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은 서로 맞붙어 있어서 농약을 치거나 물을 대는 방식이 제각각이면 곤란합니다. 그래서 땅 주인과 협의해 이웃이 대신 농사를 짓는 경우가 많죠. 전수조사가 시작되면서 앞으로 그 땅에서 계속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다들 불안해했습니다."
충북 보은에서 생대추 농사를 짓는 30대 농민 송씨는 [시대]에 정부의 농지 전수조사 이후 얼어붙은 농촌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23일 정치권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은 21일 당정협의회를 열고 관행적 임대차 등 투기 목적이 아닌 위법 농지에 처분 유예와 정상화 기회를 주는 후속대책을 내놨다. 위법 농지에 대한 지방자치단체장의 처분명령을 의무화한 개정 농지법이 지난달 28일 시행된 지 24일 만이다. 현장 실태를 충분히 살피지 않고 설익은 정책을 밀어붙인 결과라는 비판이 나온다.
전수조사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월24일 국무회의에서 농지 가격 상승을 지적하며 대대적인 조사를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이 대통령은 "필요하면 인력을 대규모로 조직해 전수조사하고 농사를 짓는다고 땅을 사서 방치할 경우에는 매각 명령하는 방안도 별도 검토해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1996년 이후 취득 농지를 조사한 결과 지난 7월 말까지 1013만필지 가운데 284만필지(27.0%)가 위반 의심 대상으로 분류됐다. 처분명령까지 의무화되자 고령농이 이웃에게 맡긴 관행적 임대차 농지도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번졌다. 처분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공시지가와 감정가 중 높은 금액의 25%가 이행강제금으로 부과된다. 올 1~7월 농지 실거래가도 전년 동기보다 4.4% 떨어졌다.

엄청나 전국농민회총연맹 정책위원장은 "임차농들은 언제 농지에서 쫓겨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느꼈다"며 "현장 현실과 겉도는 '보여주기식 행정'이 농민들의 불안을 더욱 부채질했다"고 했다.
보완책의 실효성을 둘러싼 의문도 여전하다. 농지은행 위탁은 소유자 참여가 전제여서 소유자가 거부하면 기존 임차농의 영농을 보장하기 어렵다. 명의가 정리되지 않은 상속 농지의 위탁 방식도 아직 검토 단계다. 기존 임차농을 보호하면서 청년농 등 신규 농민에게 공급할 농지까지 충분히 확보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김병율 한국농산업미래연구원장은 "1949년 농지개혁 이후 70년 넘게 쌓여온 잠재적 문제를 한꺼번에 조사하겠다고 나서니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사전에 충분한 설명과 대책을 마련하지 않아 농지 가격 불안과 농민 반발을 자초했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정책을 성급하게 발표했다가 반발에 밀려 보완책을 덧대는 일은 농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토지거래허가구역 실거주 의무, 종합부동산세, ISA(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 등을 놓고도 수정안이 잇따랐다. 정부 스스로 정책의 예측 가능성과 일관성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임정빈 서울대 농경제사회학부 교수는 "가짜 농민이나 불법 투기를 잡겠다는 목적에 치중한 나머지 농지 상속인들이 범법자로 몰리고, 농지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지역 농협의 부실 우려까지 커졌다"며 "처음부터 충분한 숙의를 거쳐 정책을 치밀하게 설계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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