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에게 재산분할금으로 944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심이 명령한 1조3808억원보다 규모가 줄었지만 국내 이혼 재산 분할액으로 역대 최대 금액에 해당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서울고법 가사1부(이상주 부장판사)는 24일 오후 2시 열린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에서 "최 회장은 노 관장에게 9440억원 및 이 판결 확정일부터 갚는 날까지 5% 이자를 계산해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소송 비용은 각자 부담해야 한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은 1988년 결혼해 세 자녀를 뒀지만 최 회장이 2015년 혼외자의 존재를 알리면서 대외적으로 두 사람의 갈등이 알려지게 됐다. 이후 최 회장은 2017년 법원에 이혼 조정을 신청했으나 합의에 실패하자 정식 소송을 제기했다.
노 관장은 이혼을 거부해오다 2019년 12월 위자료 3억원과 최 회장이 보유한 지주사 SK 주식 1297만5472주 중 648만7736주를 분할해 달라는 내용의 맞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2022년 12월 1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지분을 특유재산으로 판단해 분할 대상에서 제외한 채 부동산과 예적금 등 1300억원 규모의 재산만을 분할 대상으로 인정, 최 회장이 노 관장에 1억원의 위자료를 지급하고 665억원 규모의 재산을 분할하라고 판결했다.
2024년 5월 2심 재판부는 노 관장의 아버지인 노태우 전 대통령의 불법 비자금 300억원이 최종현 SK그룹 선대 회장에게 전달돼 회사 성장에 기여했다고 판단해 SK㈜ 주식을 재산분할 대상으로 포함했다. 이로 인해 분할 대상 재산 규모가 4조원 가량으로 늘었고 노 관장의 분할 비율을 35%로 책정해 현금 1조3808억원을 재산분할액으로 선고했다. 위자료 역시 20억원으로 크게 늘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노 전 대통령의 자금이 SK에 유입됐다고 가정하더라도 불법 비자금은 법의 보호영역 밖에 있으므로 이를 재산 기여로 인정한 2심 판결에 오류가 있다고 봤다. 이에 이혼 여부와 위자료 20억원 등은 그대로 확정한 채 재산분할 규모만 다시 산정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의 판단대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을 노 관장의 기여로 보지 않았고 재산분할비율 산정 대상에서 제외했다. 최 회장이 혼인관계 파탄 이전 경영권 유지와 경영활동 차원에서 증여한 주식 등도 분할 대상 재산에서 제외했다. 다만 최 회장이 현재 보유한 SK㈜ 주식은 공동재산으로 분할대상 재산에 포함해 3분의 2는 최 회장이 갖고 3분의 1은 노 관장에게 줘야한다고 판단했다. 분할 범위는 축소됐지만 SK㈜ 주식 가치의 증대에 대한 노 관장의 기여를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선고 직후 설명자료를 통해 "(최 회장의)보유 주식은 혼인기간 중 최 회장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 최 회장과 노 관장 모두가 그 형성이나 가치의 유지 및 증가에 기여했다고 인정된다"며 "혼인기간 중 반소피고의 경영활동으로 반소피고 보유 주식의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여기에는 노 관장의 가사 및 양육,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주식 가치 산정 시점은 파기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인 2024년 4월16일로 잡았다. 당시 주가는 종가 기준 16만원이다. 재판상 이혼이 확정된 뒤 재산분할을 심리하는 경우에도 원칙적으로 이혼소송 사실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는 기존 대법원 판례를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파기환송 전 항소심 변론종결일 이후 파기환송심 변론종결일 사이에 SK㈜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으나 이는 최 회장의 경영적 기여가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다. 다만 부부 공동재산의 공평한 분배를 위해 최 회장 보유 SK㈜ 주식의 주가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는 사정은 재산분할 비율의 산정에 고려했다는 게 재판부의 설명이다.
재판부는 재산분할 방법에 대해선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할 것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재판 과정에서 최 회장과 노 관장이 밝힌 분할 방법에 관한 의사, 최 회장의 SK㈜ 주식은 회사에 대한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이 있는 점, 분할 대상 재산의 명의와 형태, 취득 경위 및 이용 상황 등을 고려해 재산분할비율에 따른 노 관장의 몫 중 부족한 금액을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으로 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재산분할 규모는 2심의 1조3808억원보다 4368억원(31.6%) 줄었지만 1심의 665억원과 비교하면 14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이날 파기환송심 선고가 9년간 이어온 법적분쟁의 완전한 마무리는 아니다. 파기환송심 선고 결과에 어느 한쪽이라도 불복해 재상고할 경우 사건은 다시 대법원으로 간다.
최 회장 측 변호인은 이날 파기환송심 선고 직후 "약 20년에 가까운 혼인 해소 과정에서 작년 대법원 판결로 이혼이 확정됐고 오늘 재산분할의 판결이 있었다"며 "최태원 회장은 지금까지 과정에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서 송구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판결에 대해 구체적 입장은 판결문을 면밀히 검토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노 관장 측은 별도의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