민대출의 경우 6~8등급의 중·저신용자를 대상으로 금리 연 18% 이하의 대출을 취급했다. 하지만 이런 중금리대출이 총량규제에 걸리면서 저축은행은 생존을 위해 수익성이 낮은 중금리 서민대출을 줄이고 법정최고금리(연 24%)에 육박하는 고금리대출 취급을 늘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중금리 대출을 총량규제에서 빼주지 않는 상황에서 금리도 낮춘다는 것은 수익을 포기하라는 것”이라고 했다.
◆비대면채널 확대 막는 '권역별 의무대출' 규제
정부의 규제는 핀테크를 통한 비대면채널 확대 등 저축은행의 금융소비자 편의성 제고 노력도 막고 있다.
상호저축은행법에 따르면 저축은행은 권역에서 일정비율 이상의 대출을 취급해야 한다. 서울·인천·경기는 50%, 이외 4개 영업권의 경우 40%로 제한돼 있다. 때문에 인터넷전문은행, 시중은행, 카드사 등이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고 있는 반면 저축은행 업계는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비대면 계좌가 늘어나면서 사실상 영업구역의 제한이 없어졌음에도 저축은행만 규제를 받는 셈이다.
당국의 규제 완화가 저축은행에겐 실효성이 없는 경우도 있다. 지역금융 활성화를 위한 점포개설 규제 완화가 대표적 예다.
금융위는 최근 저축은행 점포개설 요건을 완화하는 내용의 ‘상호저축은행법 시행령 등 하위법규 개정안’을 내놨다.기존 지점설치 지역 최저자본금(40억~120억원)의 100%였던 증자조건을 50%로 낮추고 기존 각각 5%와 1%였던 출장소나 여신전문출장소의 요건을 없앴다.
문제는 저축은행의 점포개설이 여전히 까다롭다는 것이다. 저축은행이 점포를 개설할 경우 수도권에서 지점을 개설하면 60억원, 광역시와 지방은 각각 40억원, 20억원을 증자해야 한다. 시중은행은 증자요건 없이 금융당국에 신고하면 점포개설이 가능하지만 저축은행의 경우 완화됐다 하더라도 증자를 해야만 한다.
이처럼 정부가 유독 저축은행을 압박하는 이유는 2011년 저축은행 부실 사태 이후 부정적인 이미지가 지금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이라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그러나 저축은행은 그간 건전성 등을 개선했는데 당국의 규제는 여전히 과거에 묶여있다고 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저축은행의 당기순이익은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겼다. 건전성을 나타내는 지표인 평균 연체율과 고정이하여신비율도 지난해 말 각각 4.54%, 5.37%로 1년 전보다 개선됐다.
전문가들도 저축은행의 경영 자율성을 막는 불필요한 규제는 없어져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금융개혁의 본질은 규제완화, 자율성 강화, 시장 스스로의 관리인데 금융당국의 관치 행태가 극에 달하고 있다”며 “관에 종속된 금융업계가 제대로 경영 자율성을 발휘하지 못하는 처지에 빠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류창원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서민금융사가 발전하기 위해선 서민이 필요한 금융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하는데 지금의 포지티브 규제방식으론 서민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현행 규제를 유지하더라도 가능한 업무 범위를 넓히는 대안을 마련해줘야 저축은행업권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37호(2018년 4월25일~5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