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짱 하나로 한 사람의 인성을 재단한다. 사진 한 장, 영상 몇 초, 앞뒤 잘린 말 한마디가 인격 전체를 규정한다. 최근 아이돌그룹 아이브의 장원영이 겪은 태도 논란이 대표적이다. 놀이동산에서 팔짱을 낀 채 설명을 듣는 사진이 퍼지자 "거만하다" "성의 없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단편적인 장면만으로는 당시 맥락을 알 수 없다. 공항에서 여권을 한 손으로 받았다는 비판 역시 다른 각도의 영상이 공개되며 오해를 벗었다. 행사장 지각 논란도 주최 측 해명으로 사실관계가 뒤집혔다.
비슷한 일은 끊이지 않는다. 과거 연인의 노래를 배경음악으로 썼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가수 아이유의 사례처럼, 유명인의 행동에는 쉽게 과잉 의미가 덧붙는다. 사실을 확인하기도 전에 "왜 하필 저랬을까"라는 추정이 시작되고, 추정은 곧 의도에 대한 단정으로 번진다. 의도가 있다고 믿는 순간 비난은 스스로 정당성을 얻는다.
이른바 '억까(억지로 까기)'의 본질은 비판이 아니다. 여러 가능성 중 가장 악의적인 해석을 골라 상대에게 덧씌우는 행위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연예인을 향한 악플에만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예계 논란과 정치·사회적 갈등은 겉보기에 다르지만 작동 방식은 닮았다. 사실보다 해석이 앞서고, 해석보다 비난이 빠르다. 그럴 수 있다는 신중함은 주목받지 못하지만, 분명한 의도가 있다는 단언은 감정을 자극하고 공유를 부른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새로운 사실이 드러나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해명은 느리고 낙인은 빠르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언론도 이 속도 경쟁에 가세한다. 온라인에서 논란이 일면 일부 매체는 사실 확인 대신 '논란 확산' '누리꾼 갑론을박' 같은 제목을 달아 기사를 쏟아낸다. 이를 다른 매체들이 받아쓰면서 기사는 순식간에 불어난다. 몇몇 댓글에 불과했던 반응이 여론으로 둔갑하고 그 여론은 다시 기삿거리가 된다. 확인되지 않은 해석이 기사라는 외피를 입는 순간 파급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갈등을 조직적으로 증폭시키는 움직임은 이미 현실의 위협이다. 최근 KAIST 연구진은 2006년부터 지난해까지 작성된 네이버 뉴스 댓글 1억1천만여 건을 분석해 외국 연계 활동이 의심되는 계정 약 2만4천 개를 식별했다. 이들은 특정 진영을 일관되게 지지하기보다, 선거철을 기점으로 진영을 가리지 않고 공격하며 갈등 자체를 키웠다.
유튜브에서도 우려스러운 움직임이 포착됐다. 구글은 올해 2분기 조직적인 여론 조작에 관여한 것으로 판단한 정치 관련 유튜브 채널 449개를 차단했다. 특정 정치 세력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정부 비판 채널은 물론 정부 지지, 특정 정치인 지지 등 다양한 성격의 채널이 포함됐다.
여기서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불씨를 던졌느냐만이 아니다. 왜 이런 메시지가 이토록 쉽게 퍼지고 소비되는가다. 큰불로 번지려면 마른 장작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 분노와 불신, 적대감이라는 장작이 너무 높게 쌓여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돌아볼 때다.
이런 구조적 폐해가 가장 거칠게 드러나는 곳은 정치권이다. '쇼츠 정치'가 확산하면서 맥락은 증발하고 자극적인 짧은 장면이 사실을 대체한다. 말 한마디를 잘라내 막말로 규정하고, 행동 하나를 근거로 배신·위장·내부총질의 낙인을 찍는다. 정책의 차이는 곧장 인신공격으로 이어진다. 같은 진영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생각이 다르면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의도부터 의심하는 풍경이 일상이 됐다.
생각이 다르면 논쟁하면 된다. 주장이 틀렸다면 근거를 들어 반박하는 것이 옳다. 하지만 "주장이 맞는가"라는 질문이 "왜 저런 주장을 하는가" "배후에 무슨 의도가 있는가"로 변질되는 순간 토론은 끝난다. 논리를 검토하는 대신 속내를 심문하기 때문이다. 민주주의에서 위험한 것은 의견의 차이가 아니라, 상대에게 악의를 덧씌워 대화의 자격 자체를 박탈하는 태도다.
그렇다고 표현 규제나 댓글 통제가 해법이 될 순 없다. 입을 막는 방식은 더 큰 부작용을 낳는다. 필요한 것은 악의적 해석과 음모론이 손쉽게 여론으로 둔갑하지 못하도록 공론장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언론은 사실과 반응을 엄격히 분리해 보도해야 한다. 플랫폼은 정보의 확산 경로와 맥락을 파악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정치권은 미확인 의혹을 지지층 결집 수단으로 악용하는 관행을 끊어내야 한다. 이용자 역시 자신이 믿고 싶은 해석과 확인된 팩트를 분별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악의적 해석이 가장 빨리 퍼지고 가장 큰 보상을 받는 수익 구조 자체를 손봐야 한다. 조회수와 정치적 호응을 얻기 위해 자극을 좇는 유인을 줄여야 한다. 철저히 사실관계를 확인한 콘텐츠가 살아남고, 끈질기게 맥락을 설명하는 저널리즘이 묻히지 않는 미디어 생태계가 필요하다.
사실보다 추측이, 논쟁보다 낙인이, 설명보다 비난이 먼저 퍼지는 사회에서는 누구도 자유롭고 안전할 수 없다. 민주주의는 서로 생각이 다른 이들이 부딪치면서도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지 않는 데서 출발한다. 누가 더 크게 분노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사실이냐가 여론을 이끄는 사회. 그것이 '억까'와 음모론에 흔들리지 않는 최소한의 면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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