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촉발된 중동 정세 불안 여파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기름가격도 치솟고 있다. 사진은 지난 4일 서울 시내의 한 유가정보가 표시된 모습. / 사진=뉴시스

중동 지역의 정세 급변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국내 기름값도 가파르게 치솟고 있다. 전국 휘발유 평균 가격은 리터(ℓ)당 1800원을 넘어섰고 경유 가격도 1800원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기름값 상승으로 인한 가계 부담 증가가 우려되는 가운데 정부가 '유류세 인하' 카드를 활용해 물가 안정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된다.

5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기준 전국 주유소에서 판매되는 휘발유 평균 가격은 ℓ당 1821.98원으로 전일보다 44.50원 올랐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에 공습을 가하기 직전인 지난 2월27일 휘발유 평균 가격이 ℓ당 1692.58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일주일 만에 130원가량 오른 것이다.


경유 가격의 상승세는 더욱 가파르다. 2월27일 ℓ당 1597.24원이던 경유 가격은 5일 오전 11시 기준 1811.03원으로 213.79원 올랐다.

문제는 아직 국제유가 상승세가 국내 가격에 반영되지도 않았다는 점이다. 국제유가는 통상 2~3주의 기간을 두고 국내 기름값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 국내 기름값 상승은 이례적으로 빠른 속도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에서 발생한 전쟁이 중동 지역 전역으로 확정되는 양상을 보이며 국제유가의 급격한 상승이 예상되자 미리 주유를 해두려는 '패닉 바잉'(공포 매수) 수요가 늘고, 여기에 고환율까지 겹치면서 단기간에 기름값이 급등했다는 분석이다.


기름값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전쟁 발발 이전 배럴당 70달러대에 머물렀던 국제유가가 최근 80달러대로 치솟았고 이 가격이 2~3주 후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면 적어도 이달까지는 추가로 가격이 오를 수 있다는 관측이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들이 이란의 보복 타격에 대응해 군사적 대응을 전개, 사태가 장기화하게 되면 국제유가는 지속적인 상승압박을 받게되고 국내 기름값 역시 천정부지로 치솟을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정부가 물가 안정을 위해 유류세 추가 인하 카드를 꺼내들지 주목한다. 정부는 당초 지난 2월 말 종료예정이던 유류세 한시적 인하 조치를 4월 말까지로 추가 연장했다. 중동 정세가 단기간 내에 안정되지 않을 경우 사태를 지켜보며 추가적인 연장을 단행할 것이란 게 업계의 중론이다.

인하율을 확대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현행 인하율은 휘발유 7%, 경유·액화석유가스(LPG)부탄 10% 수준이다. 인하 전 세율 대비 ℓ당 휘발유 57원, 경유 58원, LPG 부탄 20원의 인하 효과가 있다. 하지만 기름값이 1800원을 넘어 2000원을 상회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만큼 물가 안정을 위해 유류세 인하율을 상향조정해 인하 효과를 확대할 것이란 예상이다.

현행법상 유류세의 감면 한도는 30%이다. 여기에 탄력세율을 조정하면 법정 최대치는 37%까지 늘어난다. 지난 정권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전쟁이 발발하며 기름값이 크게 치솟자 유류세 인하율을 37%까지 확대한 바 있다. 유류세 조정은 시행령 개정 사항으로 정부 결정에 따라 국무회의를 거쳐 언제든 추가 인하가 가능하다.

정부는 일단 강력한 행정조치를 통해 단기적인 기름값 상승세를 잡겠다는 방침이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임시국무회의에서 "석유사업법 23조를 보면 가격이 급등한 경우는 최고가격을 지정하도록 돼 있다"며 "오늘 오후 가격을 점검해 가격이 높은 경우는 고시를 통해 최고가격을 지정하는 방안까지도 검토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