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원·달러 환율과 주식시장의 마감 시황이 표시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회사의 본질 가치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솔직히 믿고 기다려 주시는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기자와 만난 제약·바이오 기업 대표의 하소연이다.

코스피가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정작 바이오업계의 온도는 사뭇 다르다. 공매도 거래가 급증하면서 일부 종목은 연일 롤러코스터 장세를 반복하고 있다. 공매도 과열종목 지정 사례가 잇따르고 기업들은 R&D(연구·개발)보다 주가 방어에 더 신경 써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공매도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특히 제약·바이오 업종은 늘 중심에 서 있었다. 신약 개발과 기술수출, 임상 등 미래가치에 대한 기대가 주가에 선반영되는 특성상 변동성이 크기 때문이다. 기대가 커질수록 공매도 세력의 표적이 되기 쉽고 작은 악재에도 주가는 크게 흔들린다.

실제 바이오업계를 이야기할 때 공매도를 빼놓기 어려울 정도다. 국내 대표 바이오기업인 셀트리온의 서정진 회장이 한때 공매도에 맞서 "차라리 경영권을 내려놓겠다"고 한 발언은 상징적이다. 최근에도 알테오젠, 삼천당제약, 에이비엘바이오 등 시장의 관심을 받는 바이오 종목들은 공매도 확대 국면마다 투자심리 위축 논란의 중심에 서곤 한다.

냉정히 말하면 문제는 공매도 자체가 아니다. 공매도를 바라보는 시장의 불신이다. 공매도는 시장경제가 만든 자정 장치다. 과도하게 오른 주가의 거품을 걷어내고 부실 기업을 걸러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상당수 전문가들은 공매도를 시장의 청소부라고 부른다. 세계 주요 선진국 대부분이 공매도를 허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서 공매도는 늘 논란의 대상이다. 개인투자자들은 기관과 외국인에 비해 불리한 거래 환경에 놓여 있다고 느낀다. 기관과 외국인은 공매도를 위해 방대한 주식 대여시장을 활용할 수 있지만 개인이 빌릴 수 있는 주식 물량은 여전히 제한적이다.

개인투자자들이 문제 삼는 것은 공매도 자체보다 접근성의 차이다. 국내 증시 거래의 상당 부분을 개인이 차지하고 있지만 공매도 시장만 놓고 보면 기관과 외국인의 영향력이 압도적이다. 개미가 거래의 70%를 떠받치는 나라에서 정작 공매도 시장에서는 기관과 외국인이 98% 이상을 독점하는 기형적 구조다. 공매도 거래가 특정 주체에 집중돼 있다는 인식은 시장의 뿌리 깊은 불신을 키우는 요인이다.

과거 잊을 만하면 적발된 무차입 공매도 사건도 시장 신뢰를 크게 훼손했다. 일부 글로벌 투자은행(IB) 등이 규정을 위반해 적발됐음에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과연 같은 잣대가 적용되고 있는가"라는 의문이 사라지지 않았다. 공매도 자체보다 규칙을 어긴 거래가 반복됐다는 사실이 개인투자자들의 반감을 키웠다.

금융당국이 지난해 공매도 재개 과정에서 상환기간 통일, 담보비율 조정, 중앙점검시스템(NSDS) 도입 등 개선책을 내놨지만 시장의 평가는 여전히 엇갈린다. 투자자들이 원하는 것은 공매도 폐지가 아니라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공정한 규칙과 엄정한 집행이다.

역설적이게도 공매도의 순기능을 살리는 길 역시 신뢰 회복에서 시작된다. 신뢰를 잃은 제도는 시장의 외면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공매도에 대한 불신을 걷어내는 일은 특정 투자자의 이해관계를 넘어 한국 자본시장의 경쟁력을 높이는 출발점이다. 꿈의 코스피 1만 시대를 여는 마지막 퍼즐은 공매도 존폐 논쟁이 아니라 시장 신뢰 회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