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송파구 문정동에서 장모를 살해하고 이혼 소송 중인 아내를 납치해 도주하다 강원 양양군에서 붙잡힌 20대 남성 A씨가 지난 11일 서울 송파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뉴스1


혼인 무효 소송 중이던 아내를 납치하는 과정에서 장모를 살해한 20대 사회복무요원이 경찰에 붙잡혔다. 법원의 접근금지 임시조치가 만료된 뒤 경찰이 재신청을 하기에 앞서 그 공백 기간 남편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 보호 과정에서 벌어진 '미세한 틈'이 흉악범죄로 이어지는 양상이 반복되고 있다.

12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송파경찰서는 존속살해·특수감금 등 혐의로 김모씨(26)를 긴급 체포해 조사 중이다. 김씨는 지난 11일 송파구 문정동 길거리에서 아내 A씨(23)를 납치하고, 이 과정에서 50대 장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는다. 그는 범행 후 A씨를 차에 태워 강원도 양양군으로 달아났다가 야산에서 긴급 체포됐다. 김씨는 경찰 조사에서 우발적으로 장모를 살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경찰은 이날 중 구속영장을 신청할 계획이다.



김씨는 가정폭력 문제로 배우자와 혼인 무효 소송 중이었다. 김씨가 지난 8월22일 경찰에 별거 중인 아내에게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실종신고를 했는데, 경찰은 A씨를 통해 가정폭력 피해 정황을 파악했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김씨를 가정폭력 혐의로 입건하고 법원에 ▲100m 이내 접근 금지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 등 임시조치를 받았다. 이어 같은 달 27일 김씨 부부 주소지를 관할하는 경기 수원권선경찰서로 사건을 이첩했다.

문제는 용산경찰서에서 받은 접근금지 임시조치가 9월30일로 만료됐는데, 수원권선경찰서는 10월6일에야 법원에 추가 임시조치를 신청했다. 접근금지 조치가 풀린 사이 김씨가 아내를 상대로 납치 범행을 저질렀고, 이 과정에서 장모가 살해당한 것이다. 접근금지 임시 조치의 경우 법원 결정에 하루 이틀 정도 시간이 걸리는 만큼 기한이 끝나기 전 추가 연장 신청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수원권선경찰서 관계자는 "접근금지 기간 김씨가 위반 행위를 하지 않아 추가 접근금지 조치 필요성을 따져본 뒤 지난 6일에 재신청했다"며 "스마트워치 지급 등 A씨의 신변보호 조치는 연장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스마트워치 지급에도 김씨 범행을 막지 못했다. A씨에게 지급한 스마트워치는 지난달 15일 이후 전원이 꺼진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신변보호 대상에게 스마트워치 충전기를 지급하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충전을 하지 않아 스마트워치 배터리가 방전된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매뉴얼에 따라 매주 피해자에게 스마트워치가 정상 작동하는지 구두로 확인해왔다. 피해자로부터 '잘 활용하고 있다'는 취지의 답을 받았다"고 전했다.



경찰의 수사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경찰은 지난달 18일 법원에서 김씨 휴대전화 등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은 뒤 지난달 22일부터 이달 6일까지 경기 군포 소재 사회복무 장소와 자택 등을 세 차례 찾았지만, 김씨를 만나지 못해 영장 집행에 실패했다. 피의자 조사 역시 당초 출석하기로 한 이달 10일 김씨가 나오지 않자 13일로 출석 일정을 다시 잡았다. 김씨가 소환 조사와 압수수색에 불응해온 만큼 체포영장을 신청해 빠르게 신병 확보에 나섰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원권선경찰서 관계자는 "긴급 체포 사유가 안 돼 계속 증거 확보를 하려 노력했다. 체포영장 신청 요건(3회 이상 출석 거부)을 고려해 출석 요구도 지속적으로 했다"고 말했다.

스토킹·교제폭력·가정폭력 등 관계성 범죄 대응 과정에서 수사·사법 당국이 허점을 보일 때마다 강력 범죄가 발생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지난 3월에 발생한 '남양주 스토킹 살인' 사건에서 경기북부경찰청은 피의자 김훈(44)에 대해 구속영장과 잠정조치 4호(구금)를 신청하도록 수사 지휘했지만, 관할인 경기 구리경찰서가 이행하지 않아 스토킹 피해자인 20대 여성이 살해당했다.

지난달 경기 광주시에서 이혼 소송 중이던 30대 공무원은 아내의 임시 거처를 찾아 살해했는데, 이혼 소장에 피해자 주소가 노출된 게 원인이었다. 2023년부터 민사·가사소송에서 주소 등을 가리는 개인정보 보호조치가 시행되고 있지만, 당사자가 신청할 때만 가능하다. 이 사건 후 대법원은 개인정보 보호조치 신청 절차 안내를 강화했다. 경찰개혁위원회는 남양주 스토킹 살인과 장윤기 사건 이후 지난 8월 여성·아동 관련 범죄와 관계성 범죄에 대한 수사 전문성 강화를 주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