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28일 게임 회사 '스마일게이트' 창업자 권혁빈 최고비전제시책임자(CVO·사진)가 2조5500억원 상당의 재산 분할을 명한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다./뉴스1


기업인의 이혼 소송에서 재산분할은 두 사람의 개인적 재산 청산에 그치지 않는다. 부부가 보유한 핵심 자산이 기업 지주사나 주요 계열사의 주식일 경우, 지분 분할 비율에 따라 주주총회 의결권 구조가 달라질 수 있다. 다수의 소액주주와 임직원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것이다.

지난 9월9일 권혁빈 스마일게이트 CVO(최고비전제시책임자)의 이혼소송 1심 재판부는 권 CVO가 배우자 이모씨에게 스마일게이트 주식 35%를 포함해 총 2조5500억원 상당의 재산을 분할하라고 명했다. 재판부는 권 CVO가 나머지 주식 65%를 보유하는 만큼 회사 지배권을 잃을 위험은 없다고 봤다.



하지만 이혼소송을 제기한 배우자 이씨가 2대 주주가 되면서 이사 선임·해임 등 주요 주주권 행사 과정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해 회사 경영을 흔들 수 있다는 게 권 CVO쪽 주장이다. 권 CVO는 지난 28일 항소를 제기하면서 "1심은 별다른 증거 없이 배우자 측의 주장에 의존해 기업의 주요한 경영상 의사결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형태의 재산분할을 명함으로써 향후 기업활동 전반에 중대한 불확실성을 야기했다"며 "상급심의 새로운 판단을 받고자 한다"고 밝혔다.

1심 재판부는 권 CVO의 회사 지배권에 영향이 없다고 봤지만, 권 CVO는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이유로 항소한 만큼 2심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최근 이혼 소송에서 법원은 주식 가치뿐 아니라 지배구조, 경영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는 게 이혼 전문 변호사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인철 대표변호사(법무법인 리)는 [시대]에 "법원이 명시적으로 판결문에 쓰지 않지만, 회사 주식이 걸려 있으면 경영권 유지를 암묵적으로 고려한다"며 "기업 주식 전체가 재산분할 대상이 되면 그 액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지고 회사 지배구조도 흔들리므로 이를 감안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기업 오너의 재산 중 상당 부분을 혼인 전 형성한 재산으로 보고 재산 분할액과 청구액 사이에 큰 차이가 나는 사례가 많았다. 임우재 전 삼성전기 고문은 2015년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혼하면서 1조2000억원대 재산분할을 요구했지만, 1% 정도인 141억1300만원만 인정받았다. 남편이 이혼 소송을 제기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경우에도 2022년 재판부는 조 전 부사장이 남편에게 13억3000만원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사장과 조 전 부사장이 보유한 호텔신라와 대한항공 주식은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지난 6월26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왼쪽)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파기환송심 2차 변론에 출석하는 모습./뉴스1


그러나 지난 7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재산분할 소송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 역시 재산분할 대상이라고 판단했다. 노 관장 역시 가사와 양육, 대외활동 등을 통해 주식의 형성과 가치 유지·증가에 기여했다고 봤다. 다만 "최 회장이 보유한 SK 주식은 회사 경영권 내지 지배권의 근거가 되는 측면이 있다"며 주식 현물이 아닌 현금 944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지난 5월 국내 한 비상장사 대표의 재산분할 소송에선 아내에게 143억원의 현금을 지급하라고 한 2심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대법원은 회사 대표가 이 돈을 마련하려면 비상장 주식을 매각하거나 제3자에게 담보로 제공해 대출을 받아야 하고, 이는 회사 지배력과 경영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 창업자 및 경영자로서 투입한 시간과 노력이 훼손되고 회사의 존속 가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판시했다. 앞선 두 사례는 경영자가 주식 매각에 따라 지배력을 잃게 되는 부작용까지 고려해 법원이 재산분할 방식을 현금으로 할지, 주식으로 할지 세심하게 가려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 등에서는 이혼에 따른 기업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해법과 대안을 고민해왔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2019년 매켄지 스콧과 25년간의 결혼생활을 끝내면서 약 54조원 규모의 재산을 넘겼다. 스콧은 베이조스가 보유한 아마존 주식의 25%를 받았지만, 해당 주식의 의결권은 그대로 베이조스가 행사하도록 해 경영권 변동을 최소화했다.

미국 등 선진국 기업 오너들은 혼전 계약을 통해 기업 지배구조 변동을 사전에 차단하기도 한다. 2022년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은 네 번째 이혼했지만, 자신과 이전 배우자 사이에서 낳은 네 자녀가 의결권을 나눠 가진 가족신탁을 통해 폭스뉴스 및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언론사 경영구조에 아무런 변화가 없도록 했다. 혼전 계약을 통해 경영구조를 흔들 수 없도록 사전 약속한 것이다.

다만 국내에선 아직 혼전 계약이 널리 활용되진 않는다. 김신혜 변호사(법무법인 한경)는 "한국도 민법 제829조의 부부 재산 약정등기 제도가 존재하긴 한다"며 "부부가 결혼 기간 재산 소유와 관리 방법 등에 대해 미리 약정을 체결하고, 혼인신고 전까지 등기하면 제3자에게 대항할 수 있는 제도"라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는 "다만 실제로 활용되는 사례가 거의 없고, 혼인 후에는 원칙적으로 약정 내용을 변경할 수 없어 해외처럼 혼전 계약서가 경영권 리스크를 막아주는 장치로 활성화되어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