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의 전체회의 모습. 방미통위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이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킨다는 논란에 대해 "정치적 선동에 불과한 주장"이라고 반박했다./사진=뉴스1

오래전 방송심의기구를 출입한 적이 있다. 일부 기자들 사이에서는 이 기관을 '자판기 위원회'라고 부르는 냉소가 있었다. 회의가 열리기도 전에 결론을 짐작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안건은 여야 추천 위원 구성에 따라 결론이 갈리곤 했다. 정권이 바뀌면 공정성과 중립성의 잣대도 달라지는 듯했다. 어느 정부나 독립적 심의를 강조했지만 정파를 넘어선 신뢰는 끝내 쌓이지 못했다. 남은 교훈은 분명했다. 제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운영에 대한 신뢰였다.

7일부터 시행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이른바 '허위조작정보 근절법'도 같은 질문을 던진다. 이 법은 고의로 허위·조작정보를 유포해 타인에게 피해를 준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도록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도입했다. 일정 규모 이상의 유튜버에는 강화된 책임을, 대형 플랫폼에는 허위정보 대응 체계와 투명성 보고 의무도 부과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입틀막법'이라는 비판과 가짜뉴스 대응이라는 옹호가 맞서고 있다. 그러나 찬반 논쟁보다 중요한 핵심은 따로 있다. 무엇을 허위정보로 볼 것인가.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국민이 얼마나 납득할 수 있느냐다.

허위정보를 가르는 일이 모두 어려운 것은 아니다. 문제는 경계다. 법은 허위·조작정보를 '전부 또는 일부가 허위이거나 사실로 오인되도록 변형된 정보'로 규정한다. 여기에 혐오·차별 정보를 새로운 불법정보 유형으로 포함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현저히 훼손하는 정보'라는 표현도 사용했다. 이런 개념은 일정 부분 해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판단은 법적 기준보다 정치적 해석에 끌려갈 위험이 커진다.

진짜 난제는 정치적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이다. 선거, 정책, 권력 비판처럼 사회적 갈등이 첨예한 영역에서는 같은 자료도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힌다. 이 지점에서 허위정보 규제는 팩트체크 기술이 아니라 판단 기준의 문제로 바뀐다. 방송심의가 끊임없이 논란이 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허위정보를 방치할 수는 없다. 일부 유튜버와 이른바 '사이버 렉카'는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사실처럼 유포하며 명예를 훼손해왔다. 그 과정에서 막대한 수익도 따라왔다. 거짓 정보는 선거와 정책, 사회적 갈등을 동시에 흔들어왔다. 표현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이지만, 고의적 허위정보까지 보호할 수는 없다.

문제는 규제 방식이다. 이번 제도는 플랫폼 사업자가 게시물 삭제나 노출 제한 여부를 판단하도록 설계됐다. 그러나 플랫폼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아니다. 사실관계를 판단할 권한과 역량이 충분하지 않고, 과거 사례를 보면 정치적 편향성 논란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여기에 이번 법은 누구든 허위정보를 신고할 수 있도록 했다. 시민 참여를 넓힌다는 취지가 있지만, 정치적 쟁점에서는 조직적 신고 경쟁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신고가 몰리면 플랫폼은 가장 안전한 선택, 즉 '일단 삭제'로 기울 수밖에 없다. 그 순간 공익적 비판까지 함께 위축된다.

제도를 뒷받침할 장치도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플랫폼과 협력해 허위 여부를 검증할 사실확인단체는 구성 단계이고, 이를 지원할 투명성센터도 출범을 앞두고 있다. 객관적 판단 체계가 자리 잡기도 전에 법부터 시행되는 셈이다. 준비보다 시행이 앞서는 제도는 초기 혼란을 피하기 어렵다.

결국 관건은 독립성과 신뢰다. 사실확인단체와 투명성센터가 정치적 중립성과 일관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제도는 오래 버티기 어렵다. 정부에 유리한 주장에는 관대하고 비판에는 엄격하다는 의심이 생기는 순간 신뢰는 무너진다. 보수와 진보, 권력자와 권력비판 세력 모두에 동일한 기준이 적용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제도는 공론장의 안전장치가 아니라 또 하나의 '입틀막법' 논란으로 남을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마찬가지다. 권력자나 대기업이 소송을 통해 상대를 위축시키는 방식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 정부와 여당은 보완장치를 마련했다는 입장이지만, 언론 현장의 우려는 여전하다. 그만큼 추가적인 보완 입법 논의도 열어둘 필요가 있다. 허위정보는 엄정하게 다루되, 공익적 비판과 탐사보도는 더 두텁게 보호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략적 봉쇄소송을 막는 제도적 장치도 필요하다.

거짓은 처벌만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더 빠르고 넓게 진실이 확산되는 정보 생태계가 필요하다. 앞으로 구성될 미디어발전위원회도 규제 중심을 넘어 공익적 저널리즘이 성장할 환경을 만드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 시민이 사실과 의견을 구별할 수 있도록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 좋은 저널리즘이 살아야 허위정보의 공간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방송심의가 남긴 교훈은 분명하다. 정파성 논란이 시작되는 순간 제도는 신뢰를 잃는다. 허위정보 규제도 다르지 않다.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독립적이고 일관된 기준이 있을 때만 제도는 작동한다. 이 법이 허위정보를 줄이는 장치로 자리 잡을지, 또 다른 '입틀막법' 논란으로 남을지는 결국 신뢰의 문제다. 법의 권위는 처벌의 강도가 아니라 기준의 공정성에서 나온다.

이상복 시대 논설위원 겸 미디어랩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