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개봉한 영화 '오디세이'의 결말은 원작과 다르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원작의 중요한 장면들 중 일부를 걷어냈다. 대표적인 게 결말부에서 오디세우스와 청혼자 유가족들이 화해하는 장면이다. 영화를 스포일하지 않기 위해 여기선 원작의 내용만 다룬다.
약 3000년 전 호메로스가 썼다고 알려진 원작 '오디세이아'의 종반부는 현대의 시각에서 보면 다소 잔혹하다. 돌아온 이타카의 왕 오디세우스는 왕위를 노리고 자신의 아내에게 청혼하던 108명을 모두 처단한다. 그러자 청혼자의 유가족들이 오디세우스에게 복수하기 위해 몰려온다.
이때 개입에 나선 게 지혜의 여신 아테나다. 여신은 "고통스러운 싸움을 멈추라"며 "피를 흘리지 말고 서로 화해하라"고 명령한다. 오디세우스의 손에 가족을 잃은 이들의 입장에선 억울했겠지만, 신에게 맞설 순 없는 노릇이다. 아테나의 중재 아래 양측은 평화의 맹약을 맺는다. 오디세우스의 서사는 귀환이나 복수가 아니라 화해의 순간 비로소 완성된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J. 피터 유벤은 "정치적 정의는 철학적 정의와 다르다"고 했다. 유벤에 따르면 철학적 정의가 옳고 그름인 반면 정치적 정의는 '타자와의 화해'다. 여기서 타자는 상대 정당일 수도 있고, 같은 정당 내 다른 계파일 수도 있다. 선거 등 승부가 끝난 뒤에도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존재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타자를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하는 것이 정치적 정의다.

17일 더불어민주당의 새로운 지도부가 탄생했다. 김민석 전 국무총리가 정청래·송영길 전 대표를 누르고 집권여당의 사령탑에 앉았다. 전당대회 기간의 치열한 공방은 친명(친이재명)계와 친청(친정청래)계 모두에 깊은 상흔을 남겼다. 2028년 총선 공천 문제가 걸린 만큼 양쪽의 절박함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후에도 서로를 적대시한다면 향후 총선과 대선에서 공멸할 수밖에 없다.
미국 제4대 대통령 제임스 매디슨은 '연방주의자 논고'에서 '계파'(faction)의 폐해를 경고했다. 그는 계파를 없애는 건 불가능하다고 봤다. 매디슨의 처방은 계파들이 서로를 절멸시키지 못하도록 제도적 견제 장치를 갖추는 것이었다. 경쟁하되 서로를 말살하진 않는 것이 선진 정치다.
안타깝게도 증오는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큰 동력 가운데 하나다. 자신의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고 모욕했다고 비난하고, 자신을 공천에서 배제했다고 정치적으로 반대편에 선다. 모두 사적인 감정이다. 감정은 자유지만, 그 감정이 공익을 흔드는 건 다른 이야기다. 공과 사를 가르는 경계선을 지키는 건 정치인이 시민과 맺은 최소한의 약속이다.
프랑스의 정치사상가 알렉시 드 토크빌은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결사(結社)의 기술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이 함께 일하는 법을 익히지 못하면 자유는 무질서로 전락하고, 무질서는 독재를 부르는 명분이 된다고 그는 경고했다. 실제로 고대 로마와 20세기 독일, 스페인에서 이런 식으로 공화정이 무너졌다.
'오디세이아'에서 청혼자 유가족들이 화해를 받아들인 건 정의가 실현됐거나 복수를 완수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피의 악순환이 이어질 경우 공동체가 붕괴될 수 있다는 인식에 기반한 결단이었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란 대의 앞에 누가 정통인지, 누가 '찐명'(진짜 친명)인지 뭐가 중요한가. 내부갈등은 접어두고 집값과 청년 실업 등에 대한 해법을 찾기 위해 머리를 맞대는 집권여당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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