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6000선 돌파를 눈앞에 두며 국내 증시가 초강세 흐름을 이어가자 투자자들의 '빚투'(빚내서 투자) 수요도 빠르게 팽창하고 있다. 은행권과 증권사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급전 수요가 카드론(장기카드대출) 등 2금융권으로까지 이동하는 양상이다. 서민의 '최후의 보루'로 불려온 카드론이 투자 자금 조달 창구로 활용되면서 생계자금이 절실한 취약차주들의 대출 접근성이 더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4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1월 말 기준 9개 카드사(롯데·BC·삼성·신한·우리·하나·현대·KB국민·NH농협카드)의 카드론 잔액은 42조5850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말(42조3292억원) 대비 0.6% 증가한 규모다.
카드론 잔액은 지난해 9월 41조8375억원으로 저점을 찍은 뒤 10월 42조751억원, 11월 42조5529억원으로 두 달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이후 연말 가계대출 관리 기조 영향으로 12월 말 소폭 감소했으나 올해 1월 들어 한 달 만에 다시 반등했다.
업계에서는 은행·증권사 대출 규제가 강화된 가운데 비교적 절차가 간편하고 중도상환 수수료가 없는 카드론이 투자자들의 '우회 조달 창구'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카드론 반등은 최근 증시 강세 흐름과도 무관치 않다는 평가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2.11% 오른 5969.64포인트로 마감하며 6000선을 목전에 뒀다. 코스피는 지난해 6월 3000선을 돌파한 이후 11월 4000선, 올해 1월 말 5000선을 차례로 넘어서는 등 가파른 상승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증권사들의 눈높이도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키움증권은 올해 코스피 예상 상단을 기존 6000포인트에서 7300포인트로 상향 조정한다고 밝혔다. 일본계 투자은행 노무라금융투자 역시 코스피 상반기 목표치를 최대 8000포인트로 제시했다.
이 같은 '불장' 분위기 속에 빚을 내서라도 투자에 나서려는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 상승장에서 수익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이른바 '포모(FOMO)' 심리가 확산되며 단기 차익을 노린 레버리지 투자도 확대되는 모습이다. 일부 증권사는 신용거래융자와 증권담보대출에 대한 한도를 축소하거나 신규 취급을 중단하는 등 리스크 관리에 나섰다.
빚투 확산은 가계부채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4분기 가계신용(잠정)'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978조8000억원으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전 분기 말보다 14조원 증가한 수치다.
주택담보대출 증가폭은 둔화했지만 신용대출과 증권사 신용공여 등을 포함한 기타대출은 4분기에만 3조8000억원 늘며 한 분기 만에 증가세로 전환했다. 한은은 기타대출 확대 배경으로 주식 투자 수요를 지목했다.
카드론, '서민 급전창구' 기능 약화 우려
문제는 카드론 증가가 취약차주 중심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신용도가 높은 차주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금융감독원이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8개 전업카드사(신한·삼성·KB국민·현대·롯데·하나·우리·비씨카드)의 신용점수 800점 초과 차주 카드론 신규 취급액은 3조2608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1.8% 증가했다.반면 같은 기간 신용점수 700점 이하 저신용자의 신규 취급액은 3조121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 감소했다.
전체 신규 카드론에서 고신용자 비중은 2024년 말 26.9%에서 지난해 말 31.0%로 확대된 반면 저신용자 비중은 31.0%에서 29.7%로 하락했다. 카드론 주력 이용층이 중·저신용자에서 고신용자로 이동하고 있는 셈이다.
카드론 금리도 양극화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신용점수 900점 초과 차주의 카드론 평균 금리는 연 10.6%로 상반기 말(연 11.3%) 대비 0.7%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700점 이하 저신용자의 평균 금리는 연 17.4%로 같은 기간 0.1%포인트 하락하는 데 그쳤다.
금융권에서는 카드사들이 건전성 관리를 이유로 상환 능력이 우수한 차주 위주로 카드론을 운용하면서 생계형 자금이 절실한 취약계층이 대출 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구축효과'가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카드업계 관계자는 "증시 활황기에 카드론이 투자 자금으로 활용된다는 여론이 있어 관련 동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대출 수요 변화가 건전성 지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