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우타는 지브롤타 해협을 향해 돌출된 북아프리카 서쪽 해안에 위치한 스페인의 자치시다. 스페인 영토이기 때문에 유럽연합(EU)에 속하지만 EU의 공동관세가 적용되지 않고, 국경 간 자유로운 이동에도 일정한 제약이 따르는 특수한 지역이다. 특히 모로코에서 세우타로 이동할 때는 물론, 세우타에서 스페인 본토로 이동할 때도 별도의 신원 및 국경 검사가 필요하다.
서울의 종로구보다 작은 이 도시가 최근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 7월 30일 하루 동안 약 5만 명 넘는 대규모 비정규 이주자가 세우타로 유입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전례 없는 규모의 이주민 유입이 발생한 배경을 두고 다양한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나 원인이 무엇이었든 이번 사태가 더욱 관심을 끄는 이유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한동안 유럽 정치의 전면에서 비켜나 있던 이민 문제가 다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크리스테르손 스웨덴 총리는 대규모 비정규 체류자를 합법화한 스페인의 국내 정책이 '매우 나쁜 생각'이라고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이탈리아는 세우타 사태의 파급을 우려해 스페인에서 들어오는 EU 비회원국 국민에 대해 일시적으로 국경 검사를 강화했다. EU 회원국 내무장관들 또한 스페인의 결정이 '국경 없는 유럽'을 상징하는 솅겐 체제에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세우타에 들어온 비정규 이주자들의 EU의 역내 이동이 현실화되지 않았음에도, 유럽 곳곳에서 즉각적으로 이주민 문제의 심각성을 재점화하고 나선 것이다.
돌이켜보면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민 문제를 둘러싼 EU 역내 갈등을 잠시 유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2010년대 아랍의 봄과 시리아 내전 등을 거치며 급증한 난민과 이주자의 유럽 유입은 회원국 간 책임분담을 둘러싼 갈등을 격화시켰다. 동시에 솅겐 체제도 심각한 정치적 부담을 떠안았다. EU는 튀르키예에 대한 경제적 지원 등을 통해 난민과 이주자 관리 문제의 일부를 역외로 이전함으로써 당장의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것이 이민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EU 정치의 초점을 안보, 국방력 강화, 우크라이나 지원으로 이동시키는 계기였다. 이민 문제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지만 유럽 정치의 최우선 의제에서는 제외된 것이다. 세우타 사태는 이렇게 한동안 전쟁에 가려져 있던 이민 문제가 언제든 다시 유럽 정치의 핵심 갈등으로 부상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EU 내부의 이러한 이주민 갈등은 언뜻 한국 사회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 한국은 유럽과 비교할 때 대규모 비정규 이주는 물론 그와 관련된 사회적, 정치적 갈등을 경험한 사례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우리 입장에서 이번 사태를 유럽의 이민 문제 자체에만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 오히려 이번 사태를 둘러싼 유럽 정치환경의 변화 그리고 그러한 변화가 향후 한국과 EU의 관계에 미칠 잠재적 영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난민 위기가 심각했던 10여 년 전과 비교할 때, 유럽 정치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우경화다. 좌우를 구분하는 기준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현재 27개 EU 회원국의 과반수는 우파 또는 중도우파 정당이 정부를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자유, 평등, 법치, 인권과 같은 민주적 가치를 공동체의 핵심 정체성으로 강조해 온 EU에서 국가이익, 안보, 국경통제, 이민, 산업경쟁력과 같은 의제의 비중이 더욱 커질 가능성을 시사한다. 더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종결된다고 해서 이러한 추세가 쉽게 반전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전쟁이라는 강력한 안보 위협이 약화될 경우, 그동안 우선 순위에서 밀려 있던 의제를 중심으로 회원국 간 이해관계의 충돌이 전면에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세우타 사태는 이주민 문제를 두고 이러한 가능성을 미리 드러낸 전초전 사례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세우타의 이주민 사태는 한국에게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앞으로 한국이 마주하게 될 EU는 우리에게 익숙했던 과거의 EU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최근 유럽 정치 연구에서는 극우 세력이 과거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던 의제를 점차 '말할 수 있는' 것으로 의제화하는 정상화(normalization)를 시도하고, 극단적이고 위험한 세력이라는 사회적 낙인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악마화(de-demonization)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물론 유럽 정치의 우경화를 곧바로 극우화와 동일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유럽 정치의 우경화가 전략적 파트너로서 EU와 거리를 두어야 할 이유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국가이익에 기반한 산업경쟁력 강화, 더욱 엄격한 국경통제, 이민 제한을 강조하는 정책이 유럽 정치의 주류로 이동하고 있다는 점은 한국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번 세우타 이주민 사태는 이러한 EU 정치의 변화를 다시 살펴보고, 앞으로 한국이 EU와의 관계에서 직면하게 될 과제를 점검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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