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 청약 시장이 대규모 현금을 보유한 중장년이나 피증여자만이 접근할 수 있는 구조로 굳어지고 있다. 정부의 대출 규제와 고분양가, 가점제 쏠림이 겹치면서 청년·신혼 실수요자는 문턱조차 넘기 어려워졌고 청약통장 이탈과 제도 전반에 대한 불신이 확산하고 있다.
3일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주택청약종합저축 가입자는 2497만8172명으로 전년 대비 19만명 이상 감소했다. 청약통장 가입자는 2021년 2677만명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 4년 만에 약 180만명 가까이 줄었다.
이 같은 이탈은 일시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변화로 해석된다. 서울 주요 분양 단지의 당첨 가점이 70점대를 넘어서면서 청약은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수단보다 자산가의 투자·자산 증식 통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서울 청약, 중장년 리그로
정부는 지난달 1·29 공급 대책을 통해 수도권에 주택 약 6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청년과 신혼부부에게는 청약과 매매 중 선택지를 넓혀주겠다는 취지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하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서울 3만2000가구 ▲경기 2만8000가구 ▲인천 100가구 등 총 5만9700가구를 늦어도 2030년까지 착공하는 것이 목표다. 그러나 공급 시점이 중장기인 데다 분양가 부담이 여전히 커 체감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분양가 부담은 수치로 확인된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전국 민간 아파트의 3.3㎡(평)당 분양가는 평균 2022만7000원으로 전월 대비 0.9% 상승했다. 서울은 3.3㎡당 평균 5269만5000원으로, 국민평형 전용면적 84㎡를 분양받으려면 현금만 최소 12억원이 필요하다.
여기에 정부의 주택담보대출 규제까지 겹치면서 자금 여력이 없는 실수요자의 진입 장벽은 더 높아졌다. 청약에 당첨되더라도 계약금을 마련하지 못해 포기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실수요자와 투자수요가 동일한 시장에서 경쟁하다 보니 청약이 과열될 수밖에 없다"며 "당첨 이후에도 계약할 현금이 부족한 상황이 반복되면서 청약통장에 대한 기대감이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청약 경쟁의 핵심은 가점제다. 한국부동산원의 청약 통계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분양된 서울 아파트의 평균 청약 가점은 65.81점으로 관련 통계가 공개된 202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청약 가산점은 무주택 기간, 부양가족 수, 청약통장 가입 기간 등 3개 항목으로 구성되며 만점은 84점이다.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단지가 늘어나면서 가점은 사실상 당첨을 좌우하는 유일한 통로로 자리 잡았다.
현행 제도에서 만점을 받으려면 무주택 기간 15년 이상(32점), 청약통장 가입 기간 15년 이상(17점), 부양가족 6명 이상(35점)을 충족해야 한다. 무주택 기간이 짧고 부양가족이 적은 청년·신혼·맞벌이 무자녀 가구는 불리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청년·신혼부부 별도 가점 체계 필요
이 같은 제도의 허점은 부정 청약 논란으로 번지고 있다. 최근 위장 미혼 의혹을 받은 이혜훈 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배우자가 2024년 7월 서초구 반포동 '원펜타스' 청약 과정에서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상태로 장남을 부양가족에 포함해 가점을 산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 결과 5인 가구가 받을 수 있는 최대 가점인 74점으로 당첨됐다.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수십억원대 아파트 청약에 고득점 장기 무주택자가 몰리면서, 가점을 높이기 위한 편법이나 꼼수가 동원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현행 가점제가 유지되는 한 청약통장 무용론과 제도 개선 요구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 특히 청년과 신혼부부를 기존 가점제 틀 안에서 경쟁시키는 방식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다는 지적이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공학전공 교수는 "무주택 산정 시작 연령을 26세 수준으로 낮추고, 만점 기준도 15년에서 10~12년 정도로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며 "부양가족 수 중심의 가점 방식을 벗어나 청년·신혼부부를 위한 별도의 가점 체계를 신설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주택담보대출 한도가 6억원 수준에 묶였는데, 이를 청년·신혼부부만에 한해 8억원까지 완화하는 등 금융 지원을 병행해야 주거 기반을 만들 수 있다"며 "청약 제도를 주거 사다리로 복원하지 않으면 제도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