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미국 공장이 자동차 생산을 넘어 로봇의 작업 능력을 검증하는 무대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사진은 정의선 회장이 현대자동차 브라질공장 임직원들과 함께 생산 라인을 점검하는 모습./사진=현대자동차그룹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취임 6주년을 맞아 추진하는 핵심 전략은 '피지컬 AI 설루션 기업'으로의 전환이다. 자동차 생산 과정에서 축적한 제조 기술과 데이터를 로보틱스·자율주행에 접목해 사업 영역을 확대한다는 구상이다. 로봇 개발과 검증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 만큼 실제 생산성 개선과 수익 모델 확보가 향후 성과를 가를 전망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보스턴다이나믹스는 지난 9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로보틱스 메타플랜트 응용 센터인 RMAC을 열었다.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실제 제조 현장과 동일한 환경에서 작업을 학습하고 검증하는 시설이다. 로봇의 제조 현장 적용을 위한 기반을 구축한 것이다.



정 회장은 지난 7월 미국 샌프란시스코 AI 서밋에서 "현대차그룹은 전통적인 자동차 제조의 경계를 넘어 자율주행, 로보틱스, AI 팩토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피지컬 AI 설루션 기업으로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개별적으로 육성해온 미래 사업을 제조와 모빌리티, AI를 결합하는 방향으로 확장하겠다는 의미다.

관련 투자는 정 회장 취임 전후로 이어졌다. 현대차그룹은 2020년 모셔널을 설립해 자율주행 기술 확보에 나섰고 2021년 보스턴다이나믹스를 인수하며 로보틱스 사업을 본격화했다. 2022년 이후에는 포티투닷을 통해 SDV와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을 추진해왔다.

현대차그룹이 피지컬 AI 사업에서 활용할 수 있는 자산은 제조 현장과 데이터다. 자체 공장을 통해 로봇이 수행할 작업을 발굴하고 실제 생산 환경에 맞춰 기술을 검증할 수 있다. RMAC은 로봇 개발과 제조 현장을 연결하는 시설로, 아틀라스의 작업 능력을 학습·검증하는 역할을 맡는다.



HMGMA에서는 AI와 로봇, 자동화 기술을 결합한 제조 체계를 실증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생산의 자동화와 지능화, 유연화를 구현하는 소프트웨어 중심 공장을 지향하고 있다. 자동차 생산 거점을 미래 제조 기술의 적용 기반으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창립자 겸 CEO가 지난7월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 엔비디아 본사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사진=엔비디아


빅테크와의 협력도 확대한다. 엔비디아와는 자율주행 및 피지컬 AI 인프라 강화를 추진하고 웨이모와는 자율주행 분야에서 협력하고 있다. 구글 딥마인드와 보스턴다이나믹스는 휴머노이드 개발을 위한 협업을 진행한다. 외부 AI 기술과 그룹의 제조 역량을 결합해 개발 속도를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국내에서는 로봇과 AI, 에너지 기반을 확보하는 투자를 추진한다. 대표 사업은 새만금 AI 밸리다. 현대차그룹은 전북 새만금 약 112만4000㎡ 부지에 로봇과 AI, 수소 에너지, 태양광 발전 등을 아우르는 9조원 규모의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로봇 생산·실증과 데이터, 에너지 역량을 집약한다는 계획이다.

영남권에는 올해부터 10년간 42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레벨4 이상 자율주행과 AI 기반 제조 혁신, 미래 항공·우주, 에너지 인프라 등을 중심으로 첨단산업 거점을 육성한다. 미래 사업별 기술 확보에 더해 이를 구현할 생산·연구 기반을 확충하는 데 투자 초점을 맞췄다.

관건은 현장 적용 이후의 경제성이다. 로봇이 제조 공정에 투입되려면 작업 정확도와 안전성, 연속 가동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 도입·유지 비용을 감안하고도 생산성과 품질을 개선할 수 있어야 적용 범위를 확대할 수 있다. 학습·검증 시설 구축에 이어 실제 공정에서 효과를 입증하는 단계가 필요하다.

그룹 내부 활용을 넘어 외부 고객을 확보할 수 있는지도 중요하다. 자체 공장에서 검증한 기술을 다른 제조 현장에 적용하려면 공정별 요구에 대응할 제품과 서비스가 필요하다. 피지컬 AI를 독립적인 성장 사업으로 육성하려면 기술 개발과 함께 판매·운영 체계를 갖춰야 한다.

정 회장의 피지컬 AI 전략은 자동차 제조 경쟁력을 새로운 사업의 기반으로 활용한다는 데 중심이 맞춰져 있다. 향후 평가는 투자 규모보다 실제 적용 공정과 생산성 개선, 외부 매출 확보 여부에 달릴 전망이다. 로봇·AI 투자를 지속 가능한 수익으로 연결하는 것이 현대차그룹의 다음 성장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