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가 작업대 위에 놓인 자동차 부품을 양손으로 분류하고 있다. 뒤편에서는 또 다른 아틀라스가 긴 부품을 들고 옮기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2028년부터 미국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인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아틀라스를 배치해 부품 분류 작업을 맡기고, 2030년부터 조립 공정으로 투입 범위를 넓힐 계획이다. /보스턴다이나믹스


산업현장에서 로봇과 사람은 일자리를 두고 다투는 관계가 아니라 역할을 나누는 협업 관계로 바뀌고 있다. 로봇이 위험하고 반복적인 고된 작업을 맡고, 사람은 로봇을 운용하며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업무에 집중하는 구조다. 조선·철강·자동차 기업들은 이 같은 분업으로 근로자의 안전과 생산성을 함께 높이는 데 주력한다. 각자 잘하는 일을 나눠 맡는 합리적 분업이 자리 잡으면 로봇과 사람은 조화로운 관계 속에서 충분히 상생할 수 있다는 기대다. 이를 위해선 로봇 도입에 따른 고용 불안부터 노사가 대화를 통해 해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선·철강업은 위험하고 고된 작업이 많은 대표적인 3D 업종으로 꼽힌다. 특히 조선 현장은 숙련인력 고령화와 구인난으로 부족한 일손을 외국인 근로자들이 메우고 있다. 최근에는 협동로봇 등 자동화 설비를 늘려 근로자의 작업 부담을 줄이고 작업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HD현대삼호는 조선업계에서 로봇 도입에 적극적인 기업 중 하나다. 전남 영암조선소의 내업 공정에서 로봇 90여대를 운용하고 있다. 과거 작업자가 좁고 밀폐된 선박 블록 내부에서 직접 수행하던 용접 작업을 로봇이 대신하고 근로자는 로봇을 조작·관리하는 방식이다. 일부 공정에서는 작업자 1명이 최대 6대의 협동로봇을 관리하며 작업 기간은 기존보다 1~2일 단축됐다.

한화오션도 거제 옥포조선소에서 용접로봇을 운영하고 있다. 실내 용접 공정 기준 자동화율은 약 67%로 2030년까지 100%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삼성중공업도 거제조선소의 선박 블록 중조립 공정에 협동로봇을 투입하고 배관 가공·용접 등을 자동화한 생산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철강업계도 제철소 내 위험 공정에 로봇을 투입하고 있다. 포스코는 보스턴다이나믹스의 4족 보행로봇 '스팟'을 광양·포항제철소 고로 설비 점검에 활용하고 있다. 스팟은 약 1200도의 열풍이 흐르는 고로 주변 배관을 자율주행하며 온도와 가스 누출 여부를 확인한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11월 충남 당진 특수강 공장에 선재 태깅 로봇을 투입해 작업자가 직접 하던 제품 정보 태그 부착 작업을 자동화했다.



현대차그룹은 로봇을 직접 개발해 자체 생산 현장에 투입하고 있다. 현대차 울산공장과 기아 광명·화성·광주공장 등에서는 웨어러블 로봇 '엑스블 숄더'를 활용 중이다. 작업자가 조끼처럼 착용하는 로봇으로 장시간 팔을 들어 올리는 조립 작업에서 어깨 관절 부담을 최대 60% 낮춘다. 2028년부터는 미국 조지아주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배치해 부품 분류 작업을 맡기고 2030년부터 조립 공정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고중량·고위험 작업까지 로봇에 맡겨 근로자의 안전을 높인다는 구상이다.

이 같은 변화는 노사 갈등을 촉발하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현대차 노조는 올해 초 "노사 합의 없이 단 한 대의 로봇도 현장에 들어올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임금협상에서도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고용 및 노동조건 보장 등을 요구했다. 로봇을 활용한 생산 자동화가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현대차 노사는 17차례의 협상 끝에 피지컬 AI와 로보틱스 등 미래 기술 도입에 공동 대응하기로 합의했다. 향후 신사업·신기술 진행 상황을 공유하기로 했고, 2028년까지 기술직 500명을 신규 채용하기로 했다.

로봇에 작업을 넘긴 근로자를 로봇 운영·관리 업무로 재배치하는 등 근로자를 배려하는 움직임도 나타난다. 한화오션은 용접공이 협동로봇을 다루는 운영자 역할을 맡도록 했고, 조선사들은 노조와 협의체를 꾸려 고용 안정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위험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로봇이 맡으면 사람은 창의적인 판단과 기술 개발 등 고부가가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제조업이 첨단 기술과 소프트웨어 중심으로 전환하는 만큼 이 같은 협업 체계가 생산성을 높이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용 로봇이나 협동로봇은 당장 인력을 대체하기보다는 안전한 생산환경을 조성하고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한 보완 수단으로 활용하는 개념"이라며 "로봇 도입의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만큼 현장에서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 노사가 충분히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