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일본, 영국 중앙은행이 나란히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하지만 글로벌 통화정책의 긴축 기조가 꺾였다고 보기는 어려운 모습이다. 세 중앙은행 모두 물가가 다시 높아질 위험을 강조하고 금리 인상 가능성을 열어뒀기 때문이다.
주요국의 이번 결정은 단순한 동결이라기보다 물가의 방향을 확인하기 위한 '긴축 대기'에 가깝다는 평가다. 이에 따라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75%로 올린 한국은행이 이달 금리를 곧바로 추가 인상할지, 한 차례 쉬어갈지 판단하기가 한층 어려워졌다.
동결로 모였지만 메시지는 '매파적'
이번 주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와 일본은행(BOJ), 영란은행(BOE)이 잇따라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이른바 '슈퍼 중앙은행 위크'였다. 시장의 예상대로 세 중앙은행 모두 금리를 동결했지만 결정문과 소수의견에서는 물가에 대한 경계감이 한층 뚜렷하게 나타났다.연준은 기준금리를 연 3.50~3.75%로 5회 연속 동결했다. 정책결정문은 경제활동이 견조한 속도로 확장되고 노동시장도 안정적인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인플레이션은 여전히 2% 목표보다 높은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이번 회의에서는 베스 해맥 클리블랜드 연방준비은행 총재와 닐 카시카리 미니애폴리스 연은 총재, 로리 로건 댈러스 연은 총재 등 3명이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케빈 워시 의장 체제 출범 이후 첫 반대표인 데다 같은 방향의 반대표가 3명 나온 것은 10여 년 만이다. 금리 동결에도 연준 내부의 추가 긴축 요구가 커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본은행은 단기 정책금리를 연 1.0%로 유지했다. 지난달 기준금리를 31년 만의 최고 수준으로 올린 만큼 당분간 인상 효과를 점검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물가 진단은 이전보다 한층 매파적으로 바뀌었다. 일본은행은 분기 경제·물가전망에서 중장기 기대인플레이션 상승과 기업들의 가격·임금 인상 움직임으로 근원물가가 2% 목표를 웃돌 위험이 있다고 처음으로 명시했다. 글로벌 인공지능(AI) 투자 확대와 반도체 가격 상승도 새로운 물가 상방 요인으로 지목했다.
정책위원 9명 가운데 다카타 하지메 위원은 대외 수요 충격에 따른 물가 상승 위험에 대응해야 한다며 기준금리를 1.25%로 올려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영란은행도 기준금리를 연 3.75%로 다섯 차례 연속 동결했다. 향후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임금과 서비스물가로 번질 가능성에 경계심을 유지했다. 통화정책위원 9명 가운데 휴 필 수석 이코노미스트와 메건 그린, 캐서린 만 등 3명은 0.25%포인트 인상을 주장했다.
세 중앙은행이 서로 다른 경제 여건에도 같은 결정을 내린 배경에는 물가 불확실성이 자리 잡고 있다. 당장 금리를 추가로 올릴 정도로 물가 위험이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긴축 종료를 선언할 만큼 안정됐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판단이다.
물가 다시 들썩…한은, '연속 인상' 여부 저울질
주요국 중앙은행이 일제히 '매파적 동결'을 택하면서 시장의 시선은 이달 27일 예정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로 쏠리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달 기준금리를 연 2.75%로 인상하며 긴축 사이클에 들어섰다. 소비자물가가 다시 3%대로 올라선 데다 근원물가도 2%대 중반에 머물면서 물가의 상방 리스크가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는 지난달 29일 국회 업무보고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을 재차 열어뒀다. 신 총재는 "앞으로도 금리 인상 기조를 이어갈 필요가 있다"며 "추가 인상 시기와 속도는 물가 상승 압력과 경기, 금융안정 상황을 종합적으로 점검해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신 총재는 중동 정세에 따른 국제유가 변동과 누적된 비용 상승, 환율 영향, 소득 개선에 따른 수요 압력 등을 주요 물가 상방 요인으로 제시했다. 소비자물가가 상당 기간 목표 수준을 웃돌 가능성이 있는 만큼 변동성이 큰 공급 요인보다 근원물가의 고착 여부를 통화정책 판단의 중심에 두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국가통계포털(KOSIS)에 따르면 전년 동월 대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8월 1.7%까지 둔화한 뒤 반등세로 돌아섰다. 지난해 9월 2.1%, 10월과 11월 각각 2.4%, 12월 2.3%를 기록했고, 올해 들어서는 1~2월 2.0% 수준에서 3월 2.2%, 4월 2.6%, 5월 3.1%, 6월 3.2%로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기조적 물가 압력도 뚜렷하다. 식료품과 에너지 등 변동성이 큰 품목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은 올해 4월 2.2%에서 5월과 6월 각각 2.5%로 높아졌다.
7월 금리인상 파급효 점검 가능성에 '무게'
다만 한은이 이달 곧바로 연속 인상에 나설지는 불투명하다. 지난달 금리 인상이 소비와 투자, 가계대출, 주택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해야 하는 데다 추가 긴축이 내수 회복과 취약차주의 이자 부담을 압박할 수 있어서다.시장에서는 한국은행이 긴축 기조를 유지하되 이달에는 지난달 금리 인상의 파급효과를 점검할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김지만 삼성증권 연구원은 "8월 금통위에서 연속 인상이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며 "한은이 추가 인상 방향은 분명히 했지만 경기 여건에 대해서는 여전히 유보적인 판단을 유지했고, 인상을 서둘러야 한다는 시급성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오는 10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추가 인상해 연말 3.0%에 도달한 뒤, 내년 상반기 두 차례 더 올려 최종금리가 3.5%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김진성 흥국증권 연구원도 금리 인상이 연속적이고 빠르게 전개되기보다는 단계적·점진적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통화정책기조가 중립에서 긴축으로 전환된 상태로 상당기간 살아있는 회의를 통해 데이터 디펜던트하게 결정할 방침을 천명하고 있어 매번의 회의에서 금리인상 가능성은 잠재해 있다"고 짚었다.
다만 "필요성 못지않게 제약도 존재하는 만큼 금리인상은 연속적이며 빠른 속도로 전개될 가능성 보다는 단계적, 점진적일 가능성이 좀 더 높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금통위 이전에 발표될 2분기 국내총생산 및 산업활동동향, 7월 소비자물가동향 등 주요 경제지표와 금융시장 동향이 중요한 힌트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