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째 새 주인을 찾지 못했던 KDB생명 인수전이 예상 밖 흥행에 성공했다. 당초 한국투자금융지주와 태광그룹 간 2파전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지만 삼성생명과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생명보험사 빅3가 모두 예비입찰에 참여하면서 판이 커졌다.
KDB생명은 산업은행이 2014년부터 매각을 추진해 온 장기 미매각 매물이다. 시장에서는 자본건전성 부담과 추가 자금 투입 가능성이 매각의 걸림돌로 꼽혀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산은의 자본 확충 가능성, 17조원대 자산 규모, 생보사 매물의 희소성, 연금저축보험 경쟁력 등이 맞물리며 KDB생명을 다시 들여다보는 후보들이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WHAT] 예상 깬 생보 빅3 참전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매각 주관사인 삼일회계법인은 전날 KDB생명 인수의향서 접수를 마감했다. 예비입찰에는 한국투자금융지주와 태광그룹은 물론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생보사 3곳이 참여했다.이번 인수전이 주목받는 것은 KDB생명의 7번째 매각 도전이라는 점 때문이다. 2020년 JC파트너스, 2023년 하나금융그룹이 인수 문턱까지 갔지만 각각 대주주 변경 승인과 추가 자금 부담 문제로 거래가 무산됐다. 여러 차례 매각이 불발됐던 매물에 대형사들이 한꺼번에 뛰어든 것이다.
[WHY] 자본 확충·자산 규모·연금 경쟁력
한때 '애물단지'로 불렸던 KDB생명이 다시 관심을 받는 배경에는 여러 요인이 맞물려 있다.먼저 산은은 지난해 말 KDB생명에 5000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KDB생명은 완전자본잠식 상태에서 벗어났고, 지난해 말 기준 경과조치 후 지급여력(킥스·K-ICS)비율은 205.73%로 개선됐다. 산은은 매각 과정에서도 사전 자본 확충 협의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KDB생명은 그동안 인수 이후 추가 자본 투입 부담이 가장 큰 변수로 꼽혀왔다"며 "산은이 자본 확충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가격 조건만 맞으면 과거보다 인수 후보들이 검토할 여지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자산 규모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지난해 말 기준 KDB생명의 자산 규모는 17조2045억원으로 현재 매물로 나온 롯데손해보험과 예별손해보험보다 많은 수준이다. 일정 규모 이상의 자산과 계약 기반을 가진 매물이라는 점이 부각된 셈이다.
생보사 매물 자체가 흔치 않다는 점도 이번 흥행을 이끈 요인으로 꼽힌다. 현재 보험 M&A(인수·합병) 시장에는 롯데손해보험, 예별손해보험 등 손보사 매물이 나와 있지만 일정 규모를 갖춘 생보사 매물은 상대적으로 드물다. 생보사는 장기 보험계약을 바탕으로 대규모 자산을 운용한다. 인수 후보 입장에서는장기 고객 기반과 운용자산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가운데 KDB생명이 연금저축보험 시장에서 비교적 준수한 성과를 낸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KDB생명은 과거부터 연금저축보험을 꾸준히 판매해 온 회사다. 고령화로 연금 시장이 확대되는 가운데 기존 계약 기반과 고객군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인수 매력으로 꼽힌다. 실제 KDB생명은 지난해 연금저축보험 수익률이 3.4%로 업계 평균(2.5%)을 웃돌았다.
이석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연금은 보험사만 하는 영역이 아니라 금융권이 함께 경쟁하는 시장"이라며 "최근 고령화로 연금 수요가 커지는 상황에서 KDB생명이 장기보험상품 쪽에 장점이 있는 회사라면 대형 생보사에도 메리트가 있다"고 말했다.
[PLAYERS] 삼성은 방어, 한화는 채널, 교보는 포트폴리오 확대
생보 빅3가 모두 예비입찰에 참여했지만 각 사의 셈법은 다르다. 삼성생명은 시장 지위 방어, 한화생명은 영업채널 확대,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 이후 포트폴리오 강화 차원에서 KDB생명을 들여다본 것으로 풀이된다.삼성생명은 업계 1위 사업자인 만큼 인수가 절실한 상황은 아니다. 다만 한화생명이나 교보생명 등 경쟁사가 KDB생명을 인수할 경우 생보업계 점유율 구도와 연금·보장성보험 경쟁에 변화가 생길 수 있다.
한화생명의 경우 법인보험대리점(GA)을 통한 공격적인 영업채널 확대와 더불어 사업 포트폴리오 강화를 동시에 노리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한화생명은 주요 생보사 중 가장 먼저 자회사형 법인보험대리점(GA) 기반 노선을 택했다. 2021년 전속 설계사 2만명가량을 한화생명금융서비스로 이관했고, 올 1분기 기준 설계사 수는 2만7000명가량으로 전체 1위다.
업계 관계자는 "한화생명은 산업은행이 KDB생명 매각을 결정한 이후부터 꽤 적극적으로 인수를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근 법인보험대리점을 통한 영업 확대와 더불어 보험사 인수를 통한 포트폴리오 강화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교보생명은 올해 말 지주사 전환을 목표로 한다고 밝힌 상태다. 최근 SBI저축은행 인수를 진행했으며 기업공개 최대 장애물로 꼽혔던 재무적투자자와의 풋옵션 분쟁도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분위기다.
금융권 관계자는 "교보생명은 지주사 전환을 선언한 이후 SBI저축은행 인수에 이어 사업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한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며 "재무적투자자 소송 건도 현재 어느 정도 마무리되는 가운데 인수를 계속 추진한다면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RISK] 흥행과 완주는 별개
다만 예비입찰 흥행이 곧 매각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KDB생명은 지난해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수익성 회복 과제를 안고 있다. 산은이 KDB생명에 투입한 금액도 2조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추가 유상증자 규모와 매각가, 실사 결과가 본입찰의 핵심 변수가 될 전망이다.산은은 예비입찰 참여 업체를 대상으로 사전심사와 인수의향서 평가를 진행한 뒤 조만간 적격인수후보를 선정할 예정이다. 이후 실사를 거쳐 이르면 8월 중 본입찰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