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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연 3.50%로 9차례 연속 동결했다.
고물가가 여전한 데다 역대 최고치를 경신 중인 가계부채, 저성장,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실에 따른 금융시스템 리스크 확대 등으로 인해 한은은 우선 금리를 동결하고 관망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으로 분석된다.
최근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하면서 한은은 연준의 금리 결정을 지켜본 뒤 금리 인하를 결정지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는 22일 열린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3.50%로 9차례 연속 동결을 지속했다. 기준금리는 지난해 1월부터 3.50%로 13개월째 유지되고 있다. 지난해 2·4·5·7·8·10·11월에 이어 올 1월과 이달까지 9차례 연속 동결이다.
한은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결정문에서 "물가상승률이 둔화 추세를 이어가고 있지만 전망의 불확실성이 큰 상황인 데다 주요국 통화정책과 환율 변동성, 지정학적 리스크 등 대내외 정책 여건의 변화도 점검해 볼 필요가 있는 만큼 현재의 긴축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했다.
여전히 높은 물가… 다시 3%대 복귀 가능성
한은이 9차례 연속으로 금리를 동결한 결정적인 요인은 물가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이어가고 있어서다.올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8%로 6개월 만에 2%대로 내려왔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7월 2.4%에서 8월 3.4%로 반등한 뒤 5개월 연속 3%대를 이어가 바 있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신선식품지수는 14.4% 오르며 4개월 연속 10%대 상승률을 나타냈다. 이 지수는 신선과실·채소·어개(생선·해산물) 등 55개 품목으로 구성되는데 소비자들이 전통시장이나 마트에서 자주 구매하는 품목이 많아 '체감 물가'를 가늠하는 지표로 쓰인다.
특히 과일값 상승이 두드러진다. 지난 1월 신선과실 가격 상승률은 28.5%로 2011년 1월(31.9%) 이후 최고 상승률를 보였다.
문제는 소비자물가가 다시 3%대 상승률로 복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커지면서 국제유가가 상승세로 돌아서고 있어서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도 지난 2일 열린 비상경제장관회의 겸 물가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최근 중동지역 불안 등으로 국제 유가가 80달러대로 재상승하는 등 2~3월 물가가 다시 3% 내외로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은은 이날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3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전망과 같은 2.6%로 유지했다. 지난해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인 3.6%보다 내릴 것이란 전망이다. 서둘러 금리를 내리면 물가상승 불씨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우려다.
역대 최대 가계빚도 부담… 저성장도 고민
가계빚이 역대 최대치를 찍는 점도 금리 인하를 단행하기엔 부담으로 지목되는 요소다.은행권 가계대출은 올 1월 말 기준 1098조4000억원으로 10개월 연속 증가세를 지속,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같은 기간 은행 주택담보대출(주담대) 잔액은 전월 대비 4조9000억원 늘었는데 이는 11개월 연속 증가인 동시에 역대 1월 기준 두번째로 큰 증가폭을 기록했다.
그렇다고 고물가와 가계부채를 잡기 위해 금리를 올렸다가는 경기 회복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
한은은 이날 경제성장률 전망치로 2.1%를 제시했다. 반도체 경기 개선에 힘입어 수출이 회복하고 있는 만큼 연 1.4%로 저성장에 그쳤던 지난해보다 양호한 성장세를 나타낼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앞서 한은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지난해 2월(2.4%), 5월(2.3%), 8월(2.2%), 11월(2.1%) 등으로 낮춰왔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16일 발표한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제조업 생산·수출 중심의 경기 회복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면서도 "민간 소비 둔화, 건설투자 부진 가시화 등 경제 부문별로 회복 속도에 차이가 있는 모습"이라고 분석했다.
저성장에 대한 우려는 금리 인상 명분을 낮추고 있다. 섣부른 금리 인상은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부동산 PF 불안 여전… 한·미 금리차 2%p 유지
또한 부동산 PF)부실 리스크 우려 등 건설업 경기 둔화에 따른 금융시장 불안 우려도 높은 상황이다. 한은이 금리를 높였다가는 부동산 가치 하락이 금융시장 불안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다.그렇다고 미 연준보다 앞서 금리를 낮출 이유도 없다.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과 환율 상승을 부추길 수 있어서다.
미 기준금리는 지난해 7월부터 5.25~5.50%를 유지해 한·미 기준금리 역전 차는 2.00%포인트에 이른다. 이는 역대 최대다.
미 연준의 첫 금리 인하 시기는 지난해 말까지만 해도 올 3월이 유력했지만 최근 미국 물가 지표가 연이어 예상보다 높게 나오면서 이르면 올 6월로 당초 예상보다 늦어질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미국 노동부에 따르면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는 전월 대비 0.3% 상승해 전문가 예상치 0.1%를 웃돌았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PPI는 전월 대비 0.5% 올라 예상치 0.1%를 상회했다. 지난 13일 발표된 지난달 CPI도 전년 대비 3.1% 상승해 시장의 예상치(2.9%)를 상회했다.
한은 금통위는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미 연준의 조기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 약화 등으로 국채금리가 상승하고 미 달러화는 강세를 나타냈다"며 "앞으로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해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안정될 것으로 확신하기는 아직 이르고 대내외 정책 여건의 불확실성도 높은 상황"이라며 "따라서 물가상승률이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장기간 지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한은은 내년 경제성장률과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각각 2.3%, 2.1%로 지난해 11월과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