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칼텍스는 올 하반기 MFC(올레핀 생산시설) 가동을 앞두고 있다. /사진=GS칼텍스
국제유가가 날로 상승하고 있지만 정유업계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한국이 가장 많이 수입하는 두바이유는 1분기 배럴당 평균 60달러에서 최근 70달러대로 높아지며 재고평가이익(원유 구입 시점 가격이 제품 판매 시점 가격보다 낮을 때 발생하는 이익)이 기대되고 있다.

하지만 수요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지 않아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이 반등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정유 사업의 불확실성이 커지며 정유사는 비정유 부문을 확대해 손실을 줄이고 새로운 활로를 마련하는 데 분주하다.

유가 고공행진에 ‘정제 마진·판매량’ 발목

에쓰오일이 잔사유를 원료로 하는 신규 고도화시설에서 PO(산화프로필렌) 원료를 공급하고 있다. /사진=에쓰오일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6월 넷째 주 국내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ℓ당 1587.6원을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최고가 1571.6원을 넘어선 수준이다. 전국 평균 휘발윳값은 최근 3주 연속으로 전주 대비 10원 이상씩 오르고 있다. 경유 가격도 ℓ당 1384.7원으로 올 초보다 13.1% 늘어났고 지난해 최고가(1401.1원)에 근접해가고 있다. 

최근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은 국제 유가가 밀어 올리고 있다. 서부텍사스산원유(WTI)와 북해 브렌트유, 두바이유는 6월 이후 배럴당 70달러를 돌파했다.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 등으로 경기가 회복할 것이란 기대에 국제유가는 지난해 11월 이후 계속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골드만삭스는 유가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탄소중립 기조로 인해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최근 원유 생산을 감산하기로 결정하는 등 수급 문제도 유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 분석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OPEC 감산과 이란의 원유 수출 제재가 겹치며 석유 공급이 원활하지 않다”며 “친환경 투자를 넓히는 미국은 셰일 오일의 생산량을 늘리지 않아 (공급이 더욱 줄어들어) 유가 상승이 지속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문제는 정제 마진이다. 원유 가격이 큰 폭으로 올랐지만 제품 가격 상승 폭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핵심 수익성 지표인 정제 마진이 1~2달러대로 내려앉았다. 정제 마진은 석유 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반비 등을 뺀 값이다. 올 4월 평균 정제 마진은 배럴당 2.5달러, 5월 평균은 2.2달러를 기록했다. 6월 셋째 주엔 배럴당 1.2달러로 올 들어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업계는 손익분기점을 정제 마진 4달러 안팎으로 본다.

업계는 올 2분기 유가 상승에 따라 재고평가이익은 발생하겠으나 정제 마진 부진으로 영업이익이 1분기에 비해 30~40% 감소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다만 OPEC의 감산 기조 완화와 백신 접종 확대, 여름 휴가철로 인한 이동 수요 증가 등이 이어지면 판매량이 늘어나 정제 마진도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탈정유’로 생존 모색 

SK루브리컨츠 윤활유 ZIC ZERO. /사진=SK이노베이션
국내 정유사는 비정유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화학 사업은 외부 변수가 큰 정유사업보다 고부가가치 제품을 중심으로 안정적인 시황 대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에쓰오일은 값싼 잔사유(원유에서 휘발유·경유·등유 같은 경질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 기름)를 신규 고도화시설에서 처리해 만든 PO(산화프로필렌) 원료를 공급하면서 수익성을 노리고 있다. PO는 자동차나 가구의 쿠션과 건축 보온재·화장품·섬유 첨가제·세정제 등에 사용되는 기초 원료로 세계 자동차 판매 호조와 가전·가구·포장재 판매 증가로 인해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석화(석유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에틸렌 사업도 올 하반기 본격화된다. GS칼텍스는 MFC(올레핀 생산시설)를 가동해 연간 에틸렌 70만톤과 폴리에틸렌 50만톤을 생산할 계획이다. 현대오일뱅크도 HPC(중질유석유화학시설)를 통해 에틸렌 85만톤과 프로필렌 40만톤 생산을 앞두고 있다. 이를 통해 회사는 정유 사업 매출 비중을 기존 85%에서 2030년 40%까지 낮춘다는 전략이다.

올 하반기에만 정유·화학사 포함 1000만톤의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 증설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에틸렌 가격이 하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정유업계는 플라스틱 수요 등 상황을 지켜보며 생산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윤활기유 사업에도 여념이 없다. 윤활유 사업은 높은 이익률로 실적 확대에 힘을 더하고 있는 ‘효자 사업부’다. 올해도 분위기가 좋다. 업계에 따르면 윤활기유 스프레드(제품과 원료의 가격 차)는 배럴당 ▲1월 50달러 ▲2월 59달러 ▲3월 70달러 ▲4월 87달러 ▲5월 89.5달러 ▲6월 86달러를 기록했다. 원재료인 벙커C유 가격이 낮은 수준을 유지한 데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 자동차 시장이 백신 효과로 생기를 찾고 있어서다.

정유업계는 전기차용 윤활유 개발에도 집중하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윤활유 시장은 지난해 1000만ℓ에서 2025년 6000만ℓ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SK루브리컨츠는 지난해 대비 2배 수준의 판매량을 자신하고 있다. GS칼텍스는 전기차 전용 윤활유 브랜드를 내놓으며 시장에 합류했다. 전기차용 냉각계 윤활유도 개발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전기차에 최적화된 전용 윤활유 개발을 마치고 올 하반기 출시를 앞두고 있다. 현대오일뱅크도 전기차용 윤활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