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에서 김경문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21.8.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이상철 기자 = 야구는 2020 도쿄 올림픽에서 가장 큰 관심을 받은 종목이었다. 그런데 가장 큰 실망을 안겼다. 노메달이라는 결과는 납득하기 어려웠고, 기대 이하 경기력으로 일관한 내용 또한 불만족스러웠다. 여기에 감독의 황당한 실언과 선수의 불성실한 태도에 온 국민이 분개했다.
최악의 새드엔딩이다. 이보다 나쁠 수가 없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야구는 이번 대회에서 거의 모든 걸 잃었다.

김경문 감독이 이끄는 야구대표팀은 일본, 미국, 도미니카공화국에 차례로 패하며 4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총 7경기를 치러 3승4패, 충격적인 결과물을 받았다.


개최국 일본의 제안으로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 다시 야구가 올림픽으로 돌아왔을 때만해도 메달 1개는 떼 놓은 당상이라고 여겼다. 한국 야구선수들이 일본의 콧대를 꺾고 요코하마 스타디움의 마운드에 태극기를 꽂는 상상까지 그렸다.

야구는 메달 확률이 매우 높은 종목이었다. 구기 종목 중 가장 적은 6개 팀만 참가해 경쟁하는 데다 기이한 패자부활전 방식으로 치러졌다. 한 번만 져도 눈물을 흘리며 짐을 싸야 하는 종목이 다수였는데 야구는 두 번을 져도 금메달 기회가, 세 번을 져도 동메달 기회가 주어졌다.

이런 배경 속 야구대표팀이 빈손으로 귀국할 것으로 의심한 관계자는 없었다. 하지만 예상은 깨졌고 야구대표팀은 8일 초라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5일 저녁 일본 도쿄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과 미국의 패자준결승 야구경기 4회말 2아웃 1루 상황에서 박건우가 심판의 삼진 선언에 안타까워 하고 있다. 2021.8.5/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야구대표팀은 베이징 대회 전승 우승을 차지했던 13년 전과 비교해 선수 구성 등 많은 부분이 달라졌으나 목표만큼은 금메달로 같았다. 그렇지만 이것이 얼마나 허망한 꿈이었는지는 첫 경기부터 드러났다.
한국이 7경기를 치르면서 상대를 압도한 적은 콜드게임 승리를 거둔 녹아웃 스테이지 2라운드 이스라엘전 밖에 없었다. 다른 6경기는 접전을 펼치다 힘겹게 이기거나 맥없이 졌다.

전력 평준화 탓이 아닌, 한국 야구의 수준이 떨어진 결과다. 13년 전 올림픽 금메달에 취해 도태된 나머지 세계 야구 흐름에 따라가지 못했다.

투타 모두 팀을 이끌고 흐름을 바꿔줄 슈퍼스타가 부족했다고 해도 메달을 못 딸 정도의 전력은 아니었는데, 암울한 한국 야구의 현주소가 처참하게 드러났다.

주장 김현수(LG)와 강백호(KT)는 팔이 안으로 굽듯 "한국 야구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밝혔으나 야구대표팀 스스로 현실을 망각하고 있다는 사실만 드러낸 꼴이다.

코칭스태프는 잇단 판단 착오로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어떤 프로스포츠보다 특급 대우를 받았던 선수들은 올림픽 무대의 절박함을 느끼지 못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펼쳐 큰 감동을 안긴 여자배구대표팀과는 대비를 이뤘다.

강백호가 7일 오후 일본 요코하마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대한민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경기에서 5회말 2사 1,2루 상황 적시타를 친 후 기뻐하고 있다. 2021.8.7/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에서 강백호는 6-10으로 패색이 짙던 8회초 더그아웃 펜스에 기댄 채 껌을 질겅질겅 씹는 모습이 TV 중계 카메라에 포착되면서 공분을 샀다. 태극기를 달고 올림픽에 출전한 선수의 태도로서 올바르지 않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대표팀을 최고 책임지인 감독도 말 한마디에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경문 감독은 미국과 준결승전 패배로 결승 진출이 좌절된 뒤 "금메달을 못 따서 아쉽지 않다"고 밝혔는데 대표팀 수장으로서 공식 석상에서 입 밖으로 꺼내지 말아야 할 발언이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대회 준비에 어려움이 따랐다고 토로할 수 있다. 그렇지만 기후, 시차 등 현지 적응을 따지면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한국이 나쁠 것 없는 조건이었다. KBO리그 전반기 조기 종료로 실전 감각 부족했다는 변명도 결국 한국 야구가 자초한 일이었다.

여론은 올림픽 전부터 곱지 않은 시선으로 야구대표팀을 바라봤다. 일부 선수들이 방역 수칙을 위반하고 숙소에서 외부인과 술자리를 가졌다가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이 드러났고, 이 과정에서 일부 구단은 사사로운 이익을 따지며 리그를 중단시켜 팬들을 화나게 했다.

더해 야구대표팀도 선수 선발을 둘러싸고 잡음을 일으켰다. 박민우(NC)와 한현희(키움)가 방역 수칙 위반 등을 이유로 불미스럽게 하차한 가운데 과거 해외 원정 도박으로 벌금형까지 받아 '오승환법'을 만들었던 오승환(삼성)을 발탁하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시작부터 시끄러웠는데 결국 예고된 참사로 끝났다.

한국 야구의 13년 만에 올림픽 나들이는 악몽이었다. 문제는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는 사실이다. KBO리그는 오는 10일부터 재개될 예정인데 야구팬의 외면을 받고 있다.

14일 오후 경남 창원시 창원NC파크. 서울 강남구가 KBO 리그 잠정 중단을 불러온 NC 다이노스 소속 선수들을 경찰에 수사의뢰했다. 선수들은 원정 숙소인 호텔로 여성들을 불러 술자리를 가졌고, 역학조사에서 허위 진술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021.7.14/뉴스1 © News1 여주연 기자

국민들은 야구 대표팀의 거듭된 졸전과 상식 밖 경거망동에 실망했고 분노했다. 도미니카공화국과 동메달 결정전 때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한국이 꼭 지길 바란다'며 상대팀을 응원하는 모습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야구가 처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야구는 올림픽을 계기로 최고의 위치로 올라섰다. 13년 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을 따내며 위풍당당하게 돌아왔고 국내 최고 인기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올림픽을 계기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한국 야구의 진짜 위기는 지금부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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