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진 작가. /사진=작가 본인
조민진 작가. /사진=작가 본인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다시 만나기 위한 약속일 거야~" 공일오비가 불렀던 '이젠 안녕'이 흘렀다. 최근 딸의 초등학교 졸업식에서 30년쯤 된 추억의 가요를 들으니 새삼스러웠다. 이런 게 명곡이란 건가.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나면 헤어지고 떠나면 돌아온다는 세상사의 덧없음을 미처 체득하지 못했던 10대 때 이 노래 가사는 일종의 가르침처럼 느껴졌었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며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제자들에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회자정리)고 위로했다는데. 간 사람은 다시 돌아온다는 '거자필반'까지는 모르겠지만 태어나면 죽고 만나면 헤어진다는 '회자정리'의 이치는 살아갈수록 또렷해진다. '이젠 안녕'은 요즘 학교 졸업식에서 불린다. "이제는 우리가 서로 떠나가야 할 시간, 아쉬움을 남긴 채 돌아서지만~" 모든 과정을 마쳤다면 떠나야 한다. 그러니 익숙한 것과의 당연한 이별 앞에서 슬퍼하지 말 것. 인생의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기 위한 첫 번째 자세다.

교장 선생님은 축사에서 '코이 물고기' 얘기를 했다. 어항에선 기껏해야 7cm 안팎으로 자라지만 강에서는 1m 넘게 크게 자랄 수 있다는 비단잉어. 사는 공간에 비례해 성장 정도가 달라지는 물고기처럼 사람도 환경에 따라 그 능력이 달라짐을 일러 '코이의 법칙'이라고 한다. 교장 선생님은 초등학교를 떠나 중학교로 가는 제자들에게 이별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한층 더 넓은 곳에서 지금보다 몸집을 키우라 격려했다. 그러고보니 어떤 과정에 통달했다는 졸업 인증은 늘 다음 세상에 대한 예고였다. 물고기의 세상이 어항에서 수족관으로, 연못으로, 강으로 변하는 것 마냥 우리는 상급학교로, 사회로, 번번이 전에 살던 세계를 건너왔다. 세상은 매번 전보다 넓어졌지만 새 세상에 맞게 자라는 일은 축복이자 부담이기도 했다. 졸업을 축하받으면 우쭐하면서도 긴장된다. 하지만 부담과 긴장을 누르고 축하의 이유를 기억하자. 더 넓은 세상을 만나 더 커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축하다. 그래서 다음 페이지를 위한 두 번째 자세, 더 넓은 세상과 또 다른 가능성을 환영할 것. 머물지 않는 한 세상은 나날이 넓어진다.


학부모였지만 학생들보다 더 진심으로 경청했을 것이다. 교장 선생님이 축사 끝 무렵 인용한 류시화 시인의 문장이 10대보다는 40대의 마음에 더 와닿는 건 부자연스럽지 않다.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류시화 산문집) 좋은 상황을 기대하면 불안해지지만 강한 나를 믿으면 두려움이 없어진다. 언제나 자신을 믿을 것. 인생의 다음 단계 앞에서 중요한 자세 세 번째다.

졸업식 후 집으로 돌아와서 류시화 시인의 시집('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을 오랜만에 들춰봤다. 소장 중인 책은 값이 4천원이었던 90년대 출판물이다. 물론 지금도 시중에서 팔린다. 28쪽에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산문집과 같은 제목의 시. "고개를 꺾고 뒤돌아보는 새는 이미 죽은 새다"로 끝난다. 비슷한 맥락에서 좋아하는 말이 있다. "You can't start the next chapter of your life if you keep re-reading the last one"(지난 장을 계속 다시 읽는다면 인생의 다음 장을 시작할 수 없다). 언젠가 해외 팬시점에서 이 경구가 찍힌 장식품을 발견해 사 들고 왔다. 언제든 미련과 후회를 떨쳐버리고 새롭게 전진하는 데 힘이 되는 말이다. 돌아보지 말고 씩씩하게 나아갈 것. 인생의 다음 장을 위한 네 번째 자세로 추가해 본다.

조민진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