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 지원을 바탕으로 개발된 SK바이오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의 한국 출시를 국내 뇌전증 환자들이 기다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 2월 최종현학술원 주최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TPD) 2026 행사에서 환영사를 하는 최태원 회장. /사진=SK

"신약개발에 처음 도전한 후 혁신과 패기, 열정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습니다. 장기적인 안목에서 꾸준히 투자해 혁신적인 신약 개발의 꿈을 이룹시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인 2016년 6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SK바이오팜 구성원들을 찾아가 직접 건넨 격려의 메시지다. 당시는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가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허가를 받기 전이어서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태원 회장의 지속적인 지원 아래 세노바메이트는 2019년 FDA 허가를 획득해 미국 성과를 냈고 현재 국내 출시까지 앞두고 있다.

세노바메이트, 내년 국내 출시 전망…"환자 일상 되찾아줄 대안"

사진은 미국에서 엑스코프리라는 이름으로 출시된 SK바이오팜 뇌전증 신약 세노바메이트. /사진=SK바이오팜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SK바이오팜은 세노바메이트 국내 출시 과정에서 약가 협상 등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동아에스티와 협력하고 있다. SK바이오팜의 국내 상업화 경험이 부족한 점을 고려해 전문성 있는 파트너사의 도움을 받기로 결정한 것. SK바이오팜으로부터 세노바메이트 국내 상업화 권리를 획득한 동아에스티는 지난해 11월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 허가를 받은 뒤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 급여 신청 작업 등을 수행하는 중이다. 출시 시점은 내년으로 예상된다.


SK바이오팜 관계자는 "세노바메이트 한국 상업화 과정에서 규제 환경을 효율적으로 헤쳐 나가기 위해 국내 전문의약품 시장에서 강력한 인프라와 노하우를 가진 동아에스티와 상업화 권리 계약을 체결했다"며 "동아에스티와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국내 출시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노바메이트는 완전 발작 소실률이 20% 이상으로 경쟁 약물(3% 수준)보다 높다. 한국 환자들이 세노바메이트 국내 출시를 기다리고 있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뇌전증 환자들은 언제 어디서 발생할지 모르는 돌발적인 발작에 대한 불안감으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분노 등을 느끼면서 살아간다. 세노바메이트를 통해 발작이 완전히 없어질 경우 뇌전증 환자의 삶의 질이 개선될 것이란 게 환자 단체 관계자 설명이다.

허도경 한국뇌전증협회 이사는 "전체 뇌전증 환자의 약 30%는 항경련제를 복용해도 발작 조절이 안 되는 약물 난치성(저항성) 뇌전증을 앓고 있다"며 "세노바메이트 국내 출시는 기존 치료제로 효과를 보지 못했던 난치성 환자들에게 일상의 평온을 되찾아 줄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작이 관리된다는 것은 환자의 심리적 부담과 신체적 손상을 방지할 뿐만 아니라 급사 위험률도 낮춰 의학적 가치가 크다"며 "발작이 제어되면 뇌전증 환자들은 편견 없는 사회의 일원으로 주체적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세노바메이트 성과, 최종현이 시작해 최태원이 완성

사진은 1997년 산소 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한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가운데). /사진=SK

세노바메이트는 미국에 먼저 출시된 제품이다. SK그룹은 2001년 세노바메이트 개발에 착수한 지 18년 만인 2019년 FDA 승인을 획득했다. 이후엔 SK바이오팜 미국 현지 법인인 SK 라이프 사이언스를 통해 미국 직판(직접 판매)이 이뤄졌다. 한국 기업이 미국에서 자체 신약을 직접 판매하는 첫 사례다. 세노바메이트는 초기 시장 진입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매년 전미 세일즈 미팅과 현장 간담회를 개최하며 시장에 안착했다. 지난해 SK바이오팜 전체 매출(7067억원)의 89.2%(6303억원)가 세노바메이트 미국 매출에서 나왔을 정도다.


세노바메이트 성과는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에서 비롯돼 아들 최태원 회장이 완성했다는 평가다. SK그룹은 최종현 선대 회장 시절인 1993년 SK에너지 대덕연구소를 통해 신약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주력 사업이었던 섬유를 이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제약·바이오 사업을 낙점했지만 최종현 회장은 끝내 신약개발 성과를 보지 못했다. 제약·바이오 산업에 뛰어든 지 5년 만인 1998년 폐암 악화로 별세했던 탓이다. 이후 경영권을 넘겨받은 최태원 회장은 2002년 신약개발 조직을 통합하고 미국과 중국에 연구소를 설립하며 신약개발 지원을 본격화했다. 2011년에는 SK㈜ 물적분할로 SK바이오팜을 세웠고 세노바메이트 미국 상업화까지 이뤘다.
사진은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USA를 통해 사업 계획을 언급하는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 /사진=김동욱 기자

세노바메이트 미국 상업화를 통해 노하우를 쌓은 SK바이오팜은 향후 CNS(중추신경계) 분야 신약개발 성과를 앞당겨 환자들에게 새로운 치료 옵션을 빠르게 제공할 계획이다.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과 AI(인공지능)를 활용해 신약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게 핵심이다. 최근 중국 인실리코 메디슨과 CNS 질환 치료제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개발 계약을 시작으로 추가 협력 사례가 이어질 것으로 업계는 전망하고 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대표는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 바이오USA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세노바메이트 경험을 활용해 상업화할 신약 파이프라인(개발물질)을 어떻게 가져갈 것인지가 중요하다"며 "독자개발 방식으로 접근하면 10년은 걸리는데 오픈 이노베이션과 AI를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기술을 서양에서 상업화하는 일명 '이스트(EAST)-웨스트(WEST) 브릿지' 콘셉트 전략을 내부적으로 준비 중"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