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집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옆 가게는 남녀노소 누구에게나 빵을 팝니다. 제 가게는 키 180㎝가 넘는 남자한테만 팔라고 정해져 있습니다. 그런데 세금도 규제도 옆 가게와 똑같이 적용받는다면 받아들일 수 있을까요?"
최성욱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장(62)은 국내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처한 상황을 빵집에 빗대 설명했다. 강원랜드를 제외한 국내 카지노는 내국인 출입이 금지돼 있다. 손님을 고를 수 없는 수준을 넘어 애초에 영업할 수 있는 대상이 정해져 있는 셈이다.
지난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카지노업관광협회 사무실에서 만난 최 회장의 표정과 말투에서는 이번 개편을 생존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업계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카지노 업계는 정부가 추진하는 관광진흥개발기금 인상을 단순한 비용 증가가 아니라 산업의 향방을 좌우할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적자를 내도 부담해야 하는 현행 매출 기준을 이익 기준으로 바꾸는 문제만큼은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했다.
정부는 최근 국회 토론회에서 연 매출 3000억원 이상 카지노의 관광진흥개발기금 납부율을 현행 10%에서 15%로 높이는 방안을 제시했다. 마카오와 싱가포르 등 해외 주요 카지노 국가와 비교해 한국의 부담 수준이 낮다며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최 회장은 "글로벌 스탠다드를 이야기하려면 세율만 볼 것이 아니라 제도 전체를 함께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 선진국 가운데 외국인 전용 카지노 제도를 운영하는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영업 구조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데 세금만 글로벌 스탠다드를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비교대상으로 삼은 마카오, 싱가포르, 미국 라스베이거스 등 주요 카지노 시장은 자국민도 출입할 수 있는 개방형이다. 이들 카지노가 자국민 수요를 기반으로 사업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국제 정세와 외교 상황에 따라 매출과 수익성이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다.
세금과 기금의 부담 구조도 다르다. 최 회장은 "마카오는 세율이 높은 대신 법인세가 없다. 우리는 기금과 개별소비세, 교육세를 부담한 뒤 남은 이익에 법인세까지 낸다"며 "세율 숫자만 떼어놓고 비교하면 안 된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규제와 인프라, 국민 인식이 먼저 국제 기준에 맞춰진 다음에 세율을 얘기해야 한다"고 부연했다.
적자여도 매출 기준 부과…"이익 기준으로 바꿔야"
현재 업계가 가장 문제 삼는 대목은 관광진흥개발기금이 이익이 아닌 매출에 부과된다는 점이다. 카지노가 적자를 기록해도 매출이 발생하면 기금을 내야 한다. 국내 카지노는 해외 고객을 유치하기 위한 항공권과 숙박 등 마케팅 비용이 큰 데다 24시간 운영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상당하다. 매출이 늘어도 이익이 함께 증가한다고 보기 어려운 구조다.
최 회장은 "적정한 수준의 기금이나 세금을 내는 것 자체를 거부하는 게 아니다"라며 "다만 기준이 매출이 아니라 이익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는 최근 2년 연속 대규모 순손실을 기록하면서 매년 100억원이 넘는 기금을 납부했다. 협회 추산에 따르면 인상안이 시행될 경우 파라다이스와 GKL, 인스파이어 등 육지 주요 3개사의 기금 부담은 연간 1560억원에서 2323억원으로 763억원 늘어난다. 제주 롯데관광개발까지 포함하면 주요 4개사의 연간 부담 증가액은 1000억원을 넘어선다.
한국관광공사가 최대주주인 GKL도 예외가 아니다. 협회 추산상 기금률 15%를 적용하면 GKL의 기금 부담은 638억원으로 직전 연도 영업이익 526억원을 웃돈다. 관광산업을 육성해야 할 정부가 외국인 관광객을 직접 유치하는 민간 기업과 공공기관의 투자 여력을 동시에 줄이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은 역설적이다.
카지노 업계가 1994년 이후 납부한 관광진흥개발기금은 누적 5조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납부액은 약 3600억원이다. 업계는 그동안 낸 기금이 국내 관광산업과 카지노 경쟁력 강화에 얼마나 활용됐는지 체감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기금 부담을 더 늘리려면 추가로 걷은 재원을 어디에 투입하고, 그것이 관광 경쟁력 향상에 어떤 효과를 낼 것인지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카지노의 사행산업적 성격을 관리하는 것과 별개로,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관광산업의 한 축으로도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업계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고객은 카지노에서만 돈을 쓰지 않는다. 호텔에서 숙박하고 식당과 면세점, 백화점에서 소비한다. 인근 관광지를 찾고 공연이나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며, 국제회의와 기업 행사에도 참여한다. 카지노가 호텔·쇼핑·공연·마이스와 결합할수록 소비 효과는 숙박과 유통, 식음료 등 주변 관광산업으로 확산된다.
방한 외국인 관광객이 역대 최고 수준으로 늘어나고 정부가 외래 관광객 확대를 국가적 과제로 내세운 지금은 관광산업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할 시점이다. 최 회장은 "카지노업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관광산업 전체의 경쟁력 문제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금과 규제로 투자 여력이 줄면 그 여파가 카지노를 넘어 한국 관광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는 것이다.
업계가 투자 여력 확보를 강조하는 가장 큰 이유는 2030년 개장 예정인 일본 오사카 복합리조트(IR)다. 투자 규모가 10조원을 웃도는 오사카 IR은 카지노 한 곳을 새로 짓는 사업이 아니다. 호텔과 쇼핑몰, 공연장, 국제회의장, 식음료 시설을 한데 묶어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거대한 관광 플랫폼에 가깝다. 최 회장은 "오사카가 열리면 카지노 손님만 옮겨가는 게 아니다. 서울과 제주, 인천을 여행지로 고르던 관광객들이 오사카 쪽으로 이동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업계가 제시하는 해법은 국내 시설과 서비스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기금 융자 범위를 확대하고 호텔·쇼핑·공연장 등 관광 부대시설에 투자한 금액을 기금 산정 때 일부 인정하는 방안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카지노 업계가 기금을 얼마나 더 낼 수 있느냐에만 있지 않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가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시기에 관련 정책이 관광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하도록 설계돼 있는지를 묻는 문제다. 기금을 더 걷는다면 추가 재원을 어디에 투입해 한국 관광의 경쟁력을 높일 것인지도 함께 답해야 한다.
최 회장은 "제도 정상화도 필요하지만 모든 정책에는 시기가 있다"며 "지금은 부담을 늘릴 때가 아니라 글로벌 관광도시들과 경쟁할 체력을 키워야 할 때"라며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