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피알이 뷰티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자체 기술과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K뷰티의 새로운 성장 공식을 제시하고 있다. /사진=김다솜 기자

화장품을 잘 만드는 기업이 K뷰티를 이끌던 시대가 바뀌고 있다. 에이피알은 화장품 제조·판매를 넘어 뷰티 디바이스를 중심으로 연구개발(R&D), 생산, 물류를 아우르는 자체 밸류체인을 구축하며 성장 공식을 바꾸고 있다. 브랜드 경쟁력 중심이던 K뷰티 성장 방식에서 벗어나 기술(테크)을 성장 동력으로 삼았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에이피알은 2025년 연결기준 매출 1조5273억원, 영업이익 3654억원을 기록했다. 각각 전년 대비 111%, 198% 증가한 수치다. 창립 이후 11년 연속 성장했다. 올해 1분기에는 연결기준 매출 5934억원, 영업이익 1523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23%, 174% 증가하며 역대 최대 분기 실적을 경신했다. 뷰티 디바이스 부문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46% 증가한 1327억원으로 분기 최대치를 기록하며 성장을 견인했다.


에이피알의 차별점은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를 함께 판매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기존 K뷰티 기업들이 제조업자개발생산(ODM)·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업체의 R&D와 생산 역량을 활용해 브랜드를 키웠다면 에이피알은 제품 기획부터 R&D, 생산, 물류까지 자체 밸류체인으로 통합 운영하는 방식을 택했다. 기술을 자체 확보해 품질 관리와 시장 대응 속도를 높인다는 전략에서다.

에이피알은 2023년 뷰티 디바이스 전담 R&D 조직을 신설하고 의공학·전자공학 분야 전문인력을 중심으로 핵심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133건, 해외 219건의 특허를 출원·등록했다. 서울 가산동과 경기 평택에 연구개발센터와 생산시설, 통합 물류센터를 구축했다. 평택 제2캠퍼스는 연간 최대 600만대 규모의 뷰티 디바이스 생산 능력을 갖춘 전문 생산기지다.

글로벌 시장 확대에 맞춰 안전성과 품질 검증 체계를 갖췄다. 대표 제품인 '부스터 프로'는 국내 홈 뷰티 디바이스 업계 최초로 국제 전기·전자제품 안전 규격인 CB 인증을 획득했다. 유럽 CE EMC, 미국 FCC, 국내 KC 인증 등을 확보했으며 글로벌피부과학연구원을 통해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의 안전성과 효능을 개발 단계부터 검증하고 있다.
에이피알의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 판매량이 지난 1월 기준 글로벌 누적 600만대를 돌파했다. /사진=에이피알

기술 내재화는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를 결합한 사업 구조로 이어졌다. 대표 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와 뷰티 디바이스 '에이지알'(AGE-R)을 함께 활용하는 제품 전략을 구축했다. 올해 1분기 화장품 및 뷰티 부문 매출은 452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74% 증가했고, 뷰티 디바이스는 역대 최대 분기 매출을 기록하며 두 사업이 함께 성장했다. 회사는 이 같은 사업 모델을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 중이다.


전문가는 이 같은 변화가 K뷰티 산업의 경쟁력 변화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한다. 김주덕 서울사이버대학교 뷰티산업학과 석좌교수는 "최근 K뷰티 경쟁은 화장품이나 뷰티 디바이스를 만드는 수준을 넘어 AI를 접목한 기술 경쟁으로 고도화하고 있다"며 "화장품과 뷰티 디바이스를 함께 사용하는 전략은 제품 간 효과를 높일 수 있고 기업 입장에서는 고객을 지속적으로 확보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에이피알은 뷰티 디바이스를 넘어 미용 의료기기 시장까지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초음파·고주파·미세전류 등 에너지 기반 장비(EBD) 의료기기와 PDRN·PN(연어 DNA 유래 재생 성분) 기반 스킨부스터 의료기기 사업을 준비 중이다. 김병훈 에이피알 대표는 지난 6월 미국에서 열린 '비즈니스 오브 뷰티 글로벌 포럼 2026'에서 "롱제비티(건강한 수명 연장)의 대중화를 목표로 미용 의료기기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의료기기 분야는 규제가 엄격하지만 진입에 성공하면 높은 부가가치를 기대할 수 있는 시장"이라며 "K뷰티 경쟁은 브랜드와 마케팅을 넘어 기술과 데이터, 자체 밸류체인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에이피알은 화장품·디바이스·의료기기로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며 새로운 성장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