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여당이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한 '주가누르기방지법' 입법에 속도를 내면서 저PBR(주가순자산비율) 지주사들이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되면 대주주들이 상속·증여세 부담을 줄이려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낮게 유지해온 관행이 차단되고 이들 기업의 주가 재평가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속세 산정 기준 '자산가치'로 전환
5일 업계와 정치권 등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은 기존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를 '코리아 프리미엄 K자본시장 특별위원회'로 최근 확대 개편하고 자사주 소각 의무화를 핵심으로 한 3차 상법 개정과 함께 주가누르기 방지를 위한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을 5대 입법 과제로 제시했다.이재명 대통령도 지난달 22일 여당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오찬에서 이 법안에 힘을 실어주며 정책 추진에 탄력이 붙고 있다.
주가누르기방지법의 핵심은 상속·증여세 산정 기준을 바꾸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상속·증여 시점 전후 각 2개월 동안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세금을 산정한다. 대주주 입장에서는 주가가 낮을수록 세 부담이 줄어드는 구조다.
개정안은 상장사 주식 상속 시 PBR이 0.8배 미만일 경우 시가가 아닌 순자산가치를 기준으로 과세한다. 이렇게 되면 대주주가 의도적으로 주가를 억누를 유인이 사라진다. 대신 최대주주에게 부과되던 경영권 프리미엄 20% 할증과세는 폐지된다.
일각에서 최대주주 할증과세 폐지를 두고 "부자 감세"라는 비판도 나오지만 자산운용업계 분석에 따르면 실제로는 정반대 효과가 예상된다.
주요 재벌그룹을 대상으로 한 세수 추정 결과 법안 도입 시 상속증여세 부담이 현행 대비 60% 이상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BR 0.8배 하한 도입에 따른 과세표준 상승 효과가 할증 폐지 효과를 크게 웃돈다는 분석이다.
현행 제도에서는 명목세율이 높아도 대주주들이 주가를 낮게 유지하면 실효세율이 크게 떨어지는 구조적 문제가 있었다. PBR이 0.4배인 기업의 경우 20% 할증과세를 적용해도 과세 기준은 PBR 0.48배 수준에 불과해 청산가치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세금만 내는 상황이 발생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대주주들은 시장가치는 낮은데 세금만 높게 내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배당 확대 등을 통해 주가를 정상화할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증권업계에서는 법안 통과 시 주주환원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본다.
김병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주가누르기방지법 발의로 디스카운트 해소 가능성이 열렸다"며 "PBR 1배 미만 업종만 1배로 상승해도 KOSPI는 300~400포인트 추가 상승 여력이 있다"고 전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법안이 통과되면 그동안 세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주가를 낮게 유지해온 기업들의 억제 요인이 해소될 것"이라며 "배당 확대나 주가 정상화가 대주주에게도 유리한 선택이 되면서 저PBR 종목 강세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저PBR 기업 주가 재평가 기대
증권가에서는 법안 통과 시 최대 수혜가 예상되는 종목으로 DL, 한화, 태광산업 등을 꼽는다.지난해 9월 말 기준 DL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8587억원이지만 PBR은 0.26배에 불과하다. 비상장사인 대림이 상장사인 DL을 지배하는 구조에서 낮은 주가가 승계에 유리했으나 법안 통과 시 오히려 독이 돼 대주주 스스로 주가 부양에 나설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같은 기간 한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10조2906억원으로 시가총액(8조8751억원)을 넘어선다. 삼형제 승계가 본격화된 가운데 상속세 재원 마련을 위해서라도 주가를 띄워 주식 담보 가치를 높이고 배당을 늘려야 하는 상황이다.
태광산업의 경우 4911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했지만 PBR은 0.2배에 불과해 법안 시행 시 자산가치 기준 세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 기업은 주주환원을 할 수 있는 재무 여력은 충분하지만 대주주의 상속 문제로 주가 부양에 소극적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법안이 통과되면 낮은 주가가 오히려 세금 부담을 가중시키는 만큼 배당 확대나 자사주 소각 등 적극적인 주주환원책을 내놓을 수밖에 없다는 게 증권가의 시각이다.
다만 일각에서 "이미 법인세를 냈는데 자산가치로 또 과세하는 것은 이중 과세"라는 반발도 제기되고 있어 법안 통과 과정에서 진통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