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지난 6월 2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고법에서 열린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과의 재산 분할 소송 파기환송심 2차 변론기일에 출석하고 있다. / 사진=뉴시스 /사진=이영환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 9440억원을 현금으로 지급하라는 법원 판단이 나오면서 자금 마련 방안에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2심 판결보다 분할 규모가 줄어든 상태에서도 1조원에 육박하는 거액을 현금으로 마련해야 하는 만큼 주식담보대출, 배당 확대, 비상장 자산 매각 등 다양한 방식이 거론된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가사1부(재판장 이상주 부장판사)는 지난 24일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재산분할로 9440억원을 지급하고, 판결 확정 다음 날부터 다 갚는 날까지 연 5%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재산분할 규모는 2심의 1조3808억원보다 4368억원(31.6%) 줄었다. 1심의 665억원과 비교하면 14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국내 이혼 재산분할로는 역대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1297만5472주(지분율 17.90%)를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다. 상속·증여로 형성된 특유재산이어서 분할 대상이 아니라는 최 회장 측 주장은 배척됐다. 재판부는 "혼인 기간 중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여기에는 노 관장의 가사와 양육,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기여했다"고 밝혔다. 재산분할 비율은 최 회장 3분의 2, 노 관장 3분의 1이다.

분할 대상 주식의 가액 산정 기준일은 파기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24년 4월 16일(종가 16만2900원)로 정해졌다. 노 관장 측은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인 지난 6월 26일(종가 81만5000원)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시점 사이 주가 격차는 5배에 달한다. 재판부는 환송 이후 상승분을 분할 대상 재산 가액에 직접 반영하기는 어렵다고 보면서, 그 상승분은 분할 비율을 정하는 과정에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지급 방식은 현금으로 결정됐다. 최 회장의 SK㈜ 주식이 회사에 대한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된다는 점을 고려해서다. 노 관장 몫 가운데 주식으로 채우지 못한 부분을 현금으로 메우는 '대상분할' 방식이다. 이에 따라 최 회장의 의결권이 곧바로 줄어드는 상황은 일단 차단됐다.


남은 과제는 현금 조달이다. 재계에서는 보유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을 가장 유력한 카드로 거론한다. 주식을 팔지 않고도 현금을 조달할 수 있어 경영권 유지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 가치는 24일 종가(63만원) 기준 8조1745억원 수준으로 자금 조달 여력이 충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회장은 이미 보유 주식 일부를 담보·질권으로 제공해 4300억원대 대출을 받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담보계약·질권이 설정된 SK㈜ 주식은 272만8955주로, 전체 보유 물량의 21%에 해당한다. 추가 차입이 이뤄지면 개인 차입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주가가 하락할 경우 추가 담보를 제공해야 하거나 이자·상환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배당 확대 방안도 있다. SK텔레콤 등 우량 계열사가 배당을 늘려 SK㈜의 현금흐름을 키우고 이를 개인 배당수입으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최 회장이 지난해 SK㈜로부터 수령한 배당금은 1038억원으로 추산된다. 하나증권은 이번 판결 직후 SK텔레콤을 최선호주로 제시하며 "SK그룹의 지배구조 관련 문제를 줄일 방안으로는 우량 자회사 배당 확대가 사실상 유일하다"고 진단했다.

보유 지분 매각 가능성도 거론된다. SK㈜ 주식은 그룹 경영권과 직결되는 만큼 이를 처분하기보다 비상장사 SK실트론 지분을 활용할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최 회장은 개인 명의로 SK실트론 지분 29.4%를 총수익스와프(TRS) 방식으로 보유하고 있다.

SK㈜는 보유 중인 SK실트론 지분 70.6%를 두산그룹에 매각하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지난해 12월 두산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당시 거론된 기업가치는 4조~5조원, 반도체 업황 개선이 반영된 최근 시장 평가는 6조~7조원 수준이다. 두산은 지난 5월 최 회장 개인 지분까지 포함한 지분 100% 인수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거래가 성사될 경우 최 회장은 개인 지분 매각이나 담보 제공을 통해 약 7000억원 안팎의 현금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변수는 반도체 업황이다.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확대로 슈퍼사이클이 본격화하면서 AI 반도체 가치사슬의 핵심인 SK실트론을 매각하는 데 대한 부담이 커졌다. SK그룹 안팎에서 매각 재검토 기류가 감지되는 이유다. 재계에서는 개인 지분까지 함께 정리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최 회장이 다시 한번 법원의 판단을 받아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최 회장과 노 관장 측 어느 한쪽이라도 판결문을 송달받은 날부터 2주 이내에 재상고하면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올라간다. 대법원은 사실관계를 다시 따지지 않고 법리 오인이 있었는지를 살피는 법률심이기 때문에 결과가 바뀌진 않을 것이란 전망에 무게가 실린다. 재상고가 이뤄지면 판결 확정 시점이 늦어져 자금 조달에 필요한 시간을 벌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 회장 측 대리인은 "판결에 대한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