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회장이 지난 6월29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에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국정감사 때마다 반복되는 대기업 총수 증인 채택 논란이 올해도 불거졌다. 27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지난 22일 전체회의에서 10월13일까지 국감 일정에 부를 기관증인 211명과 일반증인 4명, 참고인 1명의 출석요구안을 의결했다.

홈플러스 사태와 관련해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이, 기업도시 추진과 관련해 이기승 BS그룹 회장이 명단에 올랐다. 반면 국민의힘이 '3대 메가프로젝트' 등과 관련해 요구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 회장의 증인 채택은 더불어민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앞서 21일에는 이 문제를 둘러싼 이견으로 전체회의가 취소되기도 했다.



국민의힘은 호남 반도체 클러스터 등 메가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정부의 외압이 있었는지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호남 반도체 투자를 두고 "정부가 저지른 최악의 기업 약탈"이라며 "특정인을 당선시키고 특정인을 낙선시키기 위한 전당대회 전격전이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를 정부 발목잡기용 정치 공세로 규정했다. 한병도 민주당 원내대표는 지난 17일 의원총회에서 "국민의힘이 메가프로젝트 추진을 이유로 대기업 총수 다수를 부르려는 움직임이 있다"며 "망신주기식, 사업에 방해를 주는 식의 마구잡이식 증인 채택은 의원들이 잘 대응해 달라"고 당부했다. 여야는 10월15일 이후 일정의 증인은 추가로 협의하기로 했지만 양측 모두 쉽게 물러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성원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장이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다른 상임위에서도 기업인 호출이 이어지고 있다. 국방위원회에서는 황명선 민주당 의원과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한화그룹의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인수 추진 배경을 묻겠다며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대한항공 기내식의 국산 농수산물 사용 실태를 따지겠다며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을 증인 명단에 올렸다. 조 회장은 통합 진에어 본사의 부산 유치 문제로 국토교통위원회에도 불려 나올 가능성이 있다. 이 밖에 CJ·롯데 등 주요 그룹 임원급 인사들도 증인으로 채택됐다.



증인으로 신청된 총수들이 실제로 국감장에 설지는 미지수다. 지난해에도 증인·참고인 명단에 오른 기업인이 역대 최대인 195명에 이르며 '무더기 소환' 비판이 일자 상당수가 철회됐다. 최태원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으로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을 이끌어야 한다는 점이 고려돼 정무위원회 증인에서 빠졌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도 증인으로 채택됐다가 철회됐다.

한 재계 관계자는 "매년 반복되는 무더기 소환으로 경영 현장의 부담이 매우 큰 것이 사실"이라며 "실무 책임자가 충분히 소명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거나 명확한 증인 채택 가이드라인을 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최요한 정치평론가는 [시대]와의 통화에서 "기업인 국감 증인은 과거 권위주의 정권 시절 재벌의 특혜와 정경유착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자리 잡은 정치적 관행"이라며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국감을 통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는 점도 이런 관행이 유지되는 이유"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총수들을 불러 국감에서 질타한 것이 실질적인 제도 개선으로 이어진 사례는 많지 않다"며 "정치권 전반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