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자의 외도로 혼인이 깨졌을 때, 남겨진 이의 상처에 대한 배상액은 어느 정도가 적절할까.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오랫동안 의뢰인에게 '위자료는 많아야 3000만원'이라고 설명해왔다. 수십년간의 물가 상승과 소득 수준의 변화 등을 법원이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유다. 그런데 최근 가정법원 재판정에선 위자료 기준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위자료 인정 액수가 5000만원에서 억대까지 높아지는 판결이 속속 등장하면서다.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소송에서 나온 위자료 20억원은 위자료 상한 공식을 깨는 촉매가 됐다. 서울고법은 2024년 5월 최 회장이 노 관장에게 위자료 2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대법원은 지난해 10월 이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혼인 파탄의 경위와 최 회장의 유책 행위, 별거 이후 태도, 재산 상태와 경제 규모 등을 종합했을 때 항소심 판단에 잘못이 없다고 봤다.
두 사람의 항소심 재판장이었던 김시철 사법연수원장은 2024년 대법원 세미나에서 이혼 위자료의 상한선을 재고할 필요가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김 원장에 따르면 교통사고 위자료 기준 금액은 1991년 3000만원에서 1999년 5000만원, 2015년에는 1억원으로 늘었다. 반면 이혼 평균 위자료는 1991년 2305만원에서 2014년 2416만원으로, 20년 넘는 기간 동안 100만원가량 늘어나는 데 그쳤다.
김 원장은 "교통사고가 과실에 의한 것이라면 (이혼의 주요 원인인) 부정행위는 상대 배우자의 법익을 고의로 침해한 것"이라며 법원이 위자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원장은 2023년 6월에도 아내가 외도한 남편을 상대로 낸 위자료 소송을 맡아 1심에서 3000만원이던 위자료를 2억원으로 대폭 상향했다.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최근 법원의 위자료 액수 인상 흐름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전했다. 최경혜 변호사(법무법인 한결)는 "12년 전 변호사 일을 시작할 때도 위자료 상한이 3000만원이었고, 지금도 그렇게 안내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부정행위 죄질이 나쁘거나 증거가 명확할 때 위자료 4000만~5000만원이 나오는 판결이 확실히 많아졌다"고 했다.
실제 양육권 분쟁 과정에서 폭행 사건이 벌어져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나 생전에 고인에게 돈을 빌려줬다고 유족에게 반환을 요구한 상간자 사건 등에서 법원은 위자료 5000만원을 인정했다.
최 변호사는 "판사가 위자료 5000만원을 선고하고 싶어도 청구액이 3000만원이면 그 이상을 인정할 수 없어 최근 판사에게 충분한 판단의 여지를 주기 위해 청구액을 높이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최 변호사는 또 "위자료를 받는 사람 입장에선 수천만 원 차이가 경제적으로 거액은 아닐지라도 판사가 3000만원 이상을 선고했다는 건 '상대방의 잘못을 법원이 엄중히 인정했다'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가사 재판에서 또 하나의 변화는 특유재산에 대한 판단이다.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재산이나 상속·증여받은 재산은 원칙적으로 특유재산에 해당해 이혼 재산 분할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혼 전문 변호사들은 실제 재판에선 특유재산이라는 이유만으로 재산 분할 대상에서 빠지는 경우가 오히려 손에 꼽힐 정도로 드물다고 전했다. 특유재산이라 하더라도 배우자가 그 재산의 가치 증가에 기여했다면 기여분을 재산 분할 과정에서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는 게 현재 법원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김신혜 변호사(법무법인 한경)는 "혼인 파탄 직전이나 직후에 증여·상속을 받아 보유 기간이 지극히 짧은 경우가 아니라면 같이 산 집이나 자산은 대부분 부부 공동재산에 포함된다"며 "다만 애초 소유했던 사람의 기여도를 더 높게 인정할 뿐, '아예 안 나눈다'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사·육아·재산 관리 등 경제적 소득으로 바로 드러나지 않는 기여 역시 재산분할 과정에서 점점 중요한 요소로 평가받고 있다. 이인철 변호사(법무법인 리)는 "부부가 함께 거주한 주택이 남편 부모의 증여로 마련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가정주부인 아내가 청소하면서 주택을 관리하고, 가사·육아를 담당하면서 재산 유지에 기여했다면 그 사정 역시 재산 분할 시 중요하게 고려될 수 있다"고 했다.
함께 한 기간이 길수록 비경제적 기여도에 대한 고려도 커진다. 최경혜 변호사는 "부부 양쪽이 열심히 모은 돈으로 전셋집을 마련하고, 아내가 아이를 가지면서 맞벌이에서 외벌이로 변한 가정이 있다고 가정할 때, 20~30년을 함께 살았다면 재산분할 비율이 5대5에 수렴한다고 볼 수 있다"며 "다만 시댁에서 신혼집을 해줬다든지, 친정이 잘 살아서 생활비를 매달 1000만원씩 지원했다든지, 이런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그에 맞춰 비율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태원, 노소영 이혼 사건에서도 법원은 "혼인 기간 최 회장의 경영활동으로 주식 가치가 크게 증대됐고, 여기에는 노 관장의 가사 및 양육, SK그룹에 관한 대외적 활동이 기여한 바가 있다"며 SK 주식을 분할 대상 재산에 포함했다. 혼인 파탄의 책임과 정신적 피해, 그리고 함께 살아온 세월 동안 재산 형성에 얼마나 기여했는지에 대한 정교한 평가가 최근 이혼 재판의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시대포럼] AI 대전환의 시대, AI 풀스택 대한민국의 도약](https://i.ytimg.com/vi/VcbpSJtXg6o/maxresdefault.jpg?width=1920&quality=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