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한국의 개 농장에서 구조된 사육견 '헨리'는 영국에서 치료견 자격을 얻었다. 사진은 헨리를 입양한 클레어 배스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휴메인)' 영국지사 캠페인 디렉터와 헨리./클레어 배스 제공


치료견(테라피독)은 여러 시설을 찾아가 심리적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고 위로와 치유를 건네는 개다. 심사를 통해 온순하고 사람을 잘 따르는 성격임을 확인해야만 치료견 자격을 얻는다. 영국 브라이턴의 골든 리트리버 '헨리'는 치료견 자격을 얻어 노인요양원 입소자들을 만난다. 슬프거나 외로움을 느끼는 노인에게 조용히 다가가 곁을 지키고, 무릎에 머리를 올려놓는다. 사람에게 온기를 내어주는 헨리는 9년 전 겨울만 해도 한국의 한 개 사육농장 '뜬장'(배설물을 쉽게 처리하려고 철조망을 지면에서 띄운 사육장)에 갇혀 있었다.

2017년 겨울 헨리를 현장에서 구해낸 건 영국인 클레어 배스(47)다. 배스는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영국지사 캠페인 디렉터다. 휴메인은 메인은 개농장 폐업과 사육견 구조·입양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다. 이 단체는 2015년부터 한국에서 개 사육 농장주들의 전업을 돕는 '변화를 위한 모델'(Model for Changes)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헨리가 있던 농장은 이 프로그램을 적용한 10번째 농장이었다.



배스는 2017년 헨리를 처음 마주할 때 광경을 "결코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헨리는 오물이 쌓인 뜬장 안에서 형제들과 함께 있었다. 지난 4일 동행미디어 시대와의 인터뷰에서 배스는 "그해 겨울 농장을 폐쇄하지 않았다면 헨리는 다가오는 복날 도살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헨리는 몹시 위축되고 낙담한 모습이었어요. 자신에게 벌어질 일이 두려운지 눈을 꼭 감고 있었죠. 마치 보지 않으면 해를 입지 않을 수 있다고 믿는 것처럼요."

배스는 헨리를 보는 순간 함께 살아갈 사이임을 느꼈다고 했다. 하지만 헨리와 친해지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영국으로 데려온 헨리는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켄넬(이동장)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배스와 가족은 켄넬 문을 열어두고 헨리가 스스로 나오길 기다렸다. 힘겹게 밖으로 걸음을 내디딘 헨리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집안을 돌아다녔다. 오븐 문에 비친 제 모습도 무서워했다. 며칠이 지난 뒤에야 간식을 받아먹고 장난감에 관심을 보였다. 배스는 "헨리가 처음 삑삑 소리 나는 장난감을 갖고 놀았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9년이 지난 지금 헨리는 배스에게 "최고의 반려견"이다. 열 살이 됐지만, 여전히 몸집만 큰 강아지처럼 다른 개와 장난삼아 몸싸움하길 즐긴다. 포옹과 마사지를 좋아하고, 가족과 떨어져 있으면 슬퍼한다. 반짝이는 바닥을 무서워하는 것 말고는 공격성을 보인 적이 없다. "헨리는 매우 온순하고 친절해서 치료견 자격까지 땄어요. 함께 노인요양원을 방문하면 입소자들은 헨리를 보고 무척 좋아해요. 매사 순수하게 기뻐하며 삶을 온전히 누리는 헨리가 정말 자랑스러워요."



2017년 휴메인은 뜬장에 오물과 함께 갇힌 '헨리'(오른쪽)와 다른 사육견들을 구조했다./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제공


배스는 개 농장 사육견에 대한 오해가 사라져 더 많은 '헨리'가 우리 곁에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육견은 대부분 키우기 힘든 대형견으로, 사납고 사람을 따르지 않는다는 게 대표적 오해라고 했다. "사육견은 힘들고 잔인하게 삶을 시작했을 뿐 사랑스러운 개들이에요. 농장 밖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모를 뿐, 영리해서 훈련과 인내가 있으면 곧 배워요." 헨리만 배우는 게 아니다. 배스도 헨리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사육견들은 인간의 가장 나쁜 면을 경험했어요. 그런 사육견을 입양해 인간의 가장 좋은 면을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영광이에요. 사랑과 친절이 얼마나 강력한 힘인지, 헨리는 매일 그 사실을 일깨워줘요."

내년 2월7일 개식용종식법(이하 종식법) 시행을 앞두고 헨리와 같은 행운을 누릴 사육견이 또 나올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하기 힘들다. 2024년 종식법 제정 이후 사육견 46만7712마리 중 44만3329마리(94.8%)가 농장에서 사라졌다. 정부는 대부분 농장 폐쇄를 앞두고 출하됐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제 남은 2만여 마리도 종식법 시행을 앞두고 남은 4개월간 무더기로 도축 후 출하될 가능성이 크다. 사육견을 구하기 위해 만든 법이 사육견의 도살과 출하를 앞당긴 셈이다.

시대가 취재 과정에서 만난 동물단체와 학계 관계자들은 '적극적인 입양'을 마지막 대안으로 꼽는다. 직장인 고병진씨(37)는 개 농장 출신 15㎏ 진도믹스 '순미'와 산다. 고씨는 "진도믹스는 얌전하고 짖지 않는다. 이웃들은 우리 집에서 개를 키우는지도 모른다"며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진도믹스를 '퍼펙트 도그'라며 좋아한다. 더 많은 사람이 입양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씨는 2019년부터 해외 입양 이동봉사자로 국내 구조견 25마리를 북미 입양 가정에 데려다줬다. 오는 9일에도 캐나다 토론토로 세 마리를 데려간다.

이경동 동신대 반려동물학과 교수는 "사육견 입양을 활성화하려면 '이 개는 괜찮다'는 신뢰를 높여야 한다"며 "훈련사가 기본 교육과 교정을 거쳐 입양을 보내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이 학과에선 수업 과정 중 하나로, 구조견을 교정해 인증서와 함께 입양보내는 활동을 하고 있다. 동물권행동 카라 역시 구조한 사육견을 외부 훈련소로 보내 사회화 교육을 진행한다. 김현지 카라 사무처장은 "(남은 사육견의) 100%가 아니어도 된다. 10%라도 최대한 살려야 한다. 대국민 임시 보호 캠페인이라도 벌였으면 한다. 사연이 있는 개를 끝까지 책임지는 게 얼마나 멋진 일인지 알리는 것으로 대국민 캠페인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