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첫 6000선을 돌파하며 활황이 이어지는 사이, 이른바 '동전주'(액면가 1000원 미만 주식)들은 52주 신저가를 잇달아 경신하고 있다.
26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2월1일부터 25일까지 코스피·코스닥 시장에서 52주 신저가를 기록한 주가 1000원 이하 동전주는 82개에 달했다. 코스닥 상장사 78개, 코스피 4개다. 오는 7월 강화된 상장폐지 요건 시행을 앞두고 기업들은 주식병합으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지만 시가총액이라는 더 높은 벽이 남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52주 신저가 동전주 82개…주식병합 잇따라
증시 활황에도 동전주의 추락은 멈추지 않고 있다. 주가 1000원 미만 동전주는 오는 7월 1일부터 새로 신설되는 상장폐지 요건에 직접 적용된다. 30거래일 연속 주가가 1000원 미만이면 관리종목으로 지정되고 이후 90거래일 동안 45거래일 연속 1000원 이상을 회복하지 못하면 최종 상장폐지된다.퇴출 압박이 현실화되자 기업들은 주식병합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에이프로젠은 23일 주식을 15주에서 1주로 합치는 병합을 결정했다고 공시했다. 시장의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다음 날인 24일 에이프로젠바이오로직스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다. 같은 날 휴마시스와 경남제약도 각각 5주를 1주로 합치는 주식병합 결정을 공시했다.
두 회사 모두 적정 유통주식수 유지와 주가 안정화가 목적이라고 밝혔다. 이론상 주가 820원이던 휴마시스는 4100원으로, 640원이던 경남제약은 3200원으로 오르게 된다.
주식병합으로 주가올려도 코스닥 200억원 이상 시총 문턱에 '공포'
업계에서는 주식병합이 근본적인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식 수를 줄여 주가를 높이는 방식이지만 기업 가치의 총합인 시가총액은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주식병합으로 주가는 높일 수 있어도 시가총액은 그대로"라며 "결국 시총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두 번째 벽에서 막힌다"고 말했다.실제로 7월부터 코스닥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은 200억원으로 오른다. 내년 1월에는 300억원으로 추가 상향된다. 코스피도 각각 300억원, 500억원으로 강화된다. 동전주 요건을 주식병합으로 피하더라도 시총 요건이라는 다음 관문이 기다리는 셈이다. 금융당국은 이 같은 우회 시도에 대비해 병합 후 액면가 미만인 경우에도 상장폐지 요건에 포함시키기로 했다.
올해 1월 금융투자협회는 K-OTC 시장에 '상장폐지기업부'를 신설했다. 상장폐지 기업이 6개월간 거래를 통해 환금성을 확보하고 요건 충족 시 재상장도 가능한 경로를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기업 체질 개선 없이는 한계가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부실기업 퇴출 vs 기술기업 역차별…시장 정상화 논쟁
금융당국은 이번 개편이 시장 신뢰 회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금융위원회와 한국거래소는 지난 12일 '부실기업 신속·엄정 퇴출을 위한 상장폐지 개혁방안'을 발표하고 2027년 6월까지 '상장폐지 집중관리기간'을 운영하기로 했다. 관리단은 거래소 코스닥본부 담당 부이사장을 단장으로 총 4개 팀 20명 체제로 꾸려져 있다.이번 제도 개편을 주도한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투자자에게 신뢰받는 시장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더 빠르고 더 엄정한 부실기업 퇴출이 필요하다"며 "코스닥 시장은 지난 20년간 진입이 1353개사, 퇴출은 415개사에 그쳐 다산소사(多産少死) 구조가 지속됐고, 시총은 8.6배 올랐지만 지수는 1.6배 상승에 머물렀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시장 정상화의 방향 자체는 옳다고 본다. 이상헌 iM증권 연구원은 "이미 이전에 이뤄졌어야 할 시장 정상화"라면서도 "주가를 끌어올리는 외형 조정만으로는 부족하고 실적이라는 기초체력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의의 피해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구개발(R&D)에 집중하는 초기 기술기업의 경우 단기 실적보다 기술력과 성장 가능성이 기업가치의 핵심인데, 주가와 시총 잣대만으로는 이를 제대로 평가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한 IB업계 관계자는"동전주 요건 자체는 필요하다"며 "다만 기술특례 기업처럼 R&D 단계에서 주가가 낮을 수밖에 없는 곳까지 같은 잣대로 보는 건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한국거래소의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올해 코스닥에서만 최대 220개사가 상장폐지 영향권에 드는 것으로 추산된다. 부실기업 퇴출이라는 제도적 취지를 살리면서도 성장 잠재력을 갖춘 유망 기업이 고사하지 않도록 정교한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향후 과제로 남아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