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컬처로 공들여 쌓은 문화 강국 이미지가 한순간에 무너졌다.
4년에 한 번 열리는 세계스카우트잼버리대회가 전라북도 부안군 새만금에서 개최됐지만 '최악의 잼버리'라는 오명을 쓰고 말았다. 그늘 한 점 없는 간척지에서 폭염 대응시설도 충분히 마련되지 않은 탓에 개영식 때부터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또 배수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물이 고인 자리에 온갖 해충이 모여들었다. 이에 벌레 물린 대원들 사진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6년 동안 혈세 1000억여원을 들인 행사가 국제 망신거리로 낙인 찍혔다. 최다 참가국인 영국·미국이 안전상의 이유로 새만금에서 조기 철수하면서다. 이후 태풍 소식이 예보되자 새만금에서 시작한 잼버리는 전국 방방곡곡 흩어져 고등학교·대학교 기숙사로 숙소를 급히 옮겼다.
잼버리 파행을 뼈저리게 반성해도 모자랄 위정자들은 미흡한 준비로 인한 책임을 국민에게 전가하면서 "(잼버리 사태 수습을 위해) 금 모으기 운동과 같은 정신이 필요하다"는 망언까지 서슴없이 내뱉었다.
방탄소년단(BTS)을 필두로 한 MZ세대가 'K-컬처'라는 이름으로 공들여 쌓아올린 '문화강국' 이미지를 기성세대인 위정자들이 한순간에 바닥으로 매다꽂은 셈이다. 대한민국은 어쩌다 갑자기 '문화후진국'이 됐을까. 총체적 난국에 빠진 잼버리 사태를 집중 분석했다.
준비과정부터 삐걱… 피해는 아이들이 입었다
정부는 지난 2017년 새만금 잼버리 유치에 성공한 후 지난 2020년 7월 조직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정옥 당시 여성가족부 장관과 전북 전주 지역 김윤덕 국회의원이 공동 조직위원장, 행정안전부 장관·문화체육관광부 장관·한국스카우트연맹 총재가 공동위원장을 맡았다.
지난해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주무부처인 여가부는 올 8월 잼버리 개최를 앞두고 폭염과 해충 방역, 감염 대책, 배수시설 등을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을 이미 받았다. 또 잼버리 예정 부지를 둘러보고 현장 목소리를 반영해달라는 요청도 받았으나 이것 역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여가부와 정부 조직 간 유기적 연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특히 5인 공동위원장 체제가 잼버리 파행의 시작이었다. 컨트롤타워가 부재했고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면서 초기에 제기된 지적사항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한 채 행사가 시작됐다.
이번 잼버리에 투입된 총예산은 1000억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잼버리 단원들은 또 6500달러(약 850만원)의 참가비도 내야 했다. 그러나 막상 잼버리 대회가 시작되자 현장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시설은 엉망이었다. 부모들이 자녀의 멋진 경험을 위해 투자한 돈이 아깝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잼버리 현장에서 생수를 나눠준 자원봉사자는 "어떤 버스의 경우 그 흔한 생수도 지급받지 못해 저희가 생수를 전해주자 정말 고마워하며 한 모금에 다 마시더라"라고 퇴영 순간을 기억했다.
책임자들이 손놓고 책임 공방을 벌일 때 잼버리 야영장에서는 "진작에 잘하지 이게 뭔 창피냐"라는 아이 아버지의 원성을 고스란히 들어야 했던 관계자가 있었고 퇴영하는 순간까지 엉터리 행정을 꼬집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표한 퇴영수송버스 기사가 있었다.
한 관계자는 "14~17세 대원이 평생 한 번 경험할 수 있는 세계 잼버리 대회인데 너무 힘들어 보였다"며 "그럼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던 해외 대원들이 생각난다"고 아쉬워했다.
새만금 잼버리는 준비가 미흡했던 만큼 갖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대원들에게 제공된 곰팡이 핀 주먹밥 식사는 약과였다. 폭염에도 얼음과 생수가 부족했고 그 결과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이 같은 문제가 발생했음에도 대처가 미흡해 컨트롤타워 부재라는 허점도 노출됐다.
가장 먼저 대두된 문제는 무더위와의 싸움이었다. 그늘 하나 없는 간척지에 폭염이 쏟아지자 온열질환자가 속출했다. 하지만 4만명이 넘는 참가자에 비해 턱없이 모자란 병상으론 환자들을 수용하기 힘들었다. 어린 대원들이 실려 나가자 행안부는 뒤늦게 전북에 재난안전특별교부세 30억원을 긴급 지원했다.
그 뒤에야 비로소 냉방버스·탑차, 손선풍기 등 폭염 대응 물품이 지원되기 시작했다. 잼버리 행사 진행에 1000억원이 넘는 비용이 소요됐음에도 이 같은 장비가 준비되지 않은 점은 앞으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또 벌레 물림, 피부 발진 등에 이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자가 집단으로 발생해 한차례 소동이 일어났다. 사전에 충분히 준비되지 않았던 의료 서비스는 해외 각국에서 온 대원들에게 '잼버리=생존게임'이라는 공식을 만들어줬다.
그 다음으로 지적된 문제점은 스카우트 대원들이 12일간 생활해야 하는 부대시설 등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열악했다는 것이다. 부실한 식사, 비위생적인 화장실, 엉망인 탈의실, 외국인에게 배로 바가지를 씌우는 K-바가지 등이 대원들의 야영생활을 더욱 어렵게 했다.
특히 화장실과 샤워실 위생 문제가 불거지자 한덕수 국무총리가 대회장을 찾아 화장실을 점검하고 직접 청소하는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한 총리가 방문한 후에야 잼버리 운영위 측은 각종 구인구직사이트를 통해 잼버리 대회장의 화장실 청소 등을 담당할 미화 아르바이트 인력을 모집했다.
애초부터 관리 인력이 부족했음에도 아무 준비나 대책을 세우지 않다가 총리 한마디에 부랴부랴 대응하는 전형적인 공무원의 행태를 보인 것이다.
"수습은 BTS가 해줘"… 전 국민 총동원된 잼버리 2막
말많고 탈많던 잼버리는 태풍 '카눈'으로 인해 사실상 조기 폐막했다. 이후 정부는 참가대원들을 8개 시·도로 분산시켜 나머지 일정을 만회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숙소부터 시작해 K-팝 콘서트까지 잡음이 계속 나와 수습 과정에서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성일종 국민의힘 의원은 군복무 중인 BTS 멤버를 차출해 잼버리 콘서트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팬들의 분노를 샀다. 6년차 BTS 팬인 아미(BTS 팬클럽 명) 최모씨(여·24)는 "필요할 때만 BTS를 부르는 거냐"며 "사고는 위(위정자)에서 치고 수습은 K팝이 하라니 정말 무책임하다"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최씨는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하니 아이돌을 끌어들여서 잼버리를 수습하려는 태도가 책임감 없어 보이고 가식적으로 보인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연예인 차출뿐 아니라 수많은 공무원·공기업 직원들, 심지어 녹색어머니회까지 잼버리 뒷수습 참여를 요청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마포구청은 지난 11일 저녁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2023 세계스카우트 잼버리 케이팝 슈퍼 라이브'와 관련해 녹색어머니회를 포함한 6개 직능단체에 자원봉사자 모집을 요청했다.
마포구 관계자는 지난 10일 "행사 주체가 저희(마포구)는 아니지만 한꺼번에 1500대가 넘는 차량이 행사장으로 들어올 텐데 어린 대원에 대한 질서유지 및 안전관리 차원에서 봉사자 모집을 시작했다"며 "기존 업무는 공무원과 경찰이 하겠지만 어느 정도 참여 의사가 들어온 상태고 이들은 앞으로 저녁 폐영식에서 대원들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잼버리와 전혀 무관한 공무원과 민간 단체까지 뒷수습에 나선 현실이 씁쓸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