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보이스피싱 피해액이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신한금융그룹(신한지주) 주요 계열사가 보이스피싱 공동대응에 나선다. 금융위원회가 신한금융의 시스템을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한 데 이은 후속조치다. 금융권이 정부 및 수사당국과의 공조를 점차 강화하며 대응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중순부터 신한금융 주요 계열사인 신한은행, 신한라이프, 신한카드, 신한투자증권은 보이스피싱 의심거래 탐지 시 고객정보 및 위험판단 사유 등을 서로 공유한다. 앞서 지난해 9월 금융위는 제16차 정례회의에서 신한금융이 신청한 보이스피싱 의심거래 정보 공유 서비스를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했다.
지정 당시엔 사기 이용계좌에 대해서만 금융사 간 계열사 정보공유가 가능했다. 이에 계좌개설, 이체, 대출, 카드론 등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는 보이스피싱 피해를 지주사 차원에서 신속히 대응하는 것이 어려웠다.
사기 피해가 의심되는 정도에 그치는 계좌에 대해선 법령상 금융사 간 공유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 차원에서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졌다.
지난 1월 국회에선 보이스피싱 정보공유 및 '분석 AI 플랫폼'(ASAP)의 운영 근거 등을 담은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지난해 10월 출범한 ASAP은 의심 정보를 취합해 AI로 분석 후 해당 결과를 금융사, 관계기관, 수사당국 등에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다.
개정안 통과로 정보공유 범위와 운영 주체에 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또 사기범뿐만 아니라 피해자 계좌까지 사기관련의심계좌로 포함해 공유 대상을 확대했다.
금융위는 지난 1일 통신사기피해환급법 시행령 및 하위규정 개정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에 따라 정보공유 대상기관, 범위, 정보분석기관 지정 요건 및 절차 등을 구체화하기 위함이다.
특히 정보공유 대상기관은 기존 법정 금융사 외에도 금융감독원, 가상자산거래소, 전자금융업자 등이 포함된다. 범죄에 연루됐거나 의심되는 계좌정보와 거래내역, 주민등록번호, 휴대폰 개통정보, 위조 신분증 활용 등의 정보 역시 공유할 수 있게 된다.
이번 서비스 개시는 금융사가 서로 의심정보를 공유하는 금융권 최초 사례로 기록됐다. 단순히 회사 간 정보공유에서 벗어나 금융권 경계를 허물고 새로운 소비자보호 체계를 마련한 것에 의미가 있다.
신한금융 관계자는 "보이스피싱 피해 예방의 새로운 대응체계를 마련한 의미있는 결과"라며 "실시간으로 의심 정보를 공유하며 범죄 발생 초기에 피해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금융권 공조 움직임 계속…'7대 비정상' 뿌리 뽑는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10월 집계된 보이스피싱 피해액은 1조566억원을 기록했다. 사상 처음으로 1조원을 넘어선 것이다.최근엔 기존 수법 외에도 신종스캠(투자리딩방, 로맨스 스캠, 노쇼사기 등) 및 대포계좌를 활용한 새로운 사기 행각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행 통신사기 피해방지법은 '재화와 용역의 거래를 가장한' 유형의 사기범죄에 대해선 금융사의 지급정지·자금환수 등 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
금융당국은 신종스캠 의심계좌에 대해 경찰과 협업해 범죄 유형별 피해사례 및 범죄 수법 특징 등을 신속히 공유하기로 했다. 공유된 정보를 바탕으로 금유우건 공동 탐지룰을 고도화하고 올 3분기 내로 금융사별 이상금융거래 탐지 시스템에 신종 수법 내용을 반영할 계획이다.
대포계좌에 대해선 금융사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대포계좌 파악현황을 공유한다. 공유된 정보가 금융사, 통신사, 수사기관에서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ASAP 시스템에 적용할 방침이다.
금융위, 금감원, 금융보안원 및 전 금융권 전담 임직원 등이 참여하는 '보이스피싱 근절 협의체' 역시 다음달 중 출범한다. 모든 금융사가 최신 범죄 수법을 공유해 관련 제도개선 사항을 발굴·추진할 수 있도록 협의체는 상시 가동된다.
신종 사기범죄까지 망라해 신속한 지급정지 등을 도입하기 위한 '전기통신 이용 다중피해사기 방지법'은 이미 발의된 상황이다. 금융위는 해당 법률이 이른 시일 내로 통과될 수 있도록 국조실·경찰청·법무부 등 유관부처와 긴밀히 협의할 예정이다.
권대영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달 26일 보이스피싱 대응 간담회를 열고 "기존 법과 제도에 의존하는 것을 넘어 금융·수사당국 간 긴밀한 협력을 통해 가용수단을 총동원한 능동적 대응이 필요하다"며 "관계기관과 함께 새로운 유형의 범죄에도 대응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과감히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한금융을 비롯한 주요 4개 금융지주 역시 자체적으로 금감원의 '금융소비자보호 거버넌스 모범관행'에 따라 보이스피싱 근절에 힘쓰고 있다.
KB금융그룹(KB금융)은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IT 부문 산하에 있던 정보보호부를 준법감시인 산하로 이관했다. 내부통제와 소비자정보보호를 강화하기 위함이다. KB국민은행은 소비자보호그룹 안에 금융사기예방 유닛(unit)을 신설해 보이스피싱 등에 대한 사전 차단 체계를 구축했다.
하나금융그룹(하나금융지주)은 하나은행의 기존 소비자리스크관리부를 소비자보호전략부로 전면 재편하며 역할을 강화했다. 특히 소비자보호그룹장의 직급을 기존 상무에서 부행장급으로 격상해 사내 의사결정 기능을 확대했다.
우리금융그룹(우리금융지주)은 사내 소비자보호부문을 신설하고 독립적인 소비자보호 총괄책임자(CCO) 체제를 가동했다. 과거 자회사 CCO가 겸직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전 계열사를 아우르는 등 권한을 확대했다. 우리은행 역시 이사회 내 금융소비자보호위원회 신설을 최근 발표했다.
향후 보이스피싱 관련 정부 대응 역시 강화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2022년 대선공약으로 전국 지방자치단체 보이스피싱 특별사법경찰(특사경) 추진을 내건 바 있다. 지난달에도 한국의 '7대 비정상' 중 하나로 보이스피싱을 꼽은 만큼 금융당국·수사당국 간 협력을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