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전문의협의회)가 정부의 신축·이전 계획을 재검토할 것을 촉구했다.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신축·이전한 새 국립중앙의료원이 현재 규모보다 줄어들기 때문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이 국가병원으로서 제대로 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충분한 역량을 갖춘 적정한 규모로 신축·이전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의협의회는 23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에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 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밝혔다.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 130여명으로 구성된 전문의협의회는 "신축·이전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인적, 물적 인프라 부족으로 치료를 못하는 필수 중증의료 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본원 800병상 이상의 상급종합병원이 되도록 충분한 규모가 확보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급성 위장관 출혈 등 응급 색전술이 필요한 환자를 1명의 혈관 조영 시술 의사가 365일 24시간 응급 진료하고 있다는 사례를 들었다. 만약 이 의사가 아프거나 휴가를 가게 되면 환자는 응급 색전술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신생아 전문 의사 및 신생아 중환자자실이 없어 32주 조산모와 미숙아의 입원이 불가능하고 급성뇌경색 시술관련 의료팀이 없다는 사실도 공개했다.
전문의협의회는 지난달 17일부터 국립중앙의료원을 제대로 지어야 한다는 내용의 대국민 호소문을 배포하며 피켓 시위와 범국민 서명운동을 진행했다. 같은 달 31일 국회의사당 앞에서 국립중앙의료원 총동문회와 함께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예산을 삭감한 기재부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조명희 의원(국민의힘·비례대표)은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필수중증의료를 위한 국립중앙의료원 발전 방안'에 대한 토론회를 열었다.
1958년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등 스칸디나비아 3국의 지원으로 설립된 국립중앙의료원은 그동안 시설 노후화, 열악한 병원 환경 등으로 인해 신축·이전 필요성이 제기됐지만 2003년부터 신축·이전 논의가 시작됐다. 신축 의료원 부지 선정이 지지부진하다 2020년 4월 박원순 당시 서울시장 시절 방산동 미국 공병단 부지로 신축·이전 부지가 확정됐다.
기획재정부는 지난달 4일 국립중앙의료원 신축·이전사업 예산을 7216억원(부지매입비, 예비비 등 제외)으로 발표하면서 본원 526병상, 중앙감염병 병원 134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760병상을 설치하기로 했다. 예산은 보건복지부(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이 요청했던 1조1653억원에서 4437억원가량 감소했다.
예정대로 국립중앙의료원이 2027년 완공되면 기존 규모인 총 800병상(본원 600병상, 중앙감염병 병원 10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보다도 줄어든다. 복지부와 국립중앙의료원은 신축·이전할 의료원에 본원 800병상, 중앙감염병 병원 150병상, 중앙외상센터 100병상 등 총 1050병상을 설치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의료원 신축·이전 계획 재검토하라"
다음은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가 이날 발표한 성명서 전문이다.국립중앙의료원은 망하고 말 것입니다.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들은 메르스, 코로나19 등 각종 재난 대응 시에 국민의 건강을 위한 한결같은 마음으로 부족한 인력과 노후화된 시설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소임을 다하며 20여 년 전부터 정부가 계획한 현대화 사업추진만을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2022년 5월 한덕수 총리가 주재한 중대본 회의에서 밝힌 800병상 신축 약속을 정부가 어기고 기획재정부의 축소 계획대로 본원이 지어진다면 코로나19 유행 동안 역량 부족으로 입원시키지 못했던 환자들을 신축·이전 이후에도 여전히 치료할 수 없어서 1조 1,726억짜리 실패작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신축·이전하는 국립중앙의료원은 인적, 물적 인프라 부족으로 치료 못하는 필수 중증의료 환자가 더이상 없도록 본원 800병상 이상의 상급종합병원이 되도록 규모가 결정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국가병원에서 꼭 치료해야 하는 필수 중증의료 환자를 받을 수 없는 국립중앙의료원 의사들은 지금도 계속 그만두고 있습니다. 지난 5년간 진료 전문의의 거의 절반이 퇴사하였습니다. 퇴사 의사는 증가 추세이고 2023년도 벌써 4명의 젊은 의사들이 국립중앙의료원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고 퇴사하였습니다.
국립중앙의료원의 주인은 근무하고 있는 저희가 아니고 국민입니다. 눈부신 국가 발전을 이룬 우리 국민들이 필수의료 공백의 희생자가 되지 않게 책임져야 할 의무가 정부에 있습니다. 민간의료기관이 감당하기 힘든 감염병 사태와 수익이 나지 않는 필수 중증의료를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국립중앙의료원의 발전방안과 청사진이 필요합니다.
지금도 매일 사직을 고민하는 의사들이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싶어하는 국가 병원을 만들지 못한다면 국립중앙의료원은 새로운 병원을 짓기도 전에 망하고 말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축소된 국립중앙의료원 현대화 사업계획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지금 당장 전문의 확보 및 유지를 위한 정부의 책임감 있는 대책을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2023년 2월 23일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 회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